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영국의 에이전시는 한강의 소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 김수빈
  • 입력 2016.06.15 13:44
  • 수정 2016.06.15 17:13
ⓒSubin Kim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만의 공이었을까? 배수아, 이응준, 한유주 등의 한국 작가들의 해외 판권을 대리하고 있는 영국의 문학 에이전시 대표는 한강의 수상이 번역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요인 덕택이었다고 설명한다.

서울국제도서전 참가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켈리 팰코너 아시아 리터러리 에이전시 대표는 허핑턴포스트코리아와 인터뷰에서서 번역가-편집자-원작자 간의 긴밀한 소통은 물론이고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던 시점에 출간되었다는 '타이밍' 또한 한강의 수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팰코너는 한국문학이 세계에서 보다 넓은 독자층을 끌어당기려면 젊은 작가들을 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문학을 알리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해외 출판사보다는 에이전시의 참여를 독려하는 쪽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작가에게 더욱 유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14일 오후, 강남의 한 호텔에서 팰코너 대표를 만나 한국문학과 번역의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어떻게 해서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는가?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나의 유치원 선생님이 한국 출신 예술가와 결혼하여 살고 있었다. 한번은 초대를 받아 그분의 댁에 간 적이 있었는데 집 안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든지 창문에 한지가 붙어있는 등의 분위기가 아름다웠다. 미국에 살고 있었지만 한국 문화의 분위기를 갖고 있는 집이었다. 그때부터 한국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25년 전, 미국 공군에서 복무하면서 국방외국어대학에서 한국말을 배웠다. 제대한 이후 나는 런던에 있는 출판사의 편집자가 됐다. Weidenfeld & Nicolson이라는 명망있는 출판사로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낸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10년 동안 문학 픽션 및 논픽션 부문의 편집을 하면서 문학 번역 작업에 대해서도 배웠다. 내가 퇴사한 이후 그곳에서 신경숙의 작품도 출판했다.

그리고는 2011년 남편과 함께 홍콩으로 이주해서 프리랜서 편집자로 런던의 출판사들과 일했다. 그러다 아시안 리터러리 리뷰의 문학 에디터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래서 갑자기 아시아 문학에 대해서 익히게 됐다. 나를 비롯한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아시아의 멋진 작가들을 발굴하여 서구의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일을 했다.

우리 팀이 처음으로 작업한 이슈가 바로 한반도 문학에 관한 것이었다. 남한과 북한을 모두 포함한. 탈북시인 장진성과 그의 시를 냈고 신경숙의 인터뷰를 실었다. 한유주의 소설도 실었는데 이때 한국문학번역원의 도움을 받았다. 과거 원고 청탁을 했던 작가들로부터 에이전트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2013년 3월에 에이전시를 설립하고 아시아 작가와 전문가들을 대리하게 됐다.

현재 대리하고 있는 한국 작가에는 누가 있나?

배수아, 이응준, 한유주, 그리고 마이크 브린이라는 작가가 있다. 브린은 과거 가디언과 워싱턴타임즈 서울 특파원으로 일했다가 현재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신세대 한국인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데보라 스미스의 초기 번역작을 편집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배수아의 '그 사람의 첫 사랑'의 번역이었다. 지금도 아시안 리터러리 리뷰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읽을 수 있다. 오래 전(2012년)이었고 당시 스미스는 신예 번역가였다. 당시에는 배우는 단계였다고 스미스 스스로도 인정했었고, 이제는 번역가로서 훨씬 성장했다. 데보라의 번역은 다른 번역가와 달리 보다 창의적인 편(의역)이다.

한강의 소설이 수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데보라 스미스, 그리고 번역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그렇지만 편집자의 숨은 공로도 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강의 수상은 단순히 번역자 뿐만 아니라 여러 요인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거라 생각한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최근 급증한 것도 그중 하나다.

사실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 이전에도 '채식주의자' 번역 출간 시도가 있었다. 자넷 홍이라는 번역가가 번역한 것인데 나는 스미스와 홍의 번역본 두 개를 모두 읽어봤다. 둘 다 매우 훌륭한 번역이었다. 그렇지만 데보라의 번역은 보다 현대적이고 원문과 비교하면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데보라가 ('채식주의자'를 낸) 그랜타의 편집자와 친구였다는 것도 도움이 됐다. 편집자와의 긴밀한 협의와 한강의 승인 아래 편집이 이루어졌었다.

