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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12. 종교인은 성소수자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 불교와 기독교

'성소수자,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나의 답은 간단하다. 예수는 성소수자를 포함하여 누군가를 그렇게 혐오하고 정죄하는 것을 주저함 없이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또한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사회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연대할 것이다.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주교는 '나는 동성 혐오적 천당에 가기를 거부하겠다. 나는 신이 만약 동성애를 혐오한다면 그러한 신을 예배하지 않겠다'라면서, 동성애 혐오에 저항하고 싸우는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하여 싸우는 것과 동일한 차원에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성소수자연구회(준)는 <2016년 제17회 퀴어문화축제>를 맞아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을 연재했습니다. 연재의 다른 글은 한국성소수자연구회(준)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블로그 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으며, 전체 내용을 담은 PDF파일은 한국성소수자협회(준)의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를 둘러싼 많은 갈등과 논쟁은 종교적 대립으로 비추어지곤 한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가장 가까이에서 위안과 지지를 제공하는 것이 종교일 때도 많다. 종교인이 성소수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두 학자의 글을 소개한다. 불교 부분은 효록 스님(동국대학교 외래강사, 자아초월상담학 박사)이, 기독교 부분은 강남순 교수(텍사스 크리스쳔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가 집필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만약 스승의 가르침을 후대에 전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있는 그대로를 남길 것인가? 윤색할 것인가? 스승이나 선·후배 그리고 동료의 삶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기록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히 성(sexuality)에 대한 내용은 더욱 비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붓다의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인 경장(經藏) 외 당시 승가(僧家)에서 일어났던 신체와 그 행동에 관한 것들 즉, 육체적이고 생리적인 문제를 율장(律藏)에 자세히 기록하고 이를 후대에 전하고 있다.

율장에는 수동적이건 능동적이건 음행과 성적 욕망 그리고 애착에 관한 풍부한 내용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 안에는 성소수자와 관련된 내용이 적지 않다. 붓다 당시 초기 승단에서는 성소수자도 똑같이 출가하여 수행한 평등한 존재로 존중받았다.

성(性)과 관련해 붓다가 주로 문제를 삼은 것은 출가한 사람의 도덕적인 생활에 대해서였지 출가하지 않은 일반인들에 대해서는 도덕적인 평가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재가자의 성생활은 출가자의 생활을 기록해 놓은 율장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고대 인도문헌에서는 성적 묘사에서 오늘날 문명화된 사회처럼 그 표현에서 억제가 없었기 때문에, 다소 외설적 표현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고대 인도인들은 성적으로 꾸밈없는 언어를 사용했고, 이에 대해 오늘날 우리처럼 두려워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에게 불필요하게 숨김없이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외설과 음탕에 대한 낙인은 실제로 율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1)

붓다는 출가자의 성적 교섭에 반대했고 그것을 금지시켰다. 그 이유에 대해 붓다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은 즐거움이 적고 괴로움이 많고 근심이 많으며 위험은 더욱 많기 때문이라고 설하고 있다.2) 스리랑카 출신의 모한 위자야라트나(Môhan Wijayaratna)는 성 관계에는 사회적인 책임과 가정적인 책임이 뒤따르고, 그로 인해 명상에 장애가 되는 번뇌를 야기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3)

율장에 따르면 비구의 성적 대상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성 외 동성, 양성, 빤다까를 지목하고 있다. 그리고 성적 교섭의 길로 성기 외 항문이나 구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상적인 것은 항문이나 구강을 성기에 비해 더 하열한 기관이라고 폄하하거나 문제 삼지 않고 나란히 두고 있고, 성적 대상으로 반드시 이성만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4)

빤다까(paṇḍaka)는 어원적으로는 불분명하지만 '알이 없는 사람(apa-aṇḍa-ka)' 즉, 고환이 없는 자에게서 유래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붓다고싸(Buddhaghosa)5)는 빤다까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빤다까의 출가를 율장에서 금지시키는 것은 동성애나 유사 성행위로 교단의 질서가 파괴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6) 하지만 율장이 빤다까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초기에는 이들 역시 출가하여 공동체 생활을 함께 했었다는 뜻으로 유추할 수 있다. 팔리어 율장에 의하면 남성 동성애자, 여성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에 대한 차별은 보이지 않고, 다만 빤다까와 남녀추니에 대해서는 양가적이고 차별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다.

