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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열아홉 살 김군을 타살했는가

구의역 사건은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를 묻고 있다. 힘 있는 사람을 더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사회적 약자도 보호받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인가. 국가는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고 원청-하청 부패고리의 핵심인 메피아를 해체해야 한다. 20대 국회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업무는 직접 고용된 정규직에게 맡겨야 한다'는 이인영법을 군말 말고 통과시켜야 한다. 세월호 침몰의 반성에서 발의됐던 법이다. 돈이 아닌 사람이 우선인 사회를 만드는 것만이 김군의 영혼을 위로하는 길이다.

  • 이하경
  • 입력 2016.06.09 05:33
  • 수정 2017.06.10 14:12
ⓒ연합뉴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 살의 용역업체 비정규직 청년이 변을 당했다는 끔찍한 소식을 접한 순간 24년 전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1992년 1월 13일 오전 9시44분 지하철 선로 보선원인 서른네 살의 변병일씨가 1호선 신설동역에서 선로 순회점검을 하다 열차에 치여 숨졌다. 땀과 먼지를 뒤집어쓴 그의 동료들과 만났는데 "유일하게 찾아온 기자"라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았다.

변씨는 접근하는 전동차를 발견하는 역할을 맡았다. 신설동역에서 동대문역으로 가던 전동차를 본 즉시 작업 중인 두 동료에게 신호를 보낸 뒤 맞은편 선로로 이동했다. 하지만 진입하던 다른 전동차에 치였다. 사고가 난 지점은 전동차 운행코스를 변경하는 분기점으로, 중앙 기둥과 양쪽 벽의 대피시설이 없었다. 컴컴한 지하 공간에서 수시로 오가는 열차를 피해 작업을 하는 건 생명을 가진 인간이 아닌 기계가 할 일이었다.

당시 지하철 1호선 구간에는 청량리·신설동·종각·서울역 등 네 곳에 분기부가 있지만 어디에도 대피시설은 없었다. 그런데 지하철 건설 규칙에는 분기부 양측 벽에 손잡이를 설치하고 적절한 통로를 확보토록 돼 있었다. 지하철 선로 정비규칙은 전동차를 피하기 곤란한 장소에는 20m 간격으로 대피소를 설치하도록 했다. 명백히 규정에 어긋난 작업을 시킨 셈이었다.

구의역 사고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매뉴얼은 '2인1조' 작업을 명시했다. 하지만 부실시공으로 고장이 잦았고 '1시간 내 출동'을 못하면 지연배상금을 무는 판에 휴지 조각일 뿐이었다. 구의역 고장신고가 접수됐을 때 갈 수 있는 작업자는 김군뿐이었다. 김군은 지난달 29일 오후 5시45분 역무실에 들러 열쇠를 받고 5-3 승강장 스크린도어 정비를 마쳤다. 이어 5시54분 9-4 승강장에 도착해 홀로 작업을 하다 3분 만에 진입한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졌다. 결국 매뉴얼을 지키지 못하게 한 현실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그럼에도 힘없는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패턴도 달라지지 않았다. 24년 전 서울지하철공사는 "작업 중 사망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개인의 부주의에 의한 사고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전에도 5명이 작업 중 열차에 치여 사망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메트로도 김군의 잘못으로 몰고 갔다가 항의를 받고 사과했다.

김군은 월급 144만6000원을 받는 용역업체의 고졸 비정규직이었다. 만일 그가 용역이 아닌 서울메트로의 정규직이었다면 '역무원으로부터 스크린도어 열쇠를 받아갔는데'(경찰 조사) 작업 중에 열차가 덮쳤을까. 정비공들은 "비정규직은 투명인간처럼 존재감이 없고 정규직과 현장 소통이 안 돼 사고를 당할 위험이 너무 크다"고 했다. 구조화된 차별은 이렇게 무섭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지만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짊어진 차별과 고통의 무게는 줄지 않았다.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갑과 을.... 힘센 사람들은 가진 돈과 권력으로도 성이 안 차 죽기 살기로 뭉친다. 관피아·법피아·군피아도 모자라 메피아까지 만들어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살 궁리만 한다. 김군처럼 컵라면도 제때 못 먹는 비정규직이야말로 어딘가에 소속되고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인데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는다. 편하게 일하면서 몇 배의 월급을 받아가는 서울메트로 출신 관리직도, 정규직 노조마저 외면한다. 관용과 측은지심이 사라진 이런 공동체가 천년만년 갈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번 사건으로 이 나라의 법과 규정은 사회적 약자에겐 그림의 떡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분명해졌다. 70년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스물두 살의 전태일은 분신하면서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2016년 김군의 어머니는 "아이가 잘못한 것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배운 대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책임자 지시를 잘 따르면 개죽음만 남는다"고 절규했다. 46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민주화를 이뤘고 경제강국이 됐는데 왜 아직도 근로자는 인간이 아닌 기계로 취급돼야 하는가. 스스로 세상과 등진 전태일과 달리 김군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누가 김군을 죽였는가. 불합리한 차별 구조를 미워해야 한다.

구의역 사건은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를 묻고 있다. 힘 있는 사람을 더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사회적 약자도 보호받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인가. 국가는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고 원청-하청 부패고리의 핵심인 메피아를 해체해야 한다. 20대 국회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업무는 직접 고용된 정규직에게 맡겨야 한다'는 이인영법을 군말 말고 통과시켜야 한다. 세월호 침몰의 반성에서 발의됐던 법이다. 돈이 아닌 사람이 우선인 사회를 만드는 것만이 김군의 영혼을 위로하는 길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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