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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패권주의' 극복의 실마리

해마다 이맘때면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정신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친노패권주의와 같은 부정적 친노 인식은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계승노선을 가로막고 있다. 친노패권주의가 그의 정신과 무관하다면, 그것을 새롭게 담을 프레임 정립을 고민해야 한다.

  • 국민의제
  • 입력 2016.05.25 10:12
  • 수정 2017.05.26 14:12
ⓒ연합뉴스

글 |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7년이 지났다. 해마다 이맘때면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정신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친노패권주의와 같은 부정적 친노 인식은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계승노선을 가로막고 있다. 친노패권주의가 그의 정신과 무관하다면, 그것을 새롭게 담을 프레임 정립을 고민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국민대 김병준 교수는 2015년 4월 12일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6주기 추도식이 국민전체가 아닌 '친노만을 결집시키는 정치행사'로 변질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지금 친노 인사들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상과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보여준 정치관의 핵심은 자신만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자기혁신성이었습니다. 자신만의 스토리나 자기혁신성이 없이 노 전 대통령의 사진만 들고 정치하려는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와 혁신성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받는 일입니다."

김 교수는 자신의 노력과 콘텐츠 없이 노대통령마케팅으로 정치하려는 친노 인사들의 리더십의 빈곤과 실력부재를 비판하고 있다. 또한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의원은 올해 3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5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친노의 실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 서거 후 추모를 주도한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싸가지가 없다. 이해찬 명계남.... 말들을 사납게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장관 한 사람, 청와대 사람이면 다 친노인가. 지금 친노는 그거와 상관없다. 한명숙이 공천 줬던 강경파 비례들이 친노다. 86그룹 중에도 친노는 많지 않다. 그러니 '진보 패권'이 맞는 말이다. 문재인을 옹호하는 그룹은 10명도 안 된다."

"솔직히 이제 더민주에 친노는 10여명도 안 될 텐데.... 총선 이후 '친(親)문재인'으로 당 중심 세력이 재편됐다. 친노의 열정과 순수한 에너지는 분명 긍정적인 힘이었다. 그러나 일부가 열성 지지층과 SNS 정치에 중독되면서 말이 점점 거칠어지고 정치를 천박하게 만들었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받기 위해 더 험한 말을 하고, 그런 사람들이 어느덧 정당에서 중요한 위치와 영향력을 갖게 됐다. '싸가지' 없게 말하면 인기가 오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유 의원의 언급 역시도 친노의 실체가 공천, 강경파, 친문세력으로의 재편, 싸가지, 영향력 등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친노패권주의 이미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상의 김병준 교수와 유인태 의원의 언급을 볼 때, 노무현 정신을 새롭게 정립할 프레임의 실마리는 헤게모니(Hegemony)라는 말의 기원으로부터 찾을 수밖에 없다. 헤게모니라는 말은 '자발적 동의와 지지'와 '폭력에 의한 패권'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교묘하게 이중적으로 섞여있는 말이다. 헤게모니를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물리적인 힘보다 자발적 동의와 지지를 통해 '비지배 공화상태를 만드는 리더십으로 포장되는 힘'이고,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자발적인 동의와 지지보다 물리적 힘과 다수결의 전횡을 통해 피지배자들에 대한 지배상태를 만드는 '패권으로 포장되는 힘'이다.

