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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아이돌' 따위의 수식이 필요치 않은, 그 자신으로 탁월한 종현의 매력

  • 허완
  • 입력 2016.06.04 15:00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지난 5월24일 발매된 보이그룹 샤이니의 멤버 종현의 첫 솔로 정규 앨범 <좋아>(2016)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앨범이다. 이제 더는 아이돌 가수가 작사 작곡에 참여하고 셀프 프로듀싱을 하는 것이 보기 드문 광경이 아니게 된 시대, 종현이 9개의 수록곡 중 8곡을 자작곡으로 채우고 나머지 한 곡도 직접 작사했다는 점은 새삼스러운 축에도 못 낀다. 그게 자신이 진행하는 <문화방송>(MBC) 라디오 <푸른밤, 종현입니다>의 코너 중 하나로 청취자의 사연을 가사로 받아 작곡을 하는 ‘푸른 밤 작사 그 남자 작곡’을 선보인 바 있는 종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흥미로운 것은 종현이 얼마나 많은 곡을 작곡했느냐가 아니라, <좋아>라는 앨범이 어떤 구성으로 완성됐느냐다.

“한 명의 캐릭터가 그리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종현이 직접 밝힌 것처럼, <좋아>에 실린 9곡은 모두 일관된 콘셉트와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무겁지 않게 고백하고(좋아), 자신을 미치게 하는 상대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며(화이트 티셔츠),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만큼은 착실히 상대를 따라 궤도를 도는 사람임을 어필한다(우주가 있어). 꿈꾸기만 했던 상대와 함께하게 된 기쁨을 이야기하고(오로라), 무르익어가는 관계 속에서 괜히 상대에게 투정도 부려보다가(드레스 업), 신호등 빨간불에 걸린 찰나의 순간 입을 맞추며 기쁨의 절정을 노래한다(레드. 이상 수록곡 제목). 다양한 톤의 노래들이 모여 묵직한 파스텔톤을 이뤘던 미니앨범 <베이스>(2015)나, <푸른밤, 종현입니다>에서 사연을 받아 작곡한 노래들을 모아 낸 미니멀한 톤의 소품집 <이야기 Op.1>(2015)과는 달리, 사랑에 빠진 남자의 설렘과 행복을 오롯이 그려낸 <좋아>는 소리의 질감에서부터 앨범 아트에 이르기까지 모두 경쾌하고 달콤한 총천연색으로 반짝인다.

최근 첫 솔로 정규 앨범 <좋아>를 발매한 보이그룹 샤이니의 멤버 종현. ⓒ에스엠엔터테인먼트

90년대 말부터 히트곡들만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이 유행을 탔고, 2000년대 들어 음악의 소비가 더는 시디(CD)나 카세트테이프처럼 손에 잡히는 물성을 지닌 매개체가 아니라 곡 단위로 끊어서 유통이 가능한 음원 파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음원 파일에서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음악 소비의 판도가 바뀐 지금, 이제 단일한 콘셉트를 기반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듯 앨범 전체를 구성하는 아티스트는 점점 더 만나보기 어려워졌다. 전체 앨범을 구매해서 진득하게 감상해 줄 청자들이 자꾸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에, 종현은 하나의 지향을 가지고 자신이 친구들과 함께 꾸린 작곡팀 ‘위프리키’와 함께 협업하며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단일한 세계관을 완성했다.

