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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의 날 인터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정우성 "난민이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남의 이야기라는 건 오해다"

  • 박수진
  • 입력 2016.06.20 06:14
  • 수정 2016.06.20 06:52

현재 전 세계의 난민 인구는 세계 제2차대전 이후 최대치인 6천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6월 20일,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정우성에게 현지에서 직접 만난 난민들의 이야기와, 친선대사로서 앞으로의 계획을 서면으로 물었다.

- 2014년 유엔난민기구 측의 명예사절(*편집자 주: 다음해에 친선대사로 승격됐다) 제의를 받기 전, 개인 시민일 때에는 난민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고, 얼마나 알고 있었나?

= 사실 난민에 대해 매우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특히, 한국에도 난민이 있다는 사실은 유엔난민기구 활동을 시작하며 알게 됐다. 나 역시 무척 놀란 사실이다.

"레바논 인구 4백만여 명, 그중 시리아 난민은 1백6만여 명이다."

"이곳은 난민촌이 이뤄져 있지 않으며, 시리아인들은 여러 도시에 흩어져 폐건물이나 간이 천막에 사는 '도시 난민'들이다."

- 2016년 3월 레바논 방문 기간 진행한 페이스북 라이브 중에서

- 도시 난민을 처음 대면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나?

= 직접 보니 도시 난민들은 난민촌에서 생활하는 난민들과는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도시 난민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매달 임대료를 내야 한다. 레바논에서 만난 모든 난민들이 같은 상황이었다. 또, 난민들이 다양한 지역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유엔난민기구와 같은 기구들이 이들의 수요를 파악하고 지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규모 난민촌은 수용 국가에 부담이 되고, 난민 생활을 장기화할 수 있어 유엔난민기구는 난민들이 이처럼 수용국 주민들과 섞여 사는 형태를 더 바람직하게 생각한다고 들었다.

- 2014년 네팔, 2015년 남수단, 2016년 레바논에 다녀올 때마다 현지에서 만난 난민들의 사연을 전한 바 있다. 홀로 아이 다섯을 키우는 시리아 출신 30대 엄마의 이야기, 탈출을 위해 만난 브로커에게 속아 인신매매를 당한 소말리아 출신 자매 이야기, 배우가 꿈이라는 10대 네팔 소년 이야기 등이었다. 그들처럼 직접 만난 사람들의 사연을 더 듣고 싶다.

=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머리 속에 수많은 이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그만큼 많은 분들을 만났고, 또 이 분들 각자의 사연과 상황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레바논에서 만난 한 가족은 차가운 천막 안에서 20일된 아기를 키우는 열악한 상황이었는데도 나와 동료들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해줬다. 본인들의 잘못이 아닌데도 누추한 집을 손님에게 보여주는 것을 미안해했고, 어려움에 처한 자신들을 받아준 레바논 정부와 레바논 국민들에게 감사해했다.

남수단에서 만났던 눈이 먼 노인 분도 기억이 난다. 하루 종일 천막에 앉아 유엔난민기구 직원이나 자원봉사자가 자신을 데리러 오기만을 기다리는 게 전부인데도 표정이 어둡지 않았다.

- 난민들이 어쩌다 분쟁의 피해자인 난민이 됐는지, 또 난민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처했는지 보면서 인간사회와 정부, 종교 등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경험이 본인의 일상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 난민을 만들어내는 복잡한 문제들을 생각하면 그런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되고, 또 여러 가지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난민들을 통해 일상에 감사하게 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난민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지만, 생존을 향한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016년 3월 레바논 시리아 난민촌 방문 중

- '난민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가장 강조해온 것으로 안다. 난민 문제를 '남의 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 한국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더 절실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일 것 같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 이슈를 알리는 게 친선대사의 일이지만,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는 고민을 JTBC ‘비정상회담’에서도 말했다. 그 고민은 여전한가?

= 난민이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남의 이야기라는 건 오해와 편견이다. 앞서 말했듯 난민은 한국에도 있으며,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6천만 명이 넘고 세계 곳곳에서 내전과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한국도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야 한다. 한국 역시 일제 강점기와 내전의 아픔을 겪었고, 휴전국가로서 난민들의 어려움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 개인 후원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액수를 기록하는 데 비해, 기업 후원 규모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른바 ‘혜택만 받는 게으른 난민’, ‘나태한 난민'을 돕는다는 편견 때문에 기업들이 적극적인 공개 후원을 꺼리는 듯도 하다. 인도주의적인 관점 외에, 기업 후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한국은 난민이 국가 경제에 도움될 여지가 많은 국가라고 했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가?

