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스탠퍼드대 수영선수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재판 중 가해자에게 편지를 읽어주었다

  • 김태우
  • 입력 2016.06.07 12:40
  • 수정 2016.06.07 18:31

2015년 1월, 두 명의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생이 캠퍼스에서 자전거를 타다 의식이 없는 여성 위에 올라타 있던 한 남자를 발견했다. 지난 3월 캘리포니아의 배심원단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20세 브록 앨렌 터너를 3건의 성폭행 혐의로 유죄 평결을 내렸고, 터너는 이로 인해 최대 14년의 징역형을 직면했다. CNN에 따르면 지난 2일(현지시각) 터너는 구치소 복역 6개월과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았다. 판사는 장기 복역은 터너의 '미래에 극심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해 이러한 '솜방망이 처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관련기사

- 판사가 정신 잃은 여성을 성폭행한 스탠퍼드대 수영선수의 '미래'를 걱정해 '구치소 복역 6월'을 선고하다

같은 날, 이 익명의 피해자는 재판 도중 가해자에게 당시 상황과 현재 심경을 밝히는 편지를 읽어주었다. 무려 12장에 달하는 그녀의 편지는 전문이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7백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에밀리 도'(Emily Doe)라는 가명으로 본인을 숨긴 그녀의 편지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괜찮으시다면 이 편지를 읽는 동안 피고에게 직접 얘기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나를 모르겠지만, 당신은 내 안에 들어왔었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오늘 이곳에 오게 됐어.

2015년 1월 17일, 집에서 조용히 토요일 밤을 보내고 있었죠. 아버지가 저녁을 만들어주셔서 주말 동안 집에 들른 여동생과 함께 식탁에 앉았어요. 저는 당시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잠이 들 시간이 가까워져 왔어요. 동생이 친구들과 파티에 간 사이 집에서 텔레비전도 보고 책도 읽으며 혼자 시간을 보내려다 동생과 시간을 보낼 유일한 밤이라고 생각해 계획을 바꿨습니다. 달리 할 것도 없었고, 집에서 10분 거리에 파티가 있어 바보 같은 춤을 추며 동생이나 부끄럽게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저는 베이지색 가디건을 입고 있었는데, 동생은 도서관 사서 같다고 놀렸어요. 파티에 도착한 후 재밌는 표정을 지어가며 긴장을 풀었고, 술을 지나치게 빨리 마시기 시작했어요. 대학 졸업 후에 주량이 한참 떨어진 걸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죠.

제가 다음으로 기억하는 건 들것에 실려있던 제 모습이에요. 제 손과 팔꿈치에는 굳은 피가 묻어있었고 반창고가 붙어있었죠. 심하게 넘어져서 학교 사무실에 와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차분하게 동생이 어디 있는 지 물어봤고, 자리에 있던 학교 직원은 제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해줬어요. 그의 설명에도 전 다른 사람 얘기를 하는 것일 거라고 확신했죠. 파티에 있던 사람 중 단 한 명도 몰랐으니까요. 그러다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되어 입고 있던 병원복을 벗고 속옷을 내리려 손을 갖다 대보니, 아무것도 만질 수 없었어요. 아직도 그때 그 기분을 잊을 수 없어요.

