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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사태를 방관하다 '특단의 대책'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게 이 정부의 습관이다. 그 특단의 대책이란 것도 문제를 단순화하고, 우리와 '그들'을 분리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잘못 매긴 것이다. 그 결과 반발이 적을 소수자와 약자, 고등어에게 책임이 전가되고, 차별과 편견에 기대 쉽고 편한 해결책을 탐한다. 불편을 감수하고 고통을 분담하자고 설득할 자신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현재 이대로가 좋은 것인가. 영화 '곡성'에서 초등학생 딸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나는 이 질문을 해외에서 "링거 고군분투"(청와대 브리핑)를 하고 오신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에게 드리고 싶다.

  • 권석천
  • 입력 2016.06.08 06:25
  • 수정 2017.06.09 14:12
ⓒ연합뉴스

뭣이 중헌디? 지난 주말 인터넷은 교사 성폭행으로 들끓었다. 전남 섬마을에서 학부모·주민 3명이 교사를 성폭행한 사건이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교사의 대응이다. 새벽에 정신이 든 피해 교사는 즉시 경찰 112 종합상황실에 신고하고, 첫 배로 육지의 병원으로 가 DNA를 채취한다. 그렇게 교사가 용기를 갖고 침착하게 대처했기에 짐승보다 못한 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었다. 자신이 참으면 다른 여성들이 피해를 본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뭣이 중허냐고! 문제는 교육부 조치였다. 교육부는 여성 교사들을 도서 벽지 지역에 가급적 신규 발령하지 않는 방안을 교육청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여성 교사 비율이 초등학교 77%, 중학교 69%인 상황에서 신규 발령 자제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특정 지역의 문제로 분리해내면 되는 걸까. "범인들에게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라"고 검찰에 요구하고, 해당 지역 치안을 강화하는 게 정부가 할 일 아닐까.

뭣이 중헌디? 강남역에서 구의역까지 슬픔이 내선순환, 외선순환하고 있다. 희망은 10번 출구와 9-4 승강장에 붙은 포스트잇들에 있다. 젊은이들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또래의 아픔에 공감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 중요한 건 여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원청-하청의 부패 고리를 걷어내는 일이다.

뭣이 중허냐고! 강남역 사건 후 경찰은 범죄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해 '행정 입원'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은 유감 성명을 냈다. "정신장애인을 위험한 존재, 격리의 대상으로 예단해 이들을 향한 편견과 선입견이 심화...." 구의역도 다르지 않다. 사고 책임을 비정규직 청년에게 돌렸다가 사과했던 서울메트로는 '메피아'(메트로+마피아) 비판이 거세지자 '전 간부 사표'를 발표했다. 당장 인터넷엔 냉소가 번진다. "쇼하고 있네. 박원순은 뭐하냐." "잠잠해지면 없던 일로... 왜? 대중은 개·돼지니까."

뭣이 중헌디?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 그간 정부가 제시해온 대책은 사실상 '마스크를 쓰라'는 것뿐이었다. 무엇보다 역학(疫學) 조사에 가까운 심층적인 원인 규명 작업이 시급하다. 중국에서 오는 미세먼지가 심각하다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민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기업들의 감내도 끌어내야 한다.

뭣이 중허냐고! 느닷없이 고등어와 삼겹살이 미세먼지 주범으로 지목됐다. 직화구이집에 발길이 뜸해지고, 고등어 값은 지난해 대비 20% 급락했다. 급기야 고등어 생산단체들이 환경부를 항의 방문했다. 고등어는 말을 못하지만 고등어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말을 할 수 있음을 몰랐던 것인가. 경유값 인상을 놓고 부처 간 이해가 첨예해지자 '노후 경유차 수도권 진입 제한'으로 우회했다.

뭣이 중헌디? 강남역부터 구의역, 미세먼지, 성폭행까지 본질은 하나다.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한 사회의 모순과 먹이사슬이 뒤엉켜 있다. 그래서 사건보다 중요한 것이 그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이다. 수습 과정에 원칙과 진정성이 있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고, 사회도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뭣이 중허냐고! 사태를 방관하다 '특단의 대책'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게 이 정부의 습관이다. 그 특단의 대책이란 것도 문제를 단순화하고, 우리와 '그들'을 분리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잘못 매긴 것이다. 그 결과 반발이 적을 소수자와 약자, 고등어에게 책임이 전가되고, 차별과 편견에 기대 쉽고 편한 해결책을 탐한다. 불편을 감수하고 고통을 분담하자고 설득할 자신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현재 이대로가 좋은 것인가.

영화 '곡성'에서 초등학생 딸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나는 이 질문을 해외에서 "링거 고군분투"(청와대 브리핑)를 하고 오신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에게 드리고 싶다. 지금 여기, 한국 사회에 중요한 게 뭐냐고. 아무도 물지 않을 미끼로 언제까지 낚시를 하실 생각이냐고.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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