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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가 원작의 설정을 버리면서 취한 몇 가지 영화적 강점

결국 <아가씨>에서 겉으로 보기에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성적 묘사 부분이 될 것이다. 이 영화에 남녀간의 섹스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가씨와 숙희 사이의 굵직한 섹스 시퀀스가 몇 차례 있고, 이 과정의 성적 묘사는 대단히 과감하고 생각보다 조금씩 더 길다. 그러나 그렇게 긴 묘사를 통틀어 딱히 성적 흥분을 일으키게 할 만한 구석은 거의 없다. 이 영화에서 포르노그래피를 향한 욕구를 챙기고자 했던 관객이라면 다른 걸 찾는 게 좋겠다(그녀들이 탈주하는 세계가 정작 남성-포르노그래피화된 야설의 세계다). 대신 그간 한국영화에서 본 적이 있나 싶었던 자세나 표정들이 나와서 좋다(표정이 특히 마음에 든다. 이 영화에는 섹스 장면에 언제나 등장하는 재채기하기 직전의 표정 같은 건 없다).

  • 허지웅
  • 입력 2016.06.06 08:13
  • 수정 2017.06.07 14:12
ⓒCJ 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는 언제나 <핑거스미스>에서 석스비 부인이 보여주는 이야기 말미의 변화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해왔다. <핑거스미스>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사람은 이모부도 아니고 젠틀맨도 아니다. 석스비 부인이다. 그는 무언가를 그토록 오랫동안 계획하고 치밀하게 조종해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키운 딸과 낳은 딸 앞에서 어떻게 그리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단 말인가.

단지 키운 딸을 향한 모성애나 양심의 가책이 작동한 모양이라 여기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재미있게 잘 읽고 있던 이야기에 없던 틈이 큼지막하게 벌어진 것 같아 아무래도 개운치 않았다. 그 틈을 매워줄 다른 반전이 있을 줄 알았으나 남아 있는 페이지는 속절없이 동이 났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박찬욱의 <아가씨>가 이 부분을 어떻게 바꾸고 개연성을 통제했을지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궁금증이 풀렸다.

애초에 그런 설정 다 날려버림.

시작은 원작과 같다. 배경만 일제강점기로 바뀌었다. 주인공은 고아다. 대부호인 이모부의 집에서 사는 그녀는 엄격하게 통제된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이모부는 희귀한 고서들을 수집하고 있고, 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그녀가 단상에 앉아 낭독을 한다. 그런 그녀의 삶에 백작(원작의 젠틀맨)이 등장한다. 백작은 주인공 앞으로 상당한 액수의 상속금이 있다는 것과 그녀가 결혼을 해야 그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백작은 주인공을 꾀어 결혼하고 돈을 가로챌 심산이다. 이 작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백작은 역시 고아이며 소매치기인 숙희를 하녀로 잠입시켜 아가씨 곁에서 생활하게 만든다. 두 여인은 급격하게 친해진다.

원작은 <올리버 트위스트>의 레즈비언 버전 같은 이야기였다. 박찬욱의 <아가씨>는 주인공들을 옥죄어 억누르고 있는 질서로부터 탈주하고 복수도 성공하는 연인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델마와 루이스> 해피엔딩 버전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중반까지는 익숙하게 흘러가다가 원작과 결별하고 갈라지는 시점부터 조금 더 경쾌하고 활기 있어진다.

중반 이후의 바뀐 이야기는 반전으로 이어지는 원작의 설정 하나를 버리는 대신 훨씬 간결하고 직선적인 느낌을 준다. 떠올려보면 전작 <스토커>는 한 소녀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각성하고 어머니의 질서로부터 벗어나 세상 밖으로 탈주하는 이야기였다. <아가씨>에서 주인공들은 이모부와 그의 은밀한 취미가 대변하는 남성적인 억압의 세계로부터 탈주한다.