= 난민이 되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좋은 환경을 제공받는다고 해도 본인이 태어나고, 자랐고, 집과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내가 만난 난민 중 누구도 구호기구나 정부의 지원에만 의지해 사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도 우리처럼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하며, 자신의 힘으로 자녀들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려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난민을 돕는 것은 인도주의가 그 기본이 되어야겠지만, 동시에 해당 기업이나 정부에게 훗날의 자산이 될 수 있다. 한 국가가 재건되었을 때 그 국민과 정부가 위기 상황에서 받았던 도움을 기억하지 않겠는가? 많은 분들이 난민이 한국에 들어오면 지금 당장 국가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냐는 식의 질문을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그들이 처한 현실적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보듬어 준다면 그들의 국가가 평화를 맞이하고 재건의 시간이 올 때, 그들 국가의 재건에 있어 필요한 기술지원과 생산 활동 그로 인한 경제효과의 기회는 인내심을 갖고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던 국가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질 것이다. 자원이 풍부하지 않고 인구가 적은 우리나라는 숙명적으로 국제사회와 함께 해야 하며, 기술력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것이 현실이다.

인도주의적 도움을 이러한 경제 원리를 통해 설득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국가가 국민을 설득하는데 있어 이러한 관점이 적용될 수도 있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다. 한편,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도움을 주는 인간의 미덕'과 같은 감성적 고찰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난민 또한 난민이라는 단어의 테두리에 평생 묶여 사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새로운 삶의 기회를 열어 받아준 한 난민이, 엄청난 일을 하는 인재가 될 수도 있다.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난민들의 삶을 지지하고 적절한 구호를 받을 수 있도록 알리는 역할을 하는 친선대사는 전 세계에 있다. 특별대사 안젤리나 졸리를 비롯해 친선대사 아델 이맘, 알렉 웩, 바바라 헨드릭스, 케이트 블란쳇, 게르 두아니, 지저스 바스케스, 줄리엔 클럭, 칼레드 호세이지, 무아제즈 에르소이, 오스발도 라포트, 로키아 트라오레, 야오 첸, 정우성이 그들이다.

- 다른 친선대사들과 활동할 때 서로 협조하거나 교류하는 일도 있나?

= 아직까지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다. 하지만 기구를 통해 다른 친선대사의 활동에 대해 정기적으로 듣고 있으며, 특히 난민촌을 방문하기 전에 효과적으로 난민의 어려움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기 위해 서로의 활동을 참고한다.

- 올해 남은 기간 중 친선대사로서의 계획이 있나?

= 상반기 활동의 연장으로 이렇게 소소한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고, 당분간은 영화 촬영 등 배우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활동들이 잡혀 있다. 하지만 올 하반기가 되면 내년 방문할 지역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난민촌을 직접 방문하여 이들의 어려움을 알리는 것은 친선대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과 친선대사 활동을 한 지 벌써 3년이 됐다. 유명인 친선대사로서 자신에게 남은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친선대사로서 나의 과제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난민들의 실정을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나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계속 귀를 기울이는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배우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고, 계속해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이들에게 신뢰를 주는 대상으로서의 신분을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 현재 난민 인구는 전 세계에 6천만 명으로, 2차대전 종전 후 최대치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런 시기에 한국에 사는 개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있다면 뭘까.

= 간단명료하다.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의 이웃과 사회, 국가에 대한 관심을 그 너머 국제사회에까지 갖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관심은 확대될 것이다. 살아가는 데 서로가 얼마나 강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지, 또 연대와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자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후원은 그 이후에 하는 각자의 선택이고, 관심에서 이어지는 행동이다. 내가 현지에서 만난 난민들은 모두 외부인이 자신들을 잊지 않고 방문해줬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꼈다. 우리가 갖는 작은 관심이 이들에게는 또 하루를 버티는 큰 힘이 될 것이다.

-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난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언급했다. 정말 만든다면 어떤 영화가 될까? 인권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다루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만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겠냐는 질문에 “네, 하지만 조심스럽게 잘 다뤄야겠죠.”라고 대답한 것 같다. 국가, 종교, 민족, 이념 사이 분쟁이 생길 때 가장 기본적으로 상실되는 것이 인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난민의 이야기를 다루기보다는, 현대물에서 보편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개인의 이해를 넓히기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우리는 내가 소중하듯 상대도 소중하다는 것을 잊고 경쟁이 강요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각자 개인들의 이해가 부족한 것이 폭력이 되고, 이것이 사회, 민족, 국가 간 분쟁으로 확대되는 것일 수 있다.

영상 편집/ 이윤섭 비디오 에디터

각국 정부의 좀더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WithRefugees 캠페인 영상

*세계 난민들의 현황과 구호 활동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로 들어가보자: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홈페이지 www.unhcr.or.kr

페이스북 www.facebook.com/unhcr.korea

Stand #WithRefugees 청원 홈페이지 www.unhcr.org/refugee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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