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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에 수십년간 회비를 낸 공공기관 17곳(리스트)

ⓒ한겨레

정부의 투자와 출자 등으로 설립·운영되는 공공기관 17곳이 대표적인 재벌 이익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회원사로 가입해 길게는 수십년 동안 회비를 납부해온 사실이 확인됐다. 전경련은 최근 극우 성향의 보수단체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어버이연합)에 불법적으로 수억원대 뒷돈을 댔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2016년 5월 현재 전경련 회원사로 가입되어 있는 공공기관은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중소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산업은행 △인천국제공항공사 △신용보증기금 △한국산업단지공단 △기술보증기금 △선박안전기술공단 △산업연구원 △중소기업진흥공단 △한국전력공사 △한국서부발전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에너지공단 △한국석유관리원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등 17곳에 이른다.

23일 <한겨레>가 민병두·박완주·윤호중·정성호(이상 더불어민주당)·유성엽(국민의당) 의원실 등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기업은행·수은·산은·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공공기관 10곳은 2015년 한해동안 적게는 12만원부터 많게는 2365만원까지 평균 721만원씩 전경련에 내는 등 꾸준히 회비를 납부해왔다. 한국전력공사·한국서부발전·한국석유공사·한국가스공사 같은 에너지 공기업, 준정부기관인 한국에너지공단·한국석유관리원, 국립대인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등 7곳은 과거 회비를 납부한 이력이 있다. 한전은 2012년 탈퇴를 요청하는 공문을 전경련에 보냈다고 밝혔다.

나머지 기관들도 전경련에서 탈퇴했거나 회비 납부를 중단했다고 설명했지만, 7곳 모두 여전히 전경련 회원사 명단에 포함돼 있다. 전경련은 “한전은 중요한 회원사라 탈퇴 처리를 하지 않았다. 다른 공공기관 회원사 자격도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기관으로 정한 곳은 아니지만, 정부의 선박 안전검사를 대행하는 민간단체 한국선급이나 공공기관인 예금보험공사가 대부분의 지분을 보유한 서울보증보험㈜ 등 2곳도 전경련 회원사였다.

전경련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외면하고 최저임금 인상 반대나 법인세 인상 반대 등 특정 계층의 ‘좁은 이익’만 추구해왔다. 특히 사실상 5대 재벌의 대정부 로비 창구로 기능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 대기업 임원은 “정부가 관리·감독하는 공기업이나 기관이 사실상 재벌 총수들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전경련 회원이라는 건, 공공이익을 추구해야 할 공공기관이 스스로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전경련으로부터 수억원대의 자금을 지원받은 것으로 최근 드러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회원들이 2014년 9월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경찰서 앞에 모여 ‘대리기사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세월호 유가족 등을 규탄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는 모습.

공공기관의 이해관계가 자신들이 가입해 있는 전경련과 충돌을 빚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전력공사다. 전경련은 발전시장 민영화를 주장하면서 산업용 전기료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전기료 인상 여부가 수익과 직결되는 한전은 1964년 이후 50년가량 전경련의 회원사로 있다.

공공기관이 낸 회비나 사회협력비가 관제 집회 논란을 빚고 있는 어버이연합 등 지원을 받기엔 부적절한 곳으로 흘러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경련 누리집을 보면, 월회비는 고유목적(설립목적)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매달 부과한다. 1년 단위로 부