조금 더 감독의 취향으로 다듬어진 게 분명한 낭독회의 풍경은 꽤 변태적이고 재미있다. 언뜻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나 직접적으로는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부분에 살을 붙여 부각시켰다면 조금 더 논쟁적인 영화가 되었겠지만 등급을 받기 어려웠을 테니.

결국 <아가씨>에서 겉으로 보기에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성적 묘사 부분이 될 것이다. 이 영화에 남녀간의 섹스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가씨와 숙희 사이의 굵직한 섹스 시퀀스가 몇 차례 있고, 이 과정의 성적 묘사는 대단히 과감하고 생각보다 조금씩 더 길다. 그러나 그렇게 긴 묘사를 통틀어 딱히 성적 흥분을 일으키게 할 만한 구석은 거의 없다. 이 영화에서 포르노그래피를 향한 욕구를 챙기고자 했던 관객이라면 다른 걸 찾는 게 좋겠다(그녀들이 탈주하는 세계가 정작 남성-포르노그래피화된 야설의 세계다). 대신 그간 한국영화에서 본 적이 있나 싶었던 자세나 표정들이 나와서 좋다(표정이 특히 마음에 든다. 이 영화에는 섹스 장면에 언제나 등장하는 재채기하기 직전의 표정 같은 건 없다).

배우들의 연기는 역시 현장에서 잘 조율된 기색이 역력하다. 김민희의 일본어 연기는 생각보다 훨씬 더 좋다. 김태리는 연기도 비교적 안정되어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영화에서 '못 보던 얼굴'이다. 좋은 얼굴이다. 그걸 영리하게 사용할 쓰임과 자기 길을 찾는다면 이건 좋은 출발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하정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두 가지다. 먼저 이 영화는 의외로 웃음 포인트가 많고 그 팔할이 하정우 덕분이다. 역할의 능청스러움이나 악역으로서의 기민함은 원작의 젠틀맨보다 백작을 훨씬 매력적인 인물로 보이게 만든다. 자유도가 높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냥 혼자 영화 안에서 호객행위하며 신나게 놀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와 격리되어 따로 놀지 않는 선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배우의 능력이다.

다른 하나는 결과적으로 아주 달라져버린 캐릭터의 인상이다. 젠틀맨은 악랄한 인물이었다. 백작도 그렇다. 이야기가 한 차례 반전을 맞은 이후 백작이 아가씨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고백할 때 원작을 읽은 관객은 생각했을 것이다. 야 저놈이 나머지 반도 먹으려고 하는구나, 능글맞기 짝이 없는 놈. 그러나 영화가 끝나면 알 수 있듯 이야기는 원작과 달라져 있고 결과적으로 백작은 젠틀맨과 달리 꽤나 순정이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원작의 설정 하나가 증발하면서 두 여인이 탈주한 이후의 백작은 (소매치기 패거리가 그렇듯이) 자칫 이야기 밖으로 떠밀려버릴 운명이다. 영화에서 실제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백작이라는 인물 자체의 성격이 어느 정도 낭만화된 덕에 그의 운명을 그리는 후반부가 이야기 안에서 균형을 찾는다.

나는 <박쥐>를, 사랑하는 사람과 말 그대로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게 된 연인이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한다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반자살하는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박찬욱의 영화가 행복한 결말을 갈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고 느낀다. <스토커>는 소녀가 성장하고 각성해 자기를 가둬둔 틀 밖으로 뻗어나가는 이야기였다. <아가씨>에선 연인이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세상 밖으로 나간다. 그들은 행복했을까. 왜 하필 그 시점에 상하이로 갔을까. 그러나 그들은 딱히 역사와 불화하지 않는 이들이니 어찌됐든 힘들게 얻은 걸 소중하게 여기며 행복하게 살았으리라 생각하고 싶다. 어렵고 힘들게 얻은 걸 까먹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행복할 자격이 없다.

* 이 글은 씨네21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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