이전의 번역본은 보다 직역풍의 번역이었고 제대로 된 편집을 거치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던 시절에 나왔다.

'채식주의자'가 그 자체로 훌륭하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채식주의자'를 성공시킨 요인에는 운과 타이밍을 비롯한 여러 가지가 있었다.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서울국제도서전 국제관에서 열린 2016 한국문학 세계화 포럼 초청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강과 스미스가 맨부커 상을 수상하면서 원문에 구애받는 쪽보다는 더 창의적인 번역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논의가 문학 번역의 문제 자체보다는 영어와 한국어의 지위(권위)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보다 상위에 있는 언어(영어)는 원문을 그대로 살린 번역을 중시하는 한편, 하위에 있는 언어(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에는 영어로 이해하기 쉬운 것만 강조하다가 오히려 원문의 의미를 퇴색시키지는 않을지, 아무리 해외에서 인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리 되면 그 의의가 바래지 않을까.

나는 약간 애매한 입장이다. 어떠한 작가, 이를테면 한유주 같은 경우에는 작가의 본의를 정확히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유주는) 진짜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하고 그 자신이 번역가이기도 해서 언어의 차이 등을 잘 인지하고 있다. 조르주 페렉 같은 프랑스 실험주의자에게 관심도 많고. 그래서 그가 책을 쓴 방식은 바로 그렇게 의도하고 쓴 것이기 때문에 번역가도 이를 잘 이해하고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꾸며지거나 영어가 한국어 위에 덧씌워져서는 안된다.

한강의 경우('채식주의자')는 좀 다르다. 그 소설집은 9년 전에 나왔다. 9년 전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설을 쓴 것이다. 알다시피 한국에선 모든 게 빠르게 변한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한강의 소설이 지금 읽으면 꽤 오래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도 마찬가지다. 그 10여 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내가 한국에 왔을 때 카페에서 영어로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차를 주문하는 게 불가능했다.

(스미스의) 한강의 번역은 텍스트를 요즘의 독자들을 위해 업데이트해줬다. 사실 번역에서는 언제나 벌어지는 일이다. '일리아드'의 새로운 번역은 꾸준히 나오고, 위대한 시인들의 번역도 매번 새로 나온다. 새로운 세대의 관점과 번역자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반영하는 것이다.

나는 스미스가 젊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데보라 스미스는 이제 28세다. 열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번역가로서의 자질도 타고 났지만, 번역계에 새로 들어왔다는 것도 중요하다. 젊을 때는 과거의 법칙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저 돌진할 뿐이다 (웃음). 이런 측면이 작가로서의 한강과 그의 소설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기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을 것인데 (웃음) 한국문학이 세계에 더 많이 알려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문학은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일부분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한국문학은 신경숙이나 한강, 한유주 같은 작가들을 갖고 있다.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은 곧 이탈리아에서 출간될 예정이기도 하다. 당신이 지금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일본 작가들이 몇이나 되는가? 중국은? 한국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권하고 싶은 것은 보다 젊은 작가들을 밀어주라는 것이다.

젊은 작가들이 더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인가?

그렇다. 왜냐면 그들은 바로 지금의 한국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젊은 작가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작품을 낼 것이다. 독자는 이 작가가 향후에 내는 작품들을 따라가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새로운 독자 세대 전체를 끌어들일 수 있다.

내가 '젊은'이라고 말할 때 이는 숫자로서의 나이를 뜻하진 않는다. 이를테면 천명관을 보라. 그는 50대이지만 매우 젊은 분위기를 내고 있다. 그는 전통주의자가 아니다. 사실 아웃사이더에 가깝다. 아시아에서 연장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는 것은 잘 알고 있고 나도 이를 존경하지만 연배가 있는 작가들을 밀면 젊은 세대를 희생하게 된다. 왜 독자들이 누군가 50년 전에 쓴 글을 읽고 싶겠는가?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보다 넓은 독자층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보다 젊은 작가들을 밀어줘서 우선 한국문학 자체에 관심을 갖게끔 해야 한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문화 #한국문학 #에이전시 #한강 #신경숙 #배수아 #한유주 #이응준 #한국문학번역원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