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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첫 번째 로맨틱 코미디 '아가씨'

박찬욱은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여러 시도를 해 왔지만,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고민이 없을 수가 없다. 그 고민의 결정체가 '아가씨'라고 생각한다. 일제 강점기라는 배경, 그리고 변태적인 성적 취향과 레즈비언이라는 설정 등 자극적인 요소들이 많지만 결과적으로 이 이야기는 아직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남자들에게서 탈출하는 두 여인의 로맨틱 코미디다. 과거부터 장르 영화, 특히 B급 영화에 대한 취향을 공공연히 밝혀온 박찬욱은 '아가씨'에서 자신이 영화적 자양분을 어디서 얻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능수능란하게 구현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 허경
  • 입력 2016.06.03 07:26
  • 수정 2017.06.04 14:12
ⓒ아가씨

<스토커>의 처참한 실패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본인도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을 토로 했지만, 그것이 변명이 되진 않는다. 모호한 이야기, 애매한 결말은 할리우드에서 결코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그 역시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산업의 역사 그 자체로 불러도 좋을 할리우드에서 작업을 하는데 에고를 발휘시킬 생각이 없는 작가가 있을까? 있다면 그는 아마 지독한 천재이거나 아니면 영화를 못 만드는 사람일 것이다. 박찬욱은 천재는 아니지만, 결코 영화를 못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

<아가씨>는 '진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본인의 개성을 펼쳐 놓겠다는 야심이 제대로 발현되어 있다. 일단 영국작가 새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를 가져와 이야기의 재미를 확보하고, 어쨌든 '예쁜 것이 좋은' 본인의 미적 성향과 그 예쁜 것들에 모호한 비틀림을 구겨넣어 발생시키는 유머 취향을 군데군데 집어넣었다. 그리고 해피엔딩. <아가씨>는 거의 모든 장면이 저택 안에서 이루어지며, 결코 영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등장하는 상징과 은유, 복선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모두 정리된다. 딱 떨어지는 영화다.

박찬욱은 < 공동경비구역 JSA > 이후 여러 시도를 해 왔지만,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올드보이>는 정말 이례적인 현상이었다고 생각한다.) '깐느 박'이라는 별명은 그의 경력에 대한 찬사이기도 했지만, 다른 쪽에서는 어느 정도의 조롱으로도 사용하는 것이었다.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고민이 없을 수가 없다. 그 고민의 결정체가 <아가씨>라고 생각한다.

일제 강점기라는 배경, 그리고 변태적인 성적 취향과 레즈비언이라는 설정 등 자극적인 요소들이 많지만 결과적으로 이 이야기는 아직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남자들에게서 탈출하는 두 여인의 로맨틱 코미디다. 굳이 범죄, 스릴러에 많이 쓰이는 구조를 택한 것은 이야기의 재미를 증폭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각 부분에 각기 다른 힘을 싣기 위한 구분선이다. 과거부터 장르 영화, 특히 B급 영화에 대한 취향을 공공연히 밝혀온 박찬욱은 <아가씨>에서 자신이 영화적 자양분을 어디서 얻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능수능란하게 구현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국가적인 요소는 원작과 저택의 영국, 등장인물들의 일본, 한국이다. 그것을 구분석에 대입해서 1부는 한국, 2부는 영국, 3부는 일본식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물론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원작자인 새라 워터스는 여성주의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핑거 스미스>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읽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나는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에서 다양한 상징과 은유로 두 여성의 연대를 지지하는 것처럼 연출되어 있지만, 결정적으로 섹스신의 묘사에서 남성의 시각을 거두지 못했다. 길이나 수위가 문제가 아니다. 이것을 비추는 카메라는 그녀들을 '전시'하고 말았다. 이 둘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인 이 시퀀스는 이후에 있을 일들에 대한 가장 강한 설명이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두 인물의 감정에 한 발 더 들어가는 것을 주저함으로써 관계의 깊이를 설명하는 데 실패한다. 물론 서로 다른 입장에서 펼쳐지며 길이조차 상당히 다른 1부의 섹스와 2부의 섹스를 이야기의 재미라는 측면에서 배치시키려면 지금의 연출이 옳을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노골적인 섹스신에 따라오는 것, 특히 캐릭터의 소모가 명확한 지점에서는 윤리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박찬욱은 분명히 선택의 기로에 있었을 것이며, 그의 선택으로 <아가씨>는 페미니즘 영화의 카테고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물론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서 그 영화가 반드시 페니미즘 영화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다만 다른 부분들에서는 신경을 쓰는 데 반해 방점이 찍히는 부분에서 약해지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아가씨>는 신나는 장르영화다. 나쁜 놈들은 망하고, 고통 당하던 사람은 벗어나며 옳은 일에 가담하는 사람들을 재화를 얻는다. 이 이상 더 깔끔하기도 어렵다.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는다면 많은 부분 웃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엔딩크레딧이 오를 때 뚜아에무아의 72년 발표곡 '임이 오시는 소리'의 리메이크 곡이 흐르는데 좋다. 느긋이 앉아 덩그런히 떠있는 달을 보며 다 듣고 나와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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