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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기어코 '청문회 활성화'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 허완
  • 입력 2016.05.27 07:03
  • 수정 2016.05.27 07:09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상시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부는 27일 오전 황교안 국무총리가 주재한 임시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거부권)을 의결했다. 아프리카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은 '전자서명'으로 거부권 행사를 재가했다.

거부권은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대통령이 해당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내 다시 논의할 것을 요구하는 헌법상 권리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건 지난해 6월 '국회법 파동'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황 총리는 청문회 개최를 활성화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의 권한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입법부에는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예산 심의권, 국정감사권, 국정조사권 등 여러 가지 권능을 부여하고 있다. 다만 이런 입법부의 권능은 행정부가 이를 제대로 잘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행정부에 대한 감시·견제 장치를 둔다는 것이지, 거기서 더 나아가서 행정부의 일하는 과정 전반을 하나하나 국회가 통제하도록 하자는 취지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만일 그렇게 되는 경우에는 행정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발생할 수 있고 이와 관련돼서 국민들께서도 큰 우려를 하시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략)

(...)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행정부에 대한 견제가 아니라 통제를 위한 것이란 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된 국회법 개정안 법적인 측면에서나 국정 운영 그리고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뉴스1 5월27일)

통상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 국회는 이 법안을 다시 본회의에 상정한 뒤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2 이상 찬성'으로 법안을 의결해야 한다. 그러나 19대 국회 임기는 29일 종료되는 탓에 현실적으로 국회가 본회의를 다시 열어 재의 절차를 밟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27일, 제68주년 국회 개원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던 정의화 국회의장이 '헌법' 책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화 국회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아주 비통하다. 아주 참담하다"며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야당들도 일제히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 문제를 대하는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대응이 매우 졸렬하고 유치하다"며 "정정당당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일방적인 독주가 아니라 진정으로 협력하는 협치로 난국과 난제들을 풀어가시기를 기대한다"며 "그것이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이며 다수 국민의 뜻"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20대 국회에서 공동으로 이 법안의 의결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야당의 재의결 추진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법안은 19대 국회가 종료되면 자동으로 폐기된다는 것.

국회 사무처 관계자도 "이번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헌법 제51조에 따라 다른 계류 법안처럼 폐기된다"고 말했다. 이 법안을 20대 국회에서 처리하기 위해서는 다시 처음부터 입법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정부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상시 청문회법'으로도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은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상정한 이 법안에 반대표를 던져 달라고 '지침'을 내렸으나, 비박계 의원들과 탈당파 의원들이 '찬성'으로 이탈하면서 법안은 무난히 통과됐다.

정부와 재계는 국회가 아무 때나 공무원과 기업인들을 청문회장에 불러 세울 수 있어 '업무 위축'과 '경영 부담'이 발생한다며 이 법안에 반대해왔다. 청와대는 '행정부 마비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반면 정의화 국회의장은 " 행정부가 올바르게 일하라고 만든 법을 (이 법으로 인해) ‘귀찮고 바쁘다’는 이유로 반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야당들도 행정부를 견제하고 주요 현안에 대한 청문회를 활발하게 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19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위원회안)이 재석 222인 찬성 117인 반대 79인 기권 26인으로 가결되는 모습. ⓒ연합뉴스

한편 새누리당은 과거 이 법안이 심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전혀 '반대' 의견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총선 이후 '여소야대'로 국회 권력 구도가 뒤바뀌자 뒤늦게 '반대'로 돌아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궁욱 중앙일보 정치국제부문 기자는 최근 칼럼에서 "대한민국 국회의 천박함에 얼굴이 화끈거린다"며 이렇게 적었다.

새누리당은 왜 이렇게 ‘뒷북’을 치게 됐을까. 한 국회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설마 우리가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겠느냐’고 생각을 해서인지 이 법안에 대해 일사천리로 상임위 심사를 끝냈다”고 귀띔했다. 한마디로 4·13 총선 결과를 과신한 나머지 상시 청문회법에 무관심했다가, 여소야대가 돼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그걸 끄겠다고 뒤늦은 난리를 치고 있다는 얘기다.

(중략)

법이 ‘나’한테 유리하면 찬성하고, ‘나’한테 불리하다고 반대하면 그건 더 이상 국민의 국회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법이면 만들어야 하는 거고, 불필요하고 불편한 법이면 만들지 말아야 제대로 된 국회다. 상시 청문회법 논란의 화면을 거꾸로 돌려보면 대한민국 국회의 천박함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중앙일보 칼럼, 5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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