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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번 유기견의 죽음

그날도 노트북을 켜자마자 이 아이의 페이지를 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폐사" 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쇠약으로 폐사' 였던가, '병약으로 폐사' 였던가, 아무튼 몸이 약한 채로 들어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는 뜻의 몇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몇 글자가 나에게는 낙심해서 죽고 말았다는 걸로 읽혀졌다. 나는 내가 이 개를 죽게 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보호소의 철창 안에서 다른 개들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주인이 찾아주길 간절히 기다리다가 결국 마음이 부서진 채, 그러니까 "heart-broken"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을 이 겁 먹은 눈을 한 어린 개에게 너무 미안했다.

  • 이주희
  • 입력 2016.05.25 11:49
  • 수정 2017.05.26 14:12

나는 4년 전 사진 속의 이 어린 개를 동물보호관리시스템(www.animal.go.kr)에서 만났다. 이 사이트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유기동물 공고 사이트로 보호소와 동물병원 등에 들어오는 모든 유기동물의 정보가 있는 곳이다. 만약 당신이 개나 고양이를 잃어버렸다면 반드시 체크해야 하는 사이트이다. 나는 한동안 이 사이트를 하루에 꼭 한 번씩은 체크하곤 했다. 주인을 잃거나 버려진 슬픈 개와 고양이들, 사고를 당해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는 동물들의 사진을 보는 게 달가울 리 없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의 첫째 개, 샘도 이 사이트를 통해 만났다. 송아지만 한 리트리버가 남산에서 발견되어 집 근처 동물병원에 맡겨졌다는 공고를 여기서 읽고 그 동물 병원을 방문해 결국 공고기한이 끝나길 기다려 샘을 입양했다.

어쨌거나, 사진 속의 저 어린 얼룩 강아지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개를 발견한 게 샘을 데려온 이전인지, 이후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둘째로 데려올 강아지를 찾던 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인천 연수구에서 발견되었다는 이 개의 사진을 본 순간 내 마음이 움직였던 것만은 확실히 기억난다. 입양을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기동물은 원래 주인을 찾는 공고기한이 끝나야 다른 사람이 입양을 할 수 있었고, 내가 이 개를 보았을 때는 그 기간이 한참 남아 있었을 때였다. 그래서 나는 그날부터 매일같이 즐겨찾기를 해 둔 이 페이지를 열며 주인이 찾아갔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또 동시에 입양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인천 연수구에 있는 이 보호소의 주소를 체크하고 몇 번을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개의 페이지를 열 때마다 나는 이 개가 원래 주인을 만나 다시 행복한 인생으로, 아니 견생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갔기를 비는 동시에 또 아무도 찾지 않기를 마음 한 켠으로 바랬다. 내가 데려올 수 있도록.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날도 노트북을 켜자마자 이 아이의 페이지를 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폐사" 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쇠약으로 폐사' 였던가, '병약으로 폐사' 였던가, 아무튼 몸이 약한 채로 들어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는 뜻의 몇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몇 글자가 나에게는 낙심해서 죽고 말았다는 걸로 읽혀졌다. 아마도 그래서 정확히 뭐라고 씌여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일 게다. 나는 내가 이 개를 죽게 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보호소의 철창 안에서 다른 개들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주인이 찾아주길 간절히 기다리다가 결국 마음이 부서진 채, 그러니까 "heart-broken"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을 이 겁 먹은 눈을 한 어린 개에게 너무 미안했다. 전화 한 통 해서 물어라도 볼 걸,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보호소 담당자도 한 번쯤 더 들여다 보지 않았을까, 내가 그 건강 상태를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꺼내올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이 개의 사진은 여전히 내 핸드폰에 남아 있다. 매일 핸드폰 용량이 모자라서 사진들을 지워대지만 이 사진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오래된 사진들을 찾아볼 일이 있어 스크롤을 하다가 이 사진이 눈에 띌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추고 이 걱정이 가득한 눈을 한 개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한동안은 지울 수가 없었고, 언제부턴가는 아예 지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이 사진은 나에게 주저하지 말 것을 상기시켜주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낙심한 채 쓸쓸하게 죽어간 이 개를 보며 다음 번에 이런 일이 있다면 그러지 말길, 잊지 않고 싶었다.

10개월 전 나의 둘째 개, 잭슨의 사진을 인터넷으로 보고 임시 보호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떠오른 것도 이 개의 얼굴이었다. 임시 보호를 하겠다고, 당장 울산 보호소에서 꺼내와 달라고 담당자에게 연락을 넣고 나서 나는 곧바로 핸드폰 사진첩을 한참 스크롤해 올라가 이 개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이 사진은 나에게 아주 작아서 잘 보이진 않지만 이상하게 없어지지 않는 상처 자국 같다. 본 적도 없는 이 개가 나는 너무 일찍 떠나 보낸 나의 개 같다.

ps. 유기동물이 보호소에 입소하면 기본적인 건강 체크와 최소한의 케어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 며칠 전 보호소 유기견들의 입양을 주선하는 자원봉사자의 인스타그램에서 공고기한이 끝나지 않아 대기 중이었던 '미미'라는 개 한 마리가 결국 보호소 안에서 죽고 말았다는 소식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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