율장은 남성 동성애, 여성 동성애 외 성-변환(트렌스젠더)에 대한 내용도 언급하고 있다.7) 초기 불교 경전들은 어떤 사람의 성은 생(生)과 생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한 생 안에서도 변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8) 비구나 비구니가 자신의 성(性)이 중간에 바뀌는 경우, 그 사람에 대해서는 자비롭게 해결하였다. 율장에 의하면, 그 비구니는 더 이상 비구니 승가에 있을 수가 없어서 새롭게 비구로서의 구족계를 받았다. 마찬가지로, 어떤 비구가 성적으로 여성이 되었을 때, 그는 비구니 구족계를 다시 받아야 한다.9) 두 사례에서 붓다는 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전에 비구였던 비구니는 비구니의 규칙을 따라야 하고, 전에 비구니였던 비구는 비구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만 말할 뿐이다.10) 주석서를 보면 어떤 사람의 성은 임신 순간에 결정되지만 바뀔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11) 성-변환의 원인은 본질상 업(業)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담마빠다'의 주석서에는 한 비구에게 성적으로 끌려 그 즉시 여성으로 변해 버린 한 남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난 후, 다시 남자로 돌아와 그 비구의 용서를 구한 다음 계속 정진하여 아라한이 된다.12)

만일 불교 교단 안에서 동성애가 비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동성과 성행위를 하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계율로 금지된 성행위 일반을 즐겼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불교는 깨달음의 달성에 장애가 되는 그릇된 욕망의 대표적 상징인 성행위(동성애도 포함됨)를 금기시했지 특정한 신체 부위를 사용하는 동성애 행위만을 별도로 거론한 적은 없다는 말이다.13) 기억해야 할 것은 율장은 일반 대중을 위해서 송출되거나 기술되어서는 안 되고, 오직 순결을 맹세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자들을 위해 송출되거나 기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율장이 송출되고 기술되어 온 동기는 충격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청정하지 못하고 감각적 쾌락과 같은 탐욕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14) 팔리어 율장에 따르면, 승단 초기에는 성소수자도 일반 사람과 똑같이 출가하여 공동체 생활을 하였고 구족계를 받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출가 조건이나 구족계를 받는 조건이 강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소수자,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기독교인'을 간결하게 정의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이라는 종교적 정체성을 지니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예수의 정신이 무엇인가,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성찰해야 한다.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What Would Jesus Do)'는 1896년 찰스 쉘돈(Charles Sheldon) 목사가 자신의 설교를 묶은 책인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서(In His Steps)』의 부제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후 이 표현은 'WWJD'라는 약자로 대중화되면서 기독교인들에게 던져지는 중요한 물음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 개신교도들이 노골적인 성소수자 혐오를 드러내고 그것이 점점 폭력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들이 '구주'로 고백하는 예수는 과연 성소수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묻는 것은 긴급한 과제이다.

동성애를 저주하고 그것이 죄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이 인용하는 성서 구절들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들이 있다. 첫째, 성소수자 혐오에 인용되는 구절 중 정작 '예수'로부터 나온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종종 인용되는 성서 구절은 『창세기』 14장, 『레위기』 18:22, 『레위기』 20:13, 『로마서』 1:27, 『고린도전서』 6:9~10, 『디모데전서』 1:10, 『히브리서』 13:4 등이다). 둘째, 성소수자 혐오의 근거로 인용되는 성서 구절 중 그 어느 것도 여성과 여성끼리의 관계, 또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성서가 쓰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극도로 가부장제적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문자적'으로 성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즉,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면, 레즈비언이나 양성애는 성서에 언급되지 않았으니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동성애(homosexuality)'라는 개념은 19세기에야 독립된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다. 즉 성서가 쓰인 시대에는 물론 19세기 이전까지는 '동성애'라는 것이 분명한 개념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그런데 남성끼리의 동성애가 그렇게 심각한 죄였다면 왜 예수는 그 문제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았을까?

