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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사건과 만악의 근원

쉽게 말해 메트로 소속 정규직 근로자들이 퇴사를 한 후 메트로 관련 용역제공으로 매출을 올리는 업체에 이직해 생명연장(?)의 꿈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이들이 누리는 상대적 고임금과 복지는 반대편에 있는 비(非)메트로 출신 정규직 및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희생으로 가능했다. 나는 구의역 사망사건에서 이 대목을 간과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악을 박근혜와 새누리와 재벌과 비대언론과 검찰과 고위관료와 종교권력자와 어용학자 때문이라고 간주하면 마음은 편하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 이태경
  • 입력 2016.06.02 07:15
  • 수정 2017.06.03 14:12
ⓒ연합뉴스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사망한 정비공 김 모 군의 죽음은 한국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여지 없이 폭로한다. 이 사건에 대한 관점과 평가는 다양할 것이다. 단 '위험한데다 처우도 나쁜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를 나와야 한다'같은 평가는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 내가 주목한 건 사회적 최약자의 희생을 통해 중산층의 안온한 삶을 누리는 이들에 대한 것이다. 아래 기사를 보면 이른바 메피아(메트로+마피아)들이 누리는 지대(rent)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알 수 있다.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안전문)를 수리하던 정비공 19살 김모 군이 숨진 사고의 배경에는 사실상 용역업체를 장악한 서울메트로 출신 '메피아(메트로+마피아)'가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정비에 나설 수 있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김 군은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홀로 선로에 뛰어들 수밖에 없던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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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가 단독입수한 서울메트로 내부자료에 따르면, 스크린도어 유지·관리업체인 은성PSD의 임직원 143명 가운데 정비 관련 자격증을 보유한 직원은 전체의 41%인 59명에 불과했다. 관련 자격증이 전혀 없는 나머지 84명은 상당수가 서울메트로 퇴직 후 은성 PSD로 자리를 옮긴 임직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지하철 운행시간에 스크린도어를 점검하거나 수리할 때는 반드시 2인 1조로 움직여야 한다는 규정은 이같은 구조 속에서 지켜질 수 없었던 것. 결국 입사한 지 7개월밖에 되지 않은 김 군은 지난 28일 오후 5시쯤 혼자 지하철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와 전동차 사이로 내몰리게 됐다.

◇ 김 군 월급 144만원...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업체가 매달 지급받는 용역비 5억 8천만원 가운데 나머지 4억원의 대부분은 서울메트로 출신 임·직원의 임금으로 쓰인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드러났다. 황준식 은성PSD 노조위원장은 "메트로에서 나온 직원들은 여기 와서 몇 년씩 정년이 연장됐다"며 "인건비의 대부분은 그중 내년에 퇴직 예정인 1955년생에게 들어갔다"고 밝혔다. 은성PSD 노조는 서울메트로 출신들은 평균 350~400만원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후생복지비까지 감안하면 이들은 김군 등 비(非)서울메트로 출신보다 최소 2~3배 많은 월급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비정규직 근무한 김 군의 월급은 고작 144만원 정도였다. 나머지 정규직 정비공들의 월급 역시 200만원 선에 불과했다.

용역업체 장악한 '메피아'와 10대 정비공의 죽음

노컷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구의역 사고로 숨진 김 군이 소속된 스크린도어 유지 관리업체 은성PSD는 정비 관련 자격증도 없는 서울메트로 퇴직자들을 채용해 이들에게 비(非)서울메트로 출신 보다 2~3배 많은 급여를 줬고,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정비공들은 2인 1조 근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메트로 소속 정규직 근로자들이 퇴사를 한 후 메트로 관련 용역제공으로 매출을 올리는 업체에 이직해 생명연장(?)의 꿈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이들이 누리는 상대적 고임금과 복지는 반대편에 있는 비(非)메트로 출신 정규직 및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희생으로 가능했다. 나는 구의역 사망사건에서 이 대목을 간과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악을 박근혜와 새누리와 재벌과 비대언론과 검찰과 고위관료와 종교권력자와 어용학자 때문이라고 간주하면 마음은 편하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그들이 거악임에는 분명하고 책임의 가장 큰 부분이 있는 것도 자명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일상의 악덕들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구의역에서 비명횡사한 청년의 죽음에 메트로 퇴직자들의 책임은 없을까? 중산층의 안온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비메트로 출신 정규직 및 비정규직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지대를 수취하는 행위는 악덕이 아닌가?

​​물론 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며, 공무원과 비공무원을 구분해,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와 공무원 및 공기업 근로자를 악마로 만드는 것이 박근혜와 과점언론과 재벌의 분할 통치 혹은 이이제이 전략임을. 하지만 그토록 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영세자영업자들이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를, 공기업 근로자를, 공무원을 귀족으로 분류하고 날선 비판을 하는 게 과연 조중동과 종편의 이데올로기 공세 때문이기만 할까?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단순하다.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그것의 일정부분을 공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한 ​세상은 절대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 공기업 근로자, 공무원 등 이른바 성(城)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성 밖에서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 중 일부를 기꺼이 내어놓을 때 성 밖 사람들이 비로소 성 안 사람들을 '우리'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재벌과 자산계급, 불로소득에 기생하는 계급에 대한 대규모 증세 압박이 가능할 것이다.

구의역 사망사고는 한국사회의 최강자들에게 돌을 던지면서 모든 책임이 그들에게 있는 것인 양 자기기만을 하는 우리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것을 권고한다. 우리는 누구에겐 약자이고 피해자이겠지만, 다른 누구에겐 강자고 가해자일 수 있다. 이게 생의 서늘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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