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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노동자 사망사고도 인재(人災)였다

  • 허완
  • 입력 2016.05.29 10:13
  • 수정 2016.05.29 10:16
ⓒ연합뉴스/광진소방서

서울 구의역 안전문(스크린도어) 정비 노동자 사망 사고는 작업 규정을 무시한 '안전불감증'과 이를 보고만 있던 서울메트로의 관리 부실이 만들어 낸 인재(人災)로 파악됐다.

'안전문 이상 발견→용역 직원 출동→안전문 개방→사고 발생' 전 과정에서 서울메트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4년간 홀로 안전문 작업을 하다 점검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세 차례나 발생했지만 '판박이'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두고 비판이 거세다.

◇ 안전문 이상…해당 역은 1시간 동안 '까막눈'

29일 서울메트로 등에 따르면 안전문 이상은 28일 오후 4시58분께 구의역으로 진입하던 열차 기관사가 처음 발견해 관제사령에 보고했다. 열차가 정차하지 않았음에도 안전문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한다는 내용이었다.

통보를 받은 용역 직원 김모(19)씨는 오후 5시50분 구의역에 도착해 4분 뒤 승강장 안전문을 열었고, 오후 5시 57분 변을 당했다.

정작 구의역 측은 안전문 이상이 발견된 후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이상 현상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시간이 넘도록 안전문 오작동이 반복되는데도, 역에서 근무하던 3명 가운데 그 누구도 문제의 안전문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메트로는 열차 기관사가 이상 현상을 보고하면 '관제사령→전자운영실→용역업체' 순서로 통보가 이뤄지는데, 용역 직원이 역에 보고하지 않아 파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안전문 작업을 위한 열차 운행 조정 등도 이뤄지지 않았고,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서울메트로는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김씨는 어떠한 작업을 하겠다고 통보한 것이 아니라 '점검하러 왔다'고 말하고 역무실을 나섰다. 김씨는 써야 하는 작업일지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다만) 현장 통제를 제대로 못 했다는 자책감이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구의역이 1시간 넘게 안전문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승객 안전을 도외시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용역 직원의 보고에만 의존하는 체계도 쉽게 납득하기는 어렵다는 비판이다.

◇ 되풀이되는 작업 절차 무시…총체적 관리부실

서울메트로 2호선 안전문 작업 도중 일어난 사망 사고는 최근 4년간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2013년 1월 성수역에서 안전문 점검업체 직원이 문 안쪽에서 센서를 점검하다 들어오는 열차에 끼여 숨졌다. 지난해 8월에는 강남역에서 안전문을 정비하던 용역업체 직원이 마찬가지로 변을 당했다.

서울메트로는 강남역 사고 이후인 지난해 11월 ▲ 2인1조로 1명은 열차를 감시 ▲ 출동 시 출동 사실을 역무실과 전자운영실로 통보 ▲ 역 도착 후 역무실과 전자운영실 통보 ▲ 작업 전·후 역무실과 전자운영실에 신고하고 작업표지판 부착 등 작업 절차를 마련했다.

그러나 김씨는 열차를 감시하는 사람 없이 홀로 작업에 투입됐고, 전자운영실에 통보도 하지 않았으며, 작업표지판도 세우지 않았다. 안전 절차가 송두리째 지켜지지 않은 탓에 9개월 만에 같은 사고가 재발한 것이다.

강남역 사고 이후 안전문 점검 시 '2인1조'를 의무화하고자 용역업체 직원 17명을 늘렸지만,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서울메트로는 "김씨가 (역무실에) 혼자 와서 '두 명이 왔다'고 이야기를 했다"면서도 "거짓말을 한 것인지는 좀 더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메트로 역시 관리·감독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메트로 측의 주장에 따르면, 김씨는 사고 당일 오후 5시 50분에 구의역에 도착해 오후 5시 52분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승강장 안전문을 여는 열쇠는 역무실에 보관돼 있는데, 작업일지도 쓰지 않고 불과 2분 만에 홀로 열쇠를 꺼내 올라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역무실에 있던 직원 1명은 물론, 역 구내에 있던 나머지 직원 2명도 '나홀로 작업'을 제지하지 않았다. 승강장에서 작업을 감시하는 역무원도 없었다.

또 안전문 열쇠함 열쇠를 역무원이 가지고 있었다면 최소한의 확인은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서울메트로는 김씨가 열쇠함 열쇠를 가지고 있었기에 직접 열었다고 밝혔다.

◇ "안전문 관리 자회사로"…새로울 게 없는 대책

서울메트로는 이번 구의역 사고 대책으로 ▲ 8월부터 용역업체 대신 자회사가 안전문 유지·보수 ▲ 안전문 장애물검지센서를 기존 적외선에서 고성능 레이저 스캐너로 교체 ▲ 안전문 작업 절차 준수 특별대책 마련 등을 내놨다.

하지만 모두 이미 도입됐거나 추진되고 있던 것들이어서 새로울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강남역 사고 이후 자회사 전환 방침을 세우고, 이달 23일 이사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심의·의결해 서울시에 보고까지 했다.

레이저 스캐너는 전체 121개역 가운데 16개역에서 교체가 된 상태로, 서울메트로는 나머지 역에 대해서도 교체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작업절차 준수 관련 특별대책 역시 근본적인 처방이 없으면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강남역 사고 이후에도 '승강장 안전문 특별안전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안전 절차를 만들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안전문 유지·보수 담당 자회사 설립도 기존 용역 직원들이 반발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이정원 전 서울메트로 사장이 24일 물러나 사장 자리가 공석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김씨가 소속된 용역업체 노조는 "지난달 자회사 계획을 문의했지만, 아직 연구용역 중이라 확실하지 않다고 해놓고 갑작스럽게 자회사 방침을 확정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안전문의 안전을 위해서는 대형광고판을 없애고, 행선 안내 게시기 점검을 철저히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메트로는 "연구용역을 통해 신중히 검토하느라 지난달에는 최종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며 "자회사를 설립해도 용역업체의 고용은 승계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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