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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인 국가기관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요?" |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 씨를 만나다

"사과가 말로 끝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사과는 반성과 이런 일이 앞으로 일어나지 않겠다는 재발 방지를 담는 건데요. 사과를 한다면 재발방지도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수사를 할 것이고 그런 게 다 담겨야지요. 구은수 서울경찰청장이 병원에 온다고 그랬어요. 우리는 경찰청장을 파면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는데, 사과할 거 아니면 됐다고 그랬더니 정말 안 왔어요. 사과하려는 게 아니었던 거죠."

또 농민이었다. 2005년 11월, 여의도에서 있었던 전국농민대회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홍덕표, 전용철 농민이 사망했다. 그리고 2015년 11월 14일 또 한 명의 농민이 경찰의 시위진압 과정에서 쓰러졌다. 아버지가 물대포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지 184일 되던 날,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 씨를 만났다.

"그때는 사과를 받는 데 한 달이 걸렸대요. '쉽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수사도 안 할 줄은 몰랐어요."

백도라지 씨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사과가 말로 끝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사과는 반성과 이런 일이 앞으로 일어나지 않겠다는 재발 방지를 담는 건데요. 사과를 한다면 재발방지도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수사를 할 것이고 그런 게 다 담겨야지요."

5월 15일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마치고 백도라지씨를 만났다 ©국제앰네스티

그 날 서울에서는 '민중총궐기'가 있었다. 밀밭 파종을 끝낸 백남기 농민은 밥상용 쌀 수입을 반대하기 위해서 보성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종로 1가에서 농민들은 상여를 매고 청와대로 향했다. 충남 살수차 9호는 6시 30분부터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기까지 불과 4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최루액과 함께 4천 리터의 물을 쏟아부었다. 이날 경찰이 사용한 물은 총 202톤이었다.

"물대포를 이용해 물을 뿌리고, 젖게 만들어 빨리 집에 가게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래도 그런 용도로만 쓰이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사람의 뇌가 바스러질 정도의 수압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쓰러진 백남기 농민은 구급차에 실려 서울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긴급하게 수술을 받았지만,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경찰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구은수 서울경찰청장이 병원에 온다고 그랬어요. 우리는 경찰청장을 파면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는데, 사과할 거 아니면 됐다고 그랬더니 정말 안 왔어요. 사과하려는 게 아니었던 거죠."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은 지난해 11월 18일, 강신명 경찰청장을 포함해 경찰관 7명을 형사고발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검찰 수사는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

"경찰에 진상조사단이 구성되었다는 이야기만 들었고, 거기에 대해 경찰이 발표하거나 이야기 한 적이 없잖아요. 조사한 내용을 밝히라고 하니까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내용이라고 밝힐 수가 없대요.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죠. 그러면 검찰 수사를 빨리 진행하면 그러고 나서 경찰 조사결과를 발표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검찰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요. 검찰이 사건을 끌어안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거죠."

백남기 농민은 밀밭 파종을 끝내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백남기대책위

결국, 백도라지 씨는 3월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표창원 교수님은 국가기관에 의해서 저질러진 폭력인데, 가해자인 국가기관이 다시 수사하는 상황에 대해 얘기했어요. 그게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거잖아요. 국가 폭력 사건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독립된 수사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당선되기 전에 오셔서 하신 말씀이거든요. 저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2005년 11월, 두 농민이 사망한 데 대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사과하고 허준영 경찰청장은 사퇴했다. 그러나 허 청장은 마지막까지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약 3년이 지난 2008년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고,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며 기소를 중지했다.

백도라지 씨는 애가 탄다. 총선이 끝나고 나서는 국회를 찾아가 19대 국회의원들과 20대 국회 당선인들을 만나 당시 진압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국회 청문해를 실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5월 11일 국회청문회 실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백남기대책위

"청와대에는 사과를 요구하고 경찰청장의 파면을 요구하고 있는데, 8월이면 임기가 끝난대요.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기를 바라지는 않거든요. 경찰청장이 제일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니까 가장 무거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대통령의 사과도 없었다. 그래서 국회 청문회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나서 달라는 백도라지 씨의 호소가 더 간절하게 들린다.

*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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