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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사건의 초점 | '19세 청년'이 아니다

이렇게 구조적 부당성에 의한 죽음에 생물학적 나이가 전혀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그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이 20세이든 70세이든, 또는 그 사람의 성별이나 성품이 어떠한 것이든 그 죽음이 연계된 다층적 문제점들과는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나이, 성별, 계층, 국적, 또는 성품 등에 따라서 '더 소중한 생명' 이거나 '덜 소중한 생명'이라는 의식적/무의식적 '생명의 위계주의'는 경계해야 할 가치체계이다. 어떠한 연령의 사람이든 사실상 모두 '꽃다운' 소중한 생명인 것이다.

  • 강남순
  • 입력 2016.06.03 06:07
  • 수정 2017.06.04 14:12
ⓒ연합뉴스

1.

지난 5월 28일,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사람이 죽음을 당했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이동을 기대하며 비인간적인 업무량을 감내하던 사람이 죽음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비극적 사건을 다루는 기사나 칼럼 등의 표제어들이 '19세 청년'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 우려스럽다. 이렇게 '19세 청년'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는 표제어들은 '모든'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하는 사회적/국가적 의무의 핵심을 오도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2.

이렇게 구조적 부당성에 의한 죽음에 생물학적 나이가 전혀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그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이 20세이든 70세이든, 또는 그 사람의 성별이나 성품이 어떠한 것이든 그 죽음이 연계된 다층적 문제점들과는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나이, 성별, 계층, 국적, 또는 성품 등에 따라서 '더 소중한 생명' 이거나 '덜 소중한 생명'이라는 의식적/무의식적 '생명의 위계주의'는 경계해야 할 가치체계이다. 어떠한 연령의 사람이든 사실상 모두 '꽃다운' 소중한 생명인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초점은 그 희생자가 '꽃다운 나이'의 사람이나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는 사적인 인적사항이 아니다. 기업의 이득이 개별인들의 인간다운 삶보다 우선했다는 것이며,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 비인간적 구조를 지니고 있는 기업들과 정부에 대한 비판과 시정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3.

지금도 한국사회의 구석 구석에서 20대만이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서 비인간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기업들이 자신의 이득의 극대화를 최우선의 가치로 택하면서, 이러한 '비정규직'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이들은 '생물학적 죽음'만이 아니라, '사회적 죽음' 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19세 청년'만이 아니라,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닌 비인간적 삶의 문제들에 초점을 두면서, 이 구의역 사건에 대한 애도와 기억이 정치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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