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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이라는 퍼즐 맞추기

이상한 일이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한참 동안 이루어진 일이 영화의 이야기에 난 구멍을 메꾸는 일이다.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가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으로 만족했다는 것. 그다음이 없다. 그다음이 꼭 있어야 하는가? 이렇게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곡성의 관객들이 지금까지 한 일은 다른 영화의 경우라면 극장에 불이 켜지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종료되는 일이다.

  • 허경
  • 입력 2016.05.25 11:32
  • 수정 2017.05.26 14:12

5월 11일 전야 개봉을 한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5월 23일 기준 46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최근 한국 영화 중에서는 가장 높은 성적의 흥행을 하고 있다. 반응도 뜨거웠다. 압도적인 이미지에 대한 칭찬과 배우들의 열연에 감탄하는 글들이 많았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이 이야기의 정체는 무엇인가'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좋았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화가 나타난 것이 얼마 만인가. 지난 몇 년간의 한국 영화는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관객이 지나치게 많이 들었으나 속은 텅텅 빈 영화와, 속은 든든했지만 아무도 관심 없었던 영화가 교차하는 현상을 보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뭔가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제각각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았다. 처음엔 등장인물 간의 관계였다. 다음은 감독의 발언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의 조립. 후엔 신과 악의 위치. 또한 등장한 근대와 전근대의 충돌, 제국주의 일본과 한국의 관계. 급기야 불려 나온 라캉의 상징계와 상상계 이론... 바야흐로 퍼즐 맞추기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영화를 가지고 노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 현상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러나 너무도 다양한 해석 속에서 문득 궁금해지는 것은, 이 이야기는 온전히 분석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 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영화 바깥에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오기 시작했고, 그것은 마치 다른 퍼즐에서 모양만 맞으면 가져와 끼운 것처럼 점점 이상한 모양새가 되어갔다. 대중의 지지를 받는 분석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걸 보며 하나의 그림으로 만드는 사람이 생겨났다. 페이스북, 여러 커뮤니티 등으로 퍼 날라졌고 사람들은 '아아 이게 이렇게 된 거구나.'하고 납득을 했다.

이상한 일이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한참 동안 이루어진 일이 영화의 이야기에 난 구멍을 메꾸는 일이다.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가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으로 만족했다는 것. 그다음이 없다. 그다음이 꼭 있어야 하는가? 이렇게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곡성>의 관객들이 지금까지 한 일은 다른 영화의 경우라면 극장에 불이 켜지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종료되는 일이다. 보통 여러분은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 집으로, 식당에서 혹은 커피숍에서 같이 관람한 이와 이 영화가 본인에게 어떻게 보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왜 <곡성>은 이 지점이 생략되어 있을까? 그리고 왜 관객은 명백한 답이 없는 퀴즈에 몰두한 걸까.

이야기를 분열시키고 그 끝을 철저하게 틀어막은(혹은 떡밥을 모두 의도적으로 '제거'한) 연출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의 생각은 이런 것이다. 피해자들 앞에 펼쳐진 압도적인 불운(이라는, 일견 가벼워 보이는 표현이 허락된다면)은 피해자로서 전혀 분석되지 않는다. 나홍진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걸 전달하려고 했을 것이다. 압도적이고 거대한 무언가를 보긴 봤는데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남아버린 찝찝함과 무서움. 이것을 떨쳐버리려는 필사적인 해석. 그리고 누덕누덕 기워내 찾아낸 답안지. 문제를 낸 당사자가 '모두의 분석을 지지한다'고 말해버린 상황에서 이 답안지는 어디에 제출될 것인가? <곡성>은 어쩌면 분석에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그 자체로 성공한 영화이다. 이 찝찝함을 털어내고픈 욕망을 관객이 가지게 되는 순간, 종구의 위치로 호출된다. 그리고 그다음은? 이미 보지 않았는가. 나홍진 감독의 연출은 영화 바깥에서도 성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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