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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게이클럽 학살에 대해 이성애자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Mike Segar / Reuters

미국 대법원이 전국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지 1년도 지나지 않았다. 11년 전에 매사추세츠 주에서 시작된 추세가 완결된 것이다. 사흘 전 올랜도의 게이 나이트클럽 펄스에서 49명이 살해 당했다. 우리 평생 미국에서 일어났던 총기 난사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이었다. 그리고 LGBT 프라이드의 달에 일어났다.

LGBTQ+의 싸움은 위대한 승리였던 동성 결혼의 합법화와 함께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LGBTQ+ 커뮤니티가 '다수의 권리'를 '침해'하며 탐욕을 부리고 도를 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마저도 있을 것이다. LGBTQ+들은 지금도 권리를 부정 당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나는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인간들은 추한 과거와는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 우리는 우리가 일종의 동화 같은 결말을 맞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싶어한다. 그러면 아무도 죄책감을 느끼거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강간 문화와 인종 차별을 둘러싼 거의 모든 이야기가 이렇다.

우리는 우리의 나라에서 매일 같이 일어나는 잔혹 행위에 대해 손을 씻기 위해 이런 사고를 한다. 이런 끔찍한 총기 난사가 일어났을 때, 우리 중 상당수가 이런 범죄가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문화를 만드는데 역할을 했다는 걸 인지하는 대신 미친 극단주의자의 탓이라고 치부하기 위해서다.

이런 접근은 쉽고 편안하지만 굉장히 위험하다. 상황을 전혀 개선하지 못하며, 현존하는 폭력의 사이클을 영속화시킬 뿐이다.

LGBTQ+의 싸움은 끝났다는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나는 그 말이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하겠다. LGBTQ+ 커뮤니티의 일원인 나는 우리의 커뮤니티에 영향을 준, 그리고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는 악전고투와 부당함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우리의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거의 1백만 명이 죽을 때까지 AIDS 위기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걸 잊을 수가 없다. 대학생 매튜 셰퍼드가 성적 지향 때문에 맞고, 고문 당하고, 결국 죽었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브랜든 티나가 트랜스젠더 남성이라는 이유로 강간 당하고 살해 당했던 것도 잊을 수 없다.

괴롭힘, 희롱, 거부에 시달리다 자살한 LGBTQ+ 젊은이들을 잊을 수 없다. 2015년 한 해에만 20명이 넘는 트랜스젠더 여성들(이중 다수는 유색 인종이었다)이 살해 당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LGBTQ+ 인구 중 52%가 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에 기반한 취업 차별을 금지하지 않는 주에 살고 있고, 사람들은 화장실 출입 같은 기본권을 부정당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서 LGBTQ+는 지금도 매일 같이 차별 당하고 피해자가 되고 있다. 동성 결혼은 그걸 변화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결혼하기 위한 일종의 대가로 우리가 편리하게 과거를 잊을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 총기 난사는 별개의 사건도 낡은 동성애 혐오의 잔재도, 혹은 종교적 극단주의도 아니다. 이것은 미국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동성애 혐오의 문화에서 나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 중 상당수는 이 문화에 기여한다.

당신이 '관용'이면 충분하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이 문제에 기여하고 있다. 당신이 LGBTQ+를 두들겨 패지 않는다 해도 증오 범죄를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들이 증오 범죄를 저지르도록 부추길 수 있다. 당신이 케이틀린 제너의 젠더를 틀리게 말한다면, 화장실 평등에 대해 사실과 다른 문제성 발언을 한다면, 게이의 애정을 생각하면 움찔한다면, '호모가 아니야'라거나 '그거 너무 게이스럽다'는 말을 쓴다면, 당신은 이 범죄를 키운 문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관용'은 실재하는 게 아니다. 받아들이는 것 외의 다른 모든 것은 그저 역겨운 무관심이거나 억누른 증오다. 닐 패트릭 해리스는 좋아하지만 게이 섹스는 '역겹다'고 생각하는 건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백인 시스젠더 게이 남성은 포용하지만 트랜스젠더는 거부하는 건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당신이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당신은 오마르 마틴 같은 범죄자들에게 너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당신은 LGBTQ+는 성가시고 달갑지 않은 존재이며, 남들 시선을 생각해서 관용을 보여야 하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이런 행동을 할 때 당신은 사람들의 집단 전체를 비인간화할 뿐 아니라, 이런 잔혹 행위를 저지르는데 필요한 사회적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당신이 동맹이라면 당신은 적극적인 동맹이 되어 동성애 혐오와 트랜스 혐오를 목격하면 진정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즉 누군가 해가 되거나 추한 말을 할 때 지적해야 한다. 남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보다는 당신이 옳다고 느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형식적으로 LGBTQ+를 인정하는 척 하거나, 그들의 분투를 무시하거나, 남들의 환심을 사려고 '진보적' 생각을 내뱉는 것은 우리와 함께 싸우는 게 아니다. LGBTQ+ 커뮤니티를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사람은 필요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옳은 것을 위해 일어설 사람이다.

LGBTQ+ 커뮤니티는 세상에서 가장 회복력이 강한 집단 중 하나다. 우리의 과거와 미래에는 추한 싸움들이 있지만, 우리에겐 계속해서 기뻐하고 사랑하는 활기 넘치는 생존자들이 잔뜩 있다. 펄스에서의 총격은 LGBTQ+의 사랑에 대한 공격이었고,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공격이었지만, 우리는 결코 무너질 수 없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겪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파괴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최악의 사건들도 견딜 수 있다 해서 우리가 시련을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의심받고 무시 당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커뮤니티 일원들 중 길거리나 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형제 자매 49명의 죽음을 비통해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정부, 사회, 당신에게서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아질 거야'라는 말이 아닌 '나아졌어'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와이오밍 주 라라미에서 살해된 매튜 셰퍼드에 대한 다큐멘터리 연극 '라라미 프로젝트'의 말을 인용하여 이 글을 끝맺고 싶다. 범죄가 일어났을 때 대학생이던 무슬림 여성 주바이다 울라의 말이다. 울라는 범죄가 일어났을 때 우리가 거리를 둘 게 아니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유효하다.

우리는 이 일을 슬퍼해야 하며, 우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국가, 주, 마을에 살고 있다는 걸 슬퍼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 범죄에서 거리를 두려고 애쓰고 있다. 우리는 이 범죄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느낀다. 모두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다. 우리는 이런 꼴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이 따위다.

허핑턴포스트US의 An Open Letter To Straight People On The Pulse Massacr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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