이태리 혁명가 그람시는, 부르주아들이 근대 시민혁명을 성공시킨 후 지속가능한 지배를 구축하는 데에는 물리적인 힘 외에 민주주의란 지배방식을 창출하여 지적, 도덕적, 정치적 헤게모니를 통해 피지배자들의 자발적인 동의와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인식한 후 부르주아 헤게모니론을 정립하였다. 그람시는 '부르주아 헤게모니론'에 맞서는 '저항적 헤게모니론'으로 전위정당에 맞서는 대중적인 정당건설, 폭력혁명에 맞서는 합법선거와 의회주의, 당과 지도자의 지적·도덕적·정치적인 지도력을 통해 자발적인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문화적이고 시민사회적인 진지전'을 제시하였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국제정치학에 적용하여 '헤게모니안정론'(Hegemonic stability theory)으로 정립한 사람은 킨들버그이다. 헤게모니안정론은 압도적인 힘을 갖는 헤게모니국가가 존재할 때, 국제정치 또는 국제경제가 '안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안정이란 국제정치의 경우에는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국제경제의 경우에는 자유로운 경제 무역 체제가 구축되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헤게모니안정론은, 헤게모니국가가 그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한다는 측면과 국제적인 공공재(公共財)를 공급하는 능력이 있다는 측면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헤게모니론'과 '헤게모니안정론'을 더민주당의 안정성 여부를 결정하는 계파정치의 행태를 설명하기 위한 모델로 응용할 경우, '친노패권주의'와 대비되는 긍정적인 의미의 '친노헤게모니'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다. 또한 헤게모니의 '자발적 동의와 지지'와 '물리적인 힘'이라는 두 측면이 섞인 비중의 정도를 고려할 때, 전자의 힘이 강하게 작동하면서 후자의 힘이 약하게 작동하는 경우의 '친노패권부재'에 따른 '친노헤게모니안정론'을, 반대의 경우 '친노헤게모니부재'에 따른 '친노패권불안정론'을 상정할 수 있다.

친노 인사의 입장에서는 당연 물리적인 힘보다 자발적 동의와 지지의 힘이 강조되는 '친노패권부재'에 따른 '친노헤게모니안정론'과 같이 좋은 이미지를 긍정하려고 하고, 반대로 자발적인 동의와 지지의 힘보다는 물리적인 힘이 강조되는 '친노헤게모니부재'에 따른 '친노패권불안정론'과 같이 나쁜 이미지를 부정하려고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친노 인사들은 '친노패권주의는 없다'는 '친노패권부재' 프레임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앞선 김병준 교수와 유인태 의원의 언급은, 더 이상 소극적인 '친노패권부재 프레임'으로는 책임 있는 대안의 모습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친노 인사들은 '친노헤게모니'와 '친노헤게모니안정론'이 부족할 경우 타계파들의 자발적 동의와 지지를 얻는데 한계가 있음과 동시에 이 한계를 만회할 지도력과 지도자가 부족할 때 친노패권주의와 친노패권불안정론이 나타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보완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신을 헤게모니론의 입장에서 계승하는 책임 있는 친노 인사가 있었다면 더민주당의 계파정치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당내외 여러 공공적인 정책담론과 규범 및 질서 등을 공급하고 선도함으로 당내부는 물론 한국정치 전반을 혁신하는데 초당적인 공헌을 하여 국민들의 자발적인 동의와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친노헤게모니가 있었다면 탈·분당을 포함하여 친노패권주의와 친노패권불안정론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친노헤게모니안정론'의 핵심은 대통령이 된 후 계파정치를 청산하기 위해 공천권을 포기하고 파당적인 대립과 갈등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기하여 공화주의자로 변신했던 노무현 정신을 친노 인사들이 더욱 구체화하여 계승하는 일이다. 즉, 친노를 자처하는 인사들이 민주 대 반민주 혹은 진보 대 보수 구도와 같은 진영논리와 노무현마케팅을 벗어나 민주화 이후 필요한 '국민통합을 위한 공화와 협치모델', '시민참여형(플랫폼) 네트워크정당모델', '오픈프라이머리 법제화', '숙의민주주의', '시민공화주의', '민주공화주의론'과 같은 공공재 담론을 더 많이 생산하고 공급하면서 한국정치의 성숙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

글 | 채진원

2009년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이란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수로 '시민교육', 'NGO와 정부관계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저서로는 『무엇이 우리정치를 위협하는가-양극화에 맞서는 21세기 중도정치』(인물과 사상사, 2016)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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