그러고 나서 목 뒤와 머리카락에 있던 솔잎을 빼냈어요. 그때만 해도 '나무에서 떨어진 솔잎이 머리에 붙어있나 보다'고 생각했죠. 전 이불만 걸친 채 여러 곳을 옮겨 다녔어요. 그리고 한 사무실에서는 '성폭행 피해자'라고 적힌 서류를 사인하라고 했죠. 그제서야 '뭔 일이 있긴 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제 옷은 압수되었고 나체로 서 있는 동안 간호사들이 제 몸에 난 상처를 줄자로 재고 사진을 찍어갔어요. 그리고 면봉으로 질과 항문 내부를 검사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난 후 드디어 샤워를 하게 됐어요. 물을 맞으며 제 몸을 살펴보다가 내 몸이 싫다는 생각이 들었죠. 정말 무서웠어요. 어떤 게 제 몸에 들어왔었는지, 누가 만졌는지 알 수 없었죠. 제 몸을 재킷처럼 벗어 다른 모든 것과 함께 병원에 놔두고 오고 싶었어요.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절 병원에서 데려온 동생과 한참을 울었어요. 그리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받았죠. 남자친구는 제가 취한 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음성 메시지로 남겼다고 말해줬어요. 계속 괜찮냐고 물어보는 그에게 저는 '괜찮아'라는 한 마디를 남긴 채 끊어버렸어요. 제 남자친구나 부모님께 말할 준비가 안 되어있었거든요. 전 너무 두려워서 그냥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회사에서 핸드폰을 하던 중 기사를 하나 읽었어요. 그 기사에는 제가 의식을 잃었고, 머리는 산발인 채로 목에는 목걸이가 감겨 있고 브라는 벗겨져 있었으며, 드레스는 허리 위까지 올라와 있었다고 적혀있었죠. 그렇게 제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처음 알 게 되었어요. 전 그 사람이 누군지 몰랐죠. 아직도 그가 누군지 몰라요. 그 기사를 읽다 보니 '이건 절대 내 얘기가 아닐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기사가 나온 날 밤, 저는 부모님에게 제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씀드렸어요. 뉴스를 보지 말라는 말과 함께 말이죠. 이 사건이 재판까지 갈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목격자들도 있었고, 가해자는 도망가려다 잡혔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강한 변호사, 전문 감정인, 사설탐정 등을 고용해 제 이야기에서 허술한 점들을 찾아 이 성폭행 사건이 그저 오해로 빚어진 일이라고 주장하려 했죠. 저는 당시 의식이 없어 모든 일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 년 내내 그와 싸워야 했어요.

그는 우리가 땅에 누워있었던 건 제가 넘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어요. 여자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줘야죠. 여자가 너무 취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넘어졌다면, 위에 올라타 속옷을 벗기고 버자이너에 손을 대지는 말아야죠. 그리고, 그는 그가 제 위에 있었던 내내 제가 깨어있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다고 주장했어요. 자전거를 타고 가던 두 명이 어둠 속에서도 제가 의식이 없는 것을 발견했는데도 말이죠.

당신은 유죄야. 12명의 배심원이 의심할 여지도 없이 당신을 3건의 성폭행 혐의로 평결 내렸어. 그건 한 건당 12건의 동의로, 36번의 '예스'(Yes)가 당신의 혐의를 입증한 거야. 이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쯤 당신의 진술서를 읽었어. 당신은 우리 둘 다 술에 취해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고 말했지. 술은 핑계가 아니야. 술이 내 옷을 벗기고 폭행한 건 아니잖아.

당신은 하룻밤 음주가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지. 음주는 두 명의 인생을 망쳤어. 당신과 내 인생을. 당신은 내 가치와 사생활, 내 시간과 안전, 내 자신감과 목소리를 가져가 버렸어. 사고 전에 난 자립심이 넘쳐나는 사람이었어. 난 이제 혼자 어딜 가기도 무서워.

브록 터너가 일류 대학에서 유명한 운동선수였다는 사실은 관대한 처분으로 이어질 것이 아니라, 성폭행은 사회 계층에 상관없이 누가 범하던 간에 범죄임을 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여성들에게 제가 당신과 함께 있음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혼자라고 느낄 때도 저는 당신과 함께 있어요. 남들이 당신을 무시하고 의심할 때도 저는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 싸움을 멈추지 마세요. 전 당신을 믿으니까요. 비록 제가 모두를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제가 오늘 이 편지를 읽음으로써 당신은 중요하고, 존경받아야 하고, 강한 사람임을 깨달았으면 해요. 저는 당신과 함께해요.

이 편지는 사건으로 인해 무너졌던 여성의 삶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려는 노력을 자세히 담고 있으며, 비슷한 일을 당한 모든 여성들에게 희망을 실어준다. 이 사건에 분노한 모든 이들은 해당 판결을 내린 판사에게 비난을 쏟아내고 있으며, NPR에 따르면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제프리 로젠 검사장은 '처벌 수준이 범죄에 걸맞지 않다'며 판결을 비판한 바 있다. 또한, 현재 미국 청원 사이트 Change.com에는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판사의 퇴진을 요청하고 나섰다.

이 편지의 전문은 이곳에서 읽을 수 있다.

h/t Santa Clara County Government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국제 #사회 #사건 #성폭행 #성범죄 #여성 #미국 #스탠퍼드 #수영선수 #편지 #재판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