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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에 대한 미국의 관점을 바꾼 사진 이야기(화보, 영상)

  • 박수진
  • 입력 2016.06.08 10:28
  • 수정 2016.06.08 10:32

남성이 아내의 얼굴을 때린 다음 위협하고 있다. 뉴저지 주 새들 리버, 1982년.

1981년, 도나 페라토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뉴욕의 섹스 클럽들을 즐겨 찾는 자유분방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페라토는 촬영에 완벽한 비독점적 다자간 연애를 하는 커플을 찾아냈다. 그들은 행복했고 부유했으며 유행에 앞서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뉴저지의 집으로 페라토를 몇 주간 초대해,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담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페라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목격했다. 남편이 아내를 난폭하게 공격하며, 얼굴을 때렸다. 페라토는 사진을 찍으면 그가 멈출 거라 생각하고 사진을 찍었다. 남편은 멈추지 않았다.

페라토는 현상하지 않은 필름을 두고 몇 달 동안이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자신의 평생의 일이 될, 가정 내 폭력의 끔찍함을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카메라로 무장한 페라토는 전국을 돌며 가정폭력 피신처, 응급실, 학대자 프로그램, 경찰서, 교도소를 찾아다녔다. 1991년에 페라토는 ‘적과의 동거 Living with the Enemy’란 책을 냈다. 미국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적인 폭력을 충격적으로 자세히 밝힌 최초의 책이었다.

몇 년 뒤, 그녀가 찍은 두 눈에 멍이 든 여성의 상징적인 사진이 타임지 표지에 실렸다. 타임 레드 보더 필름의 새 다큐멘터리에서 페라토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최초의 사진에 등장했던 여성이 그 날 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아래 영상)

허핑턴포스트는 페라토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가졌다.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답변을 편집했다.

가정폭력 사진을 촬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981년의 일이었다. AIDS가 퍼지기 전에는 아무하고나 하는 섹스, 강한 마약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다. 나는 맨해튼의 섹스 클럽에서 만난 세련된 뉴저지 커플의 자유분방한 라이프스타일을 기록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젊고 거침없는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지닌 커플들을 만나러 가는 '플라토스 리트리트' 같은 곳에 호기심을 품었다. 나는 누가 참여하는지, 아내가 낯선 사람과 섹스를 하는 걸 보면 남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이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관계의 핵심 속에 들어가고 싶었다. 사회적 터부를 깨는 그들의 자유분방한 라이프스타일이 가족으로서의 책임과 어떻게 결합하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가정폭력을 기록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 위협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폭력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어느 날 밤, 내가 아름다운 맨션에 사는 이 커플의 사진을 찍은지 4개월이 지났을 때, 남편이 나와 내 카메라 앞에서 (사과나 수치도 없이) 아내를 공격했다.

그가 외부인이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아내라는 이유로 자기에겐 아내를 때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는 나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었다. 사랑이 그토록 잘못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나는 가정 내 폭력 기록에 집착하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카메라가 제일 좋은 무기라는 걸 깨달았다.

사진들을 발표했을 때 대중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내 작업 중 상당수는 좌절에서 태어났다. 첫째로는 내가 목격한 폭력 앞에서 무력함을 느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오랫동안 아무 잡지도 내 사진들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정폭력이 얼마나 흔한지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여성들은 침묵 속에서 고통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견디고 살거나 영영 도망쳐 버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것을 여성에 대한 부당함으로 논의하는 일도 없었다. 내겐 여성은 결혼을 하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 사진들을 계속해서 발표하지 못하는 동안, 나는 더 깊이 파고 들어갔다. 경찰차를 함께 타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학대 당한 여성들의 피신처에서 살고, 응급실에서 죽치고 기다렸다. 남성들은 이렇게 끔찍하게 여성들을 학대하고도 어떻게 처벌 받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당시에는 나는 그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쉬운지 나는 깨닫지 못했다. 모두 학대자와 공모한다. 여성의 탓으로 돌린다. 간단했다. 내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일을 맡아 필라델피아에서 찍은 사진들이 공개되었을 때는 마치 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일요일 잡지 표지에서 양쪽 눈에 멍이 든 실제 여성을 보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마침내 비밀이 누설된 것이다. 누구도 이 사회적 문제의 심각함을 모른다고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다행히 80년대 초기에 여성들이 시작한, 법을 바꾸고 가해자를 실제로 처벌할 수 있는 법을 도입하자는 강한 풀뿌리 운동이 있었다. 내 사진들은 그들이 대중 인식 캠페인, 피난처 운동 강화, 무엇보다 여성과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자금 모금에 필요한 증거가 되었다.

