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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토신' 미래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호르몬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폴 잭 클레어몬트대 대학원 교수는 '옥시토신의 분비를 증가시키면 상대방을 신뢰하고 말도 쉽게 믿는다'는 사실을 밝혀내 저명한 과학저널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했다. 백화점 매장에 '액체 옥시토신'을 화장실 방향제처럼 주기적으로 뿌려준다면 소비자들은 점원의 말을 쉽게 믿고 물건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이런 황당한 소설 같은 가정을 실제로 적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선 이른바 '쑥스럼 방지제'(anti-shyness)라는 이름으로 '코에 뿌리는 액체 옥시토신'이 실제로 판매되고 있다.

  • 정재승
  • 입력 2016.06.07 12:49
  • 수정 2017.06.08 14:12
ⓒGettyimage/이매진스

미국에서는 '쑥스럼 방지제'라는 이름으로 '코에 뿌리는 액체 옥시토신'이 판매되고 있는데, 연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일으킨다고 한다. 사진은 영화 <연애의 온도>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간단한 수수께끼로 오늘의 주제를 소개해 볼까 싶다. 아빠보다 엄마에게 훨씬 더 많은 것. 고양이보다 개에게 훨씬 더 많은 것. 연인과 헤어진 사람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훨씬 더 많은 것. 인색한 구두쇠보다 후한 기부자들에게 훨씬 더 많은 것.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정답은 옥시토신이다.

옥시토신은 호르몬의 일종으로, 아기를 낳을 때 자궁의 민무늬근을 수축시켜 진통을 유발하고 분만이 쉽게 이루어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흔히 자궁수축 호르몬이라고 부른다. 출산 후에는 유두가 자극을 받을 때 혹은 모유 수유를 할 때 분비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남자들에게 분비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시상하부에서 합성되어, 과립 형태로 신경돌기를 통해 뇌하수체 후엽에 저장되고 분비된다. 남자에게도 많이 분비된다는 얘기는 자궁수축 외에도 다른 기능들이 있다는 의미일 게다. 그중 하나가 신뢰와 사회성을 조절하는 기능이라 여겨진다. 옥시토신 분비가 늘어나면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걸기도 하고, 쉽게 신뢰하기도 하며,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개와 눈 마주친 사람도 분비량 늘어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인과 함께 지내는 경우 개의 옥시토신 분비가 고양이에 비해 무려 5배가 많다고 한다. 주인이 개와 고양이들과 각각 10분 동안 함께 놀아주고 그 전과 후에 타액을 채취했더니, 개의 경우 주인과 함께한 뒤 옥시토신 수치가 57.2% 급증한 반면 고양이는 12%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한다. 비교하자면 사람의 경우는 배우자 혹은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옥시토신 수치가 40~60% 상승한다. 다시 말해 개들은 사람 못지않은 양의 옥시토신을 분비한다는 것이다. 개가 고양이보다 주인과 관계 형성에 좀 더 예민한 반면 고양이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임을 말해주고 있다.

더 흥미로운 건 개와 눈을 마주친 사람의 몸에서도 옥시토신 분비가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한 연구진은 개와 주인이 마주 보거나 주인이 개를 쓰다듬고 또 말을 걸 때 개와 사람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주인과 애완견이 100초 이상 눈을 맞췄을 때 옥시토신이 사람 몸에선 평소보다 4배 증가했다. 물론 개 역시 40% 가까이 옥시토신 분비가 늘어났다. 개와 인간은 완전히 다른 종인데도 마치 부모와 자식이나 연인 사이처럼 마주 보면 관계형성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나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일종의 '선순환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개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사람 역시 옥시토신 분비가 늘어나는 것으로 실험 결과 밝혀졌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에 실렸는데, 여기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결과 중 하나는 주인이 애완견 눈을 마주칠 때 가볍게 쓰다듬으면 옥시토신이 늘어난 반면 애완견에게 말을 걸면 개 몸속의 옥시토신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대개 말을 거는 상황은 명령이다 보니 그렇지 않나 싶다.

지난 2005년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폴 잭 클레어몬트대 대학원 교수는 '옥시토신의 분비를 증가시키면 상대방을 신뢰하고 말도 쉽게 믿는다'는 사실을 밝혀내 저명한 과학저널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지 않은 채 '컴퓨터상의 통신'을 통해 '신뢰 게임'(trust game)을 하는 실험을 실시했는데 결과가 매우 흥미롭다.

실험 참가자들은 우선 10달러씩 받고 커다란 전산실 내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게임은 두 사람씩 짝지어 진행됐는데,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한 사람이 파트너를 신뢰한다는 표시로 현금을 주면 상대방은 그 금액의 3배를 받게 된다. 예컨대 전혀 모르는 사이인 두 사람 A와 B가 게임에 참여했다고 치자. A는 자신이 받은 참가비 중 일부 혹은 전부를 B에게 줄 수 있다. 자신의 돈을 상대방에게 주면(일종의 투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규칙에 따라 상대방 B는 그 금액의 3배를 지급받게 된다. 결국 A가 주는 정도가 늘어나면 B의 이득도 덩달아 커진다. 이 게임의 핵심은 이렇게 3배로 늘어난 돈을 B가 A와 어떻게 나누는가 하는 것이다. B는 3배로 늘어난 돈을 다 가질 수도 있고, 일정 금액을 돌려줄 수도 있다. 물론 전부 돌려주어도 상관없지만 그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게임에서 A는 B가 자신에게 얼마라도 돌려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믿으면 큰돈을 투자하겠지만, 신뢰감이 없다면 B에게 돈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신뢰 게임은 서로 모르는 두 사람 간의 '신뢰'를 측정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다.

