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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봐주던 길냥이가 다리가 부러져서 나를 찾아왔다

  • 박세회
  • 입력 2016.06.12 12:47
  • 수정 2016.06.12 15:09

'귤이'가 다리가 부러져서 우리 집 앞에 앉아 있던 장면이 생각난다.

5월 6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나흘간의 연휴가 시작되던 5월 5일 오후로 기억한다. 아내와 나는 장을 봐서 집에 돌아오다가 우리 집 앞에 있는 귤이를 발견했다.

신혼집에 이사 온 지 2년. 신혼 초기부터 이 노란 고양이는 우리 집 근처를 서성였다. 꽤 큰 덩치에 표정도 사납고 항상 수하 고양이들을 두 마리씩 끌고 다녔다. 표정이 심드렁하고 인간을 본척만척 하는 게 매력의 포인트였다.

위풍 당당하던 시절의 귤이.

우리는 집 앞에서 이 고양이가 우리에게 텔레파시를 시도할 때면, 가끔 심중을 파악하고 재빨리 참치캔을 따다가 바치곤 했다.

"지금 참치캔을 내놓지 않으면 너희 집 쓰레기를 다 파헤치겠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날 다리가 부러져서는 우리 집 앞에 앉아 있었다. 왼쪽 뒷발이 부러져서 뼈가 드러나 있었다. 너무 놀라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슈퍼마켓에 가서 참치캔과 우유를 사와 물과 함께 앞에 두고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길냥이를 반려묘로 맡아 키우는 선배는 화를 냈다.

"왜 밥을 줘! 밥을 주면 다쳤을 때 꼭 찾아온단 말이야. 책임질 마음이 없으면 절대 밥을 주면 안 돼!"

밥을 준다는 것에 그리 큰 책임이 따를 줄은 몰랐다. 선배는 화를 내고는 나를 달랬다.

"어떻게든 살려야지. 결정해야 해. 어떤 단체도 걔를 구해가지는 않아. 다리를 고쳐주고 네가 키우는 방법밖에는 없어. 그럴 자신이 없으면 빨리 마음을 접어."

밥을 먹고 있는 귤이의 사진을 찍어 집 바로 앞에 있는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사진을 본 수의사 선생님은 '길고양이를 잡기는 정말 힘들다'며 '만약 잡아도 문제다. 수술비로 약 70만 원 정도가 들고, 그 이후에도 한 한두 달 간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알레르기가 약간 걱정이었다. 결혼 전 본가에선 하얀 코숏을 키웠다. 연인이던 두 친구가 헤어지며 못 키우겠다고 해서 내가 집으로 들인 '휴지'라는 하얀 코숏인데, 걔가 내 침대에서 자고 난 날이면 얼굴이 퉁퉁 붓고 눈이 따끔거리곤 했다. 고양이 알레르기라기보다는 털에 뭔가 붙은 거에 피부가 민감하게 반응한 거였을 거다. 그 후로 휴지는 동생이 담당했다.

본가에 있는 휴지.

본가에 있는 휴지를 생각하면 귤이가 다리를 다친 게 더 슬펐다. 선배가 말한 게 생각이 났다.

"귤이? 이름까지 지어줬어? 에휴...살려야겠네"

우리 부부는 어떻게든 일단 귤이를 살리고 보기로 했다. 대충 짐작했겠지만, 관공서 어느 곳에서도 길고양이를 잡아주지는 않는다. 고양이는 개와는 달리 유기동물 보호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 보호단체도 형편은 마찬가지다.

관련기사 : 2013년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고양이가 유기동물 보호 대상에서 제외됐다.

동물 병원에 가서 "어떻게든 잡아보겠다"라고 했더니 하드케이스를 빌려줬다. 수면제를 처방받고 가장 잘 팔린다는 캔을 3개쯤 샀다. 귤이가 캔 냄새를 맡고 다가와 수면제를 먹고 안에서 잠들기를 바라며. 수의사 선생님은 '안에서 잠들면 모포 같은 거로 케이스 전체를 감싸서 데리고 오라'고 했다.

낮의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이십 분 간격으로 덫에 걸리지 않았는지를 살폈다. 그러나 귤이는 덫에 걸리지 않았다. 다음 날 저녁과 그다음 날 아침엔 비가 왔던 거로 기억한다. 비가 오거나 밤이 늦으면 수면제가 섞이지 않은 거로 먹이를 갈아줬다.

"수면제라고 해서 먹자마자 잠들진 않아요. 잠 들기까지 20분 정도 걸리니까 혹시 지켜볼 수 없을 때는 그냥 먹이를 주세요."

먹이는 사라지는데 귤이의 모습은 볼 수 없는 날이 꽤 오래 이어졌고, 연휴가 끝났을 때쯤 나는 수면제를 항생제와 소염제로 바꿨다. 어차피 야성의 고양이를 그딴 수단으로 잡을 수는 없었다. 대신 언제고 나타나면 무력으로 잡을 생각이었다.

그 후 몇 번인가 고무장갑을 끼고 모포를 든 30대 중반의 아저씨가 다리 다친 고양이에게 농락당하는 장면이 벌어졌다. 가까이 다가가면 하악 거리며 화를 내다가 도망가곤 했다. 세 발로 정말 빨리도 달렸다. 그래도 기뻤다. 내가 있을 때 나타나서 살아있다는 걸 보여줬으니까. 다리는 조금 아물었는지 핏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우리 부부는 동물 병원에 가서 약을 좀 더 처방받고 사료를 한 포대 샀다. 귤이는 아직 살아있다. 그러나 어떻게 봐도 이제 곧 죽을 것 같다. 살이 엄청 빠져서 배가 홀쭉해졌다.

그렇다고 먹이를 잔뜩 줄 순 없다. 귤이에게 정기적으로 먹이를 주는 사이에 우리 집 앞에는 동네 고양이 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젠 차에서 내리면 서너 마리가 나타나서 먹이를 기다린다.

동네 주민들은 화를 낸다. 아직은 내게 직접 화를 내지는 않지만 큰 소리로 "아유 고양이 새끼들이 왜 이리 많아"라며 소리를 지른다. 버젓이 우리 집 앞에 고양이 사료통이 있으니 그런 걸 거다.

그러나 우리랑 비슷하게 귤이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며칠 전에는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위층 신랑을 만났다. 그때 멀리서 귤이가 지나갔다.

"쟤가 다리를 다쳤더라고요."

"그러니까요. 가끔 먹이도 주고 했는데 말이죠."

나만 귤이를 신경 쓰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안심했다. 이미 귤이는 다리를 땅에 딛고 다닐 정도로 회복했다.

"이 정도 아물었으면 수술을 하기도 힘듭니다."

수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이제 우리 부부는 귤이가 있을 때만 골라 적당량의 사료를 몰래 준다. 다른 고양이들이 나타나 항의를 할 때도 있지만 절대 사료를 주지 않는다.

어쩌면 전문가들이 보기에 나의 대응은 정말 어설펐을지도 모르고, 누군가가 보기엔 이기적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도 귤이를 보면 그래서 욱하고 서러운 감정이 올라온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지역 주민의 원성을 (나도 고양이들도) 사지 않으면서 귤이의 남은 생과 함께하는 방법은 이게 한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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