예수의 가르침이 제시하는 핵심적 메시지는 '사랑, 환대, 연민, 연대'라고 할 수 있다. 타자를 사랑하는 것과 신을 사랑하는 것이 동일한 것임을 예수는 그의 말과 행동으로 분명하게 전한다. 이러한 예수 정신을 분명하게 담고 있는 『마태복음』 25장은 '최후 심판'으로 불리는 텍스트이다. 예수가 소위 '최후 심판'의 6가지 기준을 제시하는 이 텍스트는 심오한 종교적, 사회정치적, 윤리적, 철학적 깊이를 담고 있다. 첫째, 최후 심판의 기준에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적' 항목은 전혀 없다. 개인의 종교가 무엇인지, 기독교 교리를 믿는지, 교인 등록을 했는지 등 흔히 교회에서 가르치는 '구원 조건들'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죄'의 개념을 근원적으로 급진화한다. 악한 일을 '하는 것(sin by commission)'만이 죄가 아니라 '해야 할 것'을 안 하고 '생략하는 것(sin by omission)'도 죄라는 것이다. '최후 심판'을 통해 '구원/영생'의 길로 나아갈지, '영원한 형벌'을 받을지가 결정되며, 그것을 결정하는 절대적 기준으로서의 '해야 할 것'은 다음 여섯 가지이다. 타자가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는 일; 목이 마를 때 마실 것을 주는 일; 나그네와 이방인을 환대하는 일; 헐벗을 때 입을 것을 주는 일; 병들었을 때 돌보는 일; 그리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 주는 일이다. '영원한 형벌'을 받도록 결정된 이들이 '내가 언제 당신이 그렇게 되었을 때에 외면했는가'라고 이의를 제기하자, 예수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The Least)에게 하는 것이 곧 신/예수에게 하는 것이라고 답을 한다. 예수는 '종교'가 아니라 내가 타자와 어떠한 관계 속에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다. 예수 정신의 핵심을 담고 있는 이 텍스트는 연민, 사랑, 배려, 환대가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실천이라는 것을 '최후 심판'이라는 강력한 언어로 명시하고 있다. 성서를 거론하며 자신과 성적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을 예수가 본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성소수자,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나의 답은 간단하다. 예수는 성소수자를 포함하여 누군가를 그렇게 혐오하고 정죄하는 것을 주저함 없이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또한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사회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연대할 것이다.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주교는 '나는 동성 혐오적 천당에 가기를 거부하겠다. 나는 신이 만약 동성애를 혐오한다면 그러한 신을 예배하지 않겠다'라면서, 동성애 혐오에 저항하고 싸우는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하여 싸우는 것과 동일한 차원에 있다고 강조했다. 동성애 혐오 사상을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은 이 투투 주교의 선언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는 모든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이웃은 물론 '원수'까지 모든 타자들과 사랑과 연민과 환대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서 종교적 저항의 중요한 근원은 종교적 상상력이다. 예수는 성소수자들을 향하여 폭력적인 혐오감을 표출하는 '예수 믿는 이들' 앞에서, 성소수자들과 함께 서서 그 혐오자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연재순서>

1. 동성애는 무엇인가요? | 섹슈얼리티의 다양성

2. 트랜스젠더는 누구인가요? | 젠더의 다양성

3. 커밍아웃, 왜 하는 걸까요? | 소통과 해방

4. 동성애는 정말 질병인가요? | 전환 치료의 허구성

5. 동성애는 HIV/AIDS의 원인인가요? | 조작된 낙인과 공포

6. 동성애 혐오도 권리인가요? | 편견과 인간의 존엄성

7. 왜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되나요? | 차별 금지의 법적 근거

8. 트랜스젠더는 왜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하려고 하나요? | 법 앞의 인정

9. 왜 동성 간에 결혼을 하려고 하나요? | 동성 결혼과 평등권

10. 학교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요? | 모두를 위한 교육

11. 성소수자들은 왜 축제를 하는 걸까요? | 가시성과 자긍심

12. 종교인은 성소수자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 기독교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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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재성 역주 (2015b). 빅쿠비방가-율장비구계. 한국빠알리성전협회, 58-59 해제 참조.

2) 전재성 역주, 위의 글, 1640.

3) 모한 위자야라트나 (1998). 비구니 승가 (온영철 옮김). 서울: 민족사, 167.

4) 전재성 역주 (2015b). 앞의 글, 150-151.

5) 5세기 전반에 활동한 인도의 대논사. 팔리어 불교의 근본성전으로서의 율장 · 논장의 전부와 경장의 대부분에 대한 주석서 및 팔리어 불교의 교리 · 학설을 집대성한 『청정도론』 저술.

6) 전재성 역주 (2015b). 앞의 글, 151 각주 참조.

7) 전재성 역주 (2015a). 빅쿠니비방가-율장비구니계. 서울: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 역주(2015b) 등 참고.

8) Harvey, P. (2014). 불교윤리학 입문: 토대, 가치와 쟁점 (원제: An Introduction to Buddhist Ethics-Foundations, Values and Issu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허남결 옮김). 서울: 씨아이알 (원서출판 2000), 751.

9) 모한 위자야라트나, 앞의 글, 179-180; 전재성 역주 (2015b), 520; Harvey, 앞의 글, 751 참조.

10) Harvey, 앞의 글, 751.

11) Aṭṭhasālinī[Buddhaghosa's commentary on Dhs.](Th.); (tr. Pe. Maung Tin), The Expositor, 2vols., London, PTS, 1920 and 1921.

12) Harvey, 앞의 글, 751-752.

13) 허남결 (2008). 동성애와 불교의 입장: 역사적 사례와 잠정적 결론. 불교연구, 28: 262.

14) 전재성 역주 (2015b), 앞의 글, 58-5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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