어린 소년이 아버지가 체포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난 엄마를 때린 당신이 미워요! 이 집에 돌아오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당신의 사진이 실제로 미쳤던 영향은 무엇이 있나?

1992년에 내 책 ‘적과의 동거’가 출판되었을 때, 뉴욕의 가족 보호구역(Sanctuary for Families)은 내 작품들을 전시하고 싶어했다. 나는 이런 우울한 이미지들로 그들이 돈을 벌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지만 한 번 해보기로 하고 가족 보호구역만을 위한 전시를 만들었다. 그들은 하룻밤 만에 86,000달러를 모았다. 사진을 팔아서가 아니라 입장권을 팔고 책을 250달러에 팔아서 번 돈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일이었다. 나는 내 작업으로 그런 직접적인 행동을 하고 싶었다. 나는 내 작업을 예술이라고 보지 않는다. 내게 있어 그건 타인에 대한 봉사다.

1992년에 나는 비영리 단체(501c3)를 만들고 이사회를 조직했다. 가정 내 학대 인식 프로젝트 주식회사(Domestic Abuse Awareness Project, Inc.)가 그렇게 탄생했다. 우리는 전세계 가정폭력 단체들과 함께 일했다. 우리는 사진의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사회를 교육시켰다. 14년 동안 우리는 수천 번에 걸쳐 전시, 강의, 모금을 했으며 사회가 학대 당한 여성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필요에 집중하도록 했다. 나는 사진가로서 그러한 순환을 깨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나는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암트랙 통근 열차에서 조 바이든을 만났다. 그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관련한 법을 만드는데 참여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자기 책장에 내 책이 있으며, 책 속의 이야기들에서 교육을 얻었다고 말했다.

2004년쯤에 나는 ‘적과의 동거’에 나온 여성들 중 상당수가 용기를 내 학대자를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거기서 영감을 받아 나는 ‘I AM UNBEATABLE’(주: 나는 무적이다 라는 뜻이지만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나는 맞을 수 없는 사람이다 라는 뜻도 된다)다른 운동을 시작했다. 죽는 사람이 생기기 전에 아이를 데리고 가해자를 떠난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운동이다.

1980년대 이래 가정폭력에 대한 태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나는 아주 큰 변화들이 일어나며 진보하는 것을 보았다. 경찰이 가해자를 구속하고, 가해자가 그룹 모임에 나가고, 피난처의 여성들이 안전하게 지내고, 여성들이 혼자 힘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1990년대의 미국은 여성들에게 훨씬 더 안전한 곳이 되었다. 그러나 2001년부터 퇴보가 시작되었다. 전쟁을 부르는 외침이 전세계 지형을 장악하기 시작하며, 미국의 가족들은 패배했다.

사람들은 이제 가정 내 폭력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지만, 많은 사람들, 주로 남성들은 아직도 친밀한 여성을 때려도 처벌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 여자는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오래된 낡은 핑계를 댄다. 여성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는 가해자를 용납하고 가해자와 결탁한다.

가정폭력에 대해 사람들이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가정폭력은 지옥이다. 자유 세계 시민들인 우리의 권리에 대한 부당함이다. 피해자만이 아닌 모두에 대한 모욕이다. 근처에서 여성이 자기 집안에서 강간당하고 고문당하는 걸 알면서 스스로의 삶에 대해 기분이 좋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남성이 집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죄인들처럼 고문하고 학대할 수 있다면, 집이 좋은 게 뭐란 말인가?

나는 사람들이 이제는 다른 세상이라는 걸 이해하기 바란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맞지 않아야 한다. 모두 힘을 합쳐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들이 안전하게 삶과 자존감을 다시 만들어 가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주어야 한다.

*허핑턴포스트US의 Behind The Photos That Changed How America Saw Domestic Violence를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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