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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의 로미오와 줄리엣 2년 도피 끝에 망명 신청했다

  • 김태우
  • 입력 2016.05.26 17:55
  • 수정 2016.05.26 17:56

“당신의 검은 두 눈은 아프간인인데, 당신의 마음에는 이슬람의 자비가 없네. 당신의 집 밖에서 밤을 지새운 나는 아침을 맞았는데, 당신이 결코 깨지 않는 이 잠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2014년 초 아프가니스탄 바미얀의 추운 밤, 한 남자가 여자의 집 밖에서 아프간 사랑 노래 한 곡을 읊조렸다. 오랜 시간 두려움으로 망설였던 여자의 마음이 남자의 뜨거운 세레나데로 녹아내렸다. 하자라족 시아파 알리와 타지크족 수니파 자키아의 금지된 사랑에 불이 붙은 순간이었다. 결말을 낙관하기 힘든 사랑의 도피를 예고하는 전주곡이기도 했다. 지난 2년간 가족의 명예살인 위협을 피해 십여차례 거처를 옮겨다니며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아프간의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이 24일(현지시각) 밤 미국 뉴욕에 도착했다. 스물 세살이 된 알리와 스무살 자키아의 품에는 어느새 17개월 딸 루키아가 안겨 있었다.

아프간에서 종족과 종파가 다른 결혼은 여전히 가족의 불명예이며 명예살인을 부르는 금기다. 아프간도 법으로 명예살인을 금지하고는 있으나 ‘최대 2년형’ 형량으로는 죽음을 각오한 보복을 막을 수 없다. 둘의 사랑을 눈치 챈 자키아의 가족은 알리를 납치범으로 고발했고, 알리는 ‘아프간 여성을 위한 여성’이라는 국제구호단체의 도움으로 석방됐다. 이후 두 사람은 친척집과 사막의 동굴, 구호단체 쉼터 등을 전전하며 목숨을 부지해왔다. 하지만 아프간에서는 끝내 추적을 피할 곳을 찾지 못했다. 이들의 사연을 첫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로드 노들랜드 기자는 지난 2월 CNN 인터뷰에서 “자키아의 아버지가 ‘내 딸은 내 팔다리 같은 내 몸의 일부다. 신에게 맹세하노니, 내 모든 걸 걸어야 한대도 내 딸을 다시 찾아오겠다’고 맹세했다”고 전한 바 있다.

노들랜드 기자가 기사와 책(<연인들: 아프가니스탄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두 사람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알리와 자키아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프간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이런 유명세는 역설적으로 두 사람을 더욱 더 아프간에 머물 수 없도록 만들었다. 마니자 나데리 ‘아프간 여성을 위한 여성’ 사무총장은 “그들의 사연이 정치화 되고 많은 미디어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우리는 그들이 아프간에 남아있는 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그들은 (아프간) 어디에서도 평화롭게 살 수 없다. 자키아의 가족들이 그들을 끝까지 추적할 것”이라고 망명 이외에 다른 길은 없음을 강조했다.

알리와 자키아는 카불에 있는 유럽과 미국 대사관을 통해 여러차례 망명을 시도했다. 서방 대사관들은 일단 아프간을 떠나 난민이 돼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 때문에 2014년 가을 가까스로 타지키스탄으로 탈출했지만, 어렵게 모든 돈 5000달러와 귀금속, 휴대폰을 강도당한 뒤 아프간으로 다시 추방되기도 했다. 이번에는 ‘아프간 여성을 위한 여성’이 고용한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인도적 임시 입국 허가’를 받아 90일 비자로 뉴욕 땅을 밟았다. 두 사람은 조만간 미국에 망명을 신청할 계획이다.

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 알리와 자키라는 둘 다 문맹이다. 바미얀의 감자밭을 제외하고는 일자리를 가져본 적도, 자립적인 삶을 꾸려본 적도 없다. 망명을 허락받는다고 해도 이 가족에게 펼쳐질 미래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알리는 뉴욕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신의 뜻에 따라요. 이곳(아프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어요. 거기(미국)에 가면 최소한 생명의 위협은 느끼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예요”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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