영업효과 높이려면 임산부 집중공략?

상대에 대한 상호 신뢰를 측정한 다음 혈액을 채취한 결과 상대에게서 받은 신뢰의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옥시토신의 분비 수준이 높았고, 더 많은 돈을 되돌려주는 경향을 발견했다. 심지어 주사기로 옥시토신을 주입해 주면 신뢰가 크게 증가하고 낯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관장하는 편도체(Amygdala)의 활동이 현저히 줄어드는 효과까지 보였다. 폴 잭 교수는 옥시토신이 안정감과 유대감, 상대방에 대한 신뢰 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서로 믿고 의지하고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옥시토신은 임신이나 출산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 자연스레 분비되는 성호르몬의 일종이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홈쇼핑에 솔깃해 물건을 사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이며, 임신이나 출산을 한 직후에는 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다.

이 연구 결과를 가만히 살펴보면 매우 무시무시한 함의까지도 내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만약 책 전집이나 자동차를 팔아야 하는 외판원(혹은 영원사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나는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동네에 가서 어떻게 영업활동을 해야 할까?

폴 잭 교수의 논문을 읽어본 외판원이라면 '이 아파트 단지에 입주한 가정들 중에서 출산을 하거나 임신을 한 지 3년 이내의 전업주부가 살고 있는 집'을 골라 벨을 누르고 영업활동을 할 것이다. 그러면 그 아주머니가 내 말을 듣고 물건을 사줄 가능성이 3배 이상 높아진다. 이제 영업도 경영학보다는 신경과학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할 때 더 효율이 높아질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아예 옥시토신을 가지고 다니면서 뿌리면 되지 않을까? 아무 집에나 벨을 누른 뒤 주인이 나오면 코에다가 '액체 옥시토신'을 칙- 뿌린 다음 영업활동을 시작하면 심지어 남성들에게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마치 영화 <맨인블랙>에서 기억을 지우는 '번쩍 장치'처럼 말이다.) 아니면 백화점 매장에 '액체 옥시토신'을 화장실 방향제처럼 주기적으로 뿌려준다면 소비자들은 점원의 말을 쉽게 믿고 물건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이런 황당한 소설 같은 가정을 실제로 적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선 이른바 '쑥스럼 방지제'(anti-shyness)라는 이름으로 '코에 뿌리는 액체 옥시토신'이 실제로 판매되고 있다. 옥시토신이 사회성을 강화하고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를 줄여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위한 효과제로 팔리는 것이다(이 액체 옥시토신은 중매 회사에서 연애 경험이 많지 않은 노총각, 노처녀들에게 종종 사용한다). 지금까지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사용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쇼핑을 촉진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아마도 아직은 이런 행동을 규제할 법률도 없을 것이다).

옥시토신 스프레이는 실제로 훨씬 더 다양한 방면에 활용될 전망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 프란치스카 플레소 교수팀은 옥시토신 호르몬을 코로 흡입할 수 있는 스프레이를 개발해 23~43살의 비만 남성 1610명에게 투여했더니 음식 사진을 보고 식욕을 느끼는 정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보고했다. 다시 말해 옥시토신이 충동적인 경향을 줄여주고 자제력을 높여준다는 것이니, 비만의 새로운 치료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본 대학병원 정신의학 클리닉 니나 마시 연구팀은 옥시토신이 많을수록 생계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172명의 피험자들에게 10유로를 주고, 전부를 그냥 가져도 되지만 일부를 기부할 수 있는데 기부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는 설문지를 돌렸다. 기부하고 싶은 경우 아프리카 우간다 원주민의 생계를 돕는 사업 또는 우간다 우림 재조성 사업 중 하나를 택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소변검사를 통해 이들의 옥시토신 수치를 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 옥시토신 수치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 비해 훨씬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높은 옥시토신 수치는 오로지 생계지원 사업 기부와만 연관이 있었다는 것이다. 옥시토신 수치가 높든 낮든 환경보호 사업 기부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미래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호르몬

더 나아가 이 연구팀은 피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짜 옥시토신과 가짜 옥시토신을 코 스프레이를 통해 투여한 뒤 기부 의사를 물어봤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진짜 옥시토신 그룹은 생계지원 사업에 기부하고 싶은 액수가 평균 4.50유로로 가짜 옥시토신 그룹에 비해 2배 많았다. 그러나 환경보호 지원 사업에 기부하고 싶은 마음은 옥시토신 투여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옥시토신이 사회성을 증가시키고 다른 사람을 돕는 마음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제 기부단체들이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들고 다니며 기부금 모금을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옥시토신 경제학이라 부를 만큼 아마도 옥시토신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호르몬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는 것도 우리 사회 전체의 옥시토신 분비가 전반적으로 줄어들어서가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과 공감하려는 노력이 줄어들고,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보다 경쟁에서 누르거나 혐오하는 사회에서 옥시토신 분비는 현저히 낮아질 것이다.

옥시토신이야 뇌에서 벌어지는 현상일 뿐이다. 신뢰 사회로 회복하기 위해 어찌 억지로 옥시토신 분비를 늘릴 수 있으랴!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제도와 문화로 옥시토신 분비가 활성화된 사회를 만들 것인가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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