청자에게 한 곡 한 곡 단위가 아니라 그 총체로서 앨범을 듣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시도다. 유일하게 작곡에 참여하지 않은 ‘화이트 티셔츠’에 대해 회사가 생각하는 음악적 방향성을 가늠해보고 싶단 생각에 회사에 일임했다는 그의 말에서도 자신감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훔쳐볼 수 있다. 말하자면 그 한 곡으로 앨범의 세계관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이런 자신감의 비결은 무엇일까? 캐스팅이 되던 순간에도 보컬이 아닌 베이시스트로 활약하고 있었던 종현의 탄탄한 음악적 밑바탕도 있겠지만, 내겐 그보단 멈추지 않고 배우며 더 나은 존재가 되려 노력하는 특유의 성실성이 더 눈에 띈다. 이번 앨범이 준비 기간 6개월 만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5년 전에 만들어 뒀던 곡, 3년 전에 만들어 뒀던 곡들을 더해 완성이 된 것처럼, 그의 자신감은 자신의 재능에 대한 과신이 아니라 꾸준히 쌓아 올린 학습의 누적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그의 태도는 단순히 음악을 대하는 자세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세계를 대하는 자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작년 7월, 종현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여성 아티스트 나인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중 “여성은 많은 예술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고 사랑을 받는 축복받은 존재”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어떤 이에겐 무심히 넘어갈 수도 있는 발언일 수 있었겠지만, 듣는 입장에 따라선 여성 멸시와 함께 여성에 대한 남성 본위의 선입관의 거대한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여성 숭배의 맥락으로 읽을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인터넷 일각에서 “종현이 여성 비하적인 발언을 했다”는 지적이 일었고, 이에 대해 종현은 트위터를 통해 “축복을 받은 존재이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라는 말이 나보다 아래에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감의 대상은 상하를 막론하고 존재합니다”라고 해명했다. 함께 방송을 했던 나인 또한 트위터를 통해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부정적으로 곡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쩌면 이쯤에서 멈췄다 해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종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종현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혹시나 저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주었다면 어느 부분이었는지 정확히 알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고, 트위터에서 그에게 ‘이런 부분들이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라고 말을 건 이들에게 먼저 쪽지를 보내 보다 구체적인 대화를 청했다. 긴 대화의 끝에 종현은 이렇게 말했다. “전 그저 궁금했습니다. 어떤 부분이 상처가 됐는지, 어떻게 하면 다시 그런 상처를 주지 않을지. 전 스스로 잘못된 사람이라 생각치 않고 누군가 상처 입었다면 사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유저와의 대화 끝엔 이렇게도 말했다. “배울 게 넘치는군요, 세상엔.” 자신의 발언이 악의를 품지 않았다는 것을 적극 해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발언이 최초 의도와는 무관하게 혹시라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는지를 적극적으로 경청했던 것이다.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폭넓게 열어 두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래서 사람은 꾸준히 배움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종현 또한 끊임없이 숭배/멸시의 이분법적 대상화가 되는 아이돌이란 사실이다.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 속에서 한 성전환자 여성이 이중의 편견에 시달리는 자신의 사연을 대자보로 외쳤을 때, 종현은 혹여 자신의 특수한 위치 탓에 상대가 원치 않은 주목을 받게 될까 걱정해 쪽지를 통해 조용히 지지와 연대의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당사자가 종현의 동의를 얻어 쪽지 내역을 온라인에 공개한 이후 인터넷엔 ‘고작 아이돌 가수가 뭘 안다고 나서냐’는 뿌리 깊은 멸시와, ‘아이돌 가수가 이렇게 깊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니’라는 아이돌 전반에 대한 비하에 기반한 감탄이 경쟁하듯 이어졌다. 그저 한 명의 시민으로서 사려 깊은 행동을 해도, 그 모든 행동이 ‘아이돌’이라는 프리즘을 거치는 순간 곡해되거나 뒤틀린 숭배의 대상이 된다. 최근 종현의 솔로 행보를 두고 많은 언론이 ‘탈아이돌급’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아이돌은 보통 이 정도 수준의 음악적 성취에 이를 수 없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만 사용이 가능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종현은 이렇게 자기 자신도 어떤 이분법적 대상화를 피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힘주어 이야기하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지 않는다. 연예인이기 이전에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도 쉽게 갖추기 어려운 덕목이다.

과거 종현의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 연대 발언을 접하는 대중의 반응에 대해 쓰며 나는 이 지면에서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는 앞으로도 충분할” 것이라 말한 적 있다.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종현은 매력적인 아이돌이자 음악적 야심이 탄탄한 아티스트이고,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성실하게 배움을 멈추지 않는 시민이다. ‘탈아이돌’이나 ‘아이돌치곤 놀라운’ 따위의 수식이 필요치 않은, 그저 온전히 그 자신으로 탁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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