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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산업은행장이 대우조선을 둘러싼 '관치금융'의 실체를 까발렸다

2015년 9월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5년 9월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치금융', 한국 금융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상징하는 단어다. 은행의 자율적인 판단과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정부가 일방적인 지시로 특정 기업에 여신을 지원하는 등의 풍토를 가리킨다.

관치금융의 의미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중앙일보의 이 기사는 "최근의 신문에도 여전히 관치금융 운운하는 기사들이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정부나 은행 모두 아직까지는 완전하게 달라지지 못한 모양입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위 기사가 써진 지 무려 16년이 지났건만 관치금융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한 축을 이루면서 정부가 그토록 부르짖는 '자유시장경제'를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경영 부실 은폐 의혹으로 8일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의 압수수색을 받은 대우조선해양은 '관치금융'이 왜 나쁜지를 보여주는 최신의 사례다. 대우조선해양은 2013~2014년에 발생한 대규모 적자를 숨겨왔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간 숨겨왔던 손실은 2015년 상반기에 일거에 반영되어 5조5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6년 3월 뒤늦게 2013~2014년도 재무재표를 수정 공시하여 2015년의 영업손실을 2조9000억 원 가량으로 정정했는데 "분식회계 또는 심각한 회계처리 부실을 시인한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결국 대우조선해양은 4조2000억 원에 달하는 유동성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지원받게 됐다. 이는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경영진은 분명한 경영상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책을 받지 않았다. 최근 검찰 조사가 시작되면서 출국금지 조치를 받은 것이 현재까지의 전부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임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숱하게 받아왔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했던 2015년 당시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은 국정감사에서 집중사격의 대상이 됐다.

지난 2월 산업은행을 떠난 홍 전 회장은 8일 발행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이 초읽기에 들어간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산업은행 책임론'에 대해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며 항변했다. 2015년의 유동성 지원 결정도 "청와대·기획재정부·금융당국이 결정한 행위로, 애초부터 시장원리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중순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당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등으로부터 정부의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다... 당시 정부안에는 대우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은과 최대 주주 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얼마씩 돈을 부담해야 하는지도 다 정해져 있었다. (경향신문 6월 8일)

통상적으로 산업은행이 '관치금융'의 창구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기획재정부와 청와대, 그리고 금융당국이 거의 직접적으로 개입하다시피한다는 것이 홍 전 회장의 후일담(?)이다.

홍 전 회장의 이 인터뷰는 관치금융이 여전히 실존한다는 '공공연한 비밀' 외에도 이러한 관치금융이 얼마나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전임자'의 입장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관치금융의 꽃은 '낙하산 인사'다. 물론 홍 전 회장은 이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청와대 몫이 3분의 1, 금융당국이 3분의 1, 그리고 산은 몫이 3분의 1이다. 산은은 업무 관련자를 보내지만 당국은 배려해 줄 사람을 보낸다. 이런 식으로 인사한 지는 꽤 됐다..."

"대주주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대우조선 사장은 산업은행보다 더 큰 배경을 갖고 있었다. CEO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대주주 역할은 제한돼 있었다. 오히려 모 사장 때는 산업은행에서 파견된 감사를 잘랐다. 그런 상태에서 정확한 회계 부실을 감지할 수 있었겠는가. 2015년 3월 대우조선 사장의 임기가 만료돼 이런저런 후보를 올렸다. 위쪽에서 특정 인물을 찍어 검증한다며 자료를 올리라고 하더라. 결과는 그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이는 주요 인사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경향신문 6월 8일)

인터뷰에서 거론된 측은 모두 홍 전 회장의 발언을 부인하고 있다. 최경환 전 부총리 측은 홍 전 회장의 발언에 대해 "일방적 주장으로 생각된다"면서 "대우조선해양 지원책은 산업은행과 금융위가 협의해 만든 것"이라고 경향신문에 밝혔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개인 주장에 특별히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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