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사망한 정비공 김 모 군의 죽음은 한국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여지 없이 폭로한다. 이 사건에 대한 관점과 평가는 다양할 것이다. 단 '위험한데다 처우도 나쁜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를 나와야 한다'같은 평가는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 내가 주목한 건 사회적 최약자의 희생을 통해 중산층의 안온한 삶을 누리는 이들에 대한 것이다. 아래 기사를 보면 이른바 메피아(메트로+마피아)들이 누리는 지대(rent)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알 수 있다.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안전문)를 수리하던 정비공 19살 김모 군이 숨진 사고의 배경에는 사실상 용역업체를 장악한 서울메트로 출신 '메피아(메트로+마피아)'가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정비에 나설 수 있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김 군은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홀로 선로에 뛰어들 수밖에 없던 것으로 나타났다.
CBS노컷뉴스가 단독입수한 서울메트로 내부자료에 따르면, 스크린도어 유지·관리업체인 은성PSD의 임직원 143명 가운데 정비 관련 자격증을 보유한 직원은 전체의 41%인 59명에 불과했다. 관련 자격증이 전혀 없는 나머지 84명은 상당수가 서울메트로 퇴직 후 은성 PSD로 자리를 옮긴 임직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지하철 운행시간에 스크린도어를 점검하거나 수리할 때는 반드시 2인 1조로 움직여야 한다는 규정은 이같은 구조 속에서 지켜질 수 없었던 것. 결국 입사한 지 7개월밖에 되지 않은 김 군은 지난 28일 오후 5시쯤 혼자 지하철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와 전동차 사이로 내몰리게 됐다.
◇ 김 군 월급 144만원...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업체가 매달 지급받는 용역비 5억 8천만원 가운데 나머지 4억원의 대부분은 서울메트로 출신 임·직원의 임금으로 쓰인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드러났다. 황준식 은성PSD 노조위원장은 "메트로에서 나온 직원들은 여기 와서 몇 년씩 정년이 연장됐다"며 "인건비의 대부분은 그중 내년에 퇴직 예정인 1955년생에게 들어갔다"고 밝혔다. 은성PSD 노조는 서울메트로 출신들은 평균 350~400만원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후생복지비까지 감안하면 이들은 김군 등 비(非)서울메트로 출신보다 최소 2~3배 많은 월급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비정규직 근무한 김 군의 월급은 고작 144만원 정도였다. 나머지 정규직 정비공들의 월급 역시 200만원 선에 불과했다.
노컷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구의역 사고로 숨진 김 군이 소속된 스크린도어 유지 관리업체 은성PSD는 정비 관련 자격증도 없는 서울메트로 퇴직자들을 채용해 이들에게 비(非)서울메트로 출신 보다 2~3배 많은 급여를 줬고,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정비공들은 2인 1조 근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메트로 소속 정규직 근로자들이 퇴사를 한 후 메트로 관련 용역제공으로 매출을 올리는 업체에 이직해 생명연장(?)의 꿈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이들이 누리는 상대적 고임금과 복지는 반대편에 있는 비(非)메트로 출신 정규직 및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희생으로 가능했다. 나는 구의역 사망사건에서 이 대목을 간과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악을 박근혜와 새누리와 재벌과 비대언론과 검찰과 고위관료와 종교권력자와 어용학자 때문이라고 간주하면 마음은 편하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그들이 거악임에는 분명하고 책임의 가장 큰 부분이 있는 것도 자명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일상의 악덕들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구의역에서 비명횡사한 청년의 죽음에 메트로 퇴직자들의 책임은 없을까? 중산층의 안온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비메트로 출신 정규직 및 비정규직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지대를 수취하는 행위는 악덕이 아닌가?
물론 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며, 공무원과 비공무원을 구분해,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와 공무원 및 공기업 근로자를 악마로 만드는 것이 박근혜와 과점언론과 재벌의 분할 통치 혹은 이이제이 전략임을. 하지만 그토록 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영세자영업자들이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를, 공기업 근로자를, 공무원을 귀족으로 분류하고 날선 비판을 하는 게 과연 조중동과 종편의 이데올로기 공세 때문이기만 할까?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단순하다.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그것의 일정부분을 공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한 세상은 절대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 공기업 근로자, 공무원 등 이른바 성(城)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성 밖에서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 중 일부를 기꺼이 내어놓을 때 성 밖 사람들이 비로소 성 안 사람들을 '우리'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재벌과 자산계급, 불로소득에 기생하는 계급에 대한 대규모 증세 압박이 가능할 것이다.
구의역 사망사고는 한국사회의 최강자들에게 돌을 던지면서 모든 책임이 그들에게 있는 것인 양 자기기만을 하는 우리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것을 권고한다. 우리는 누구에겐 약자이고 피해자이겠지만, 다른 누구에겐 강자고 가해자일 수 있다. 이게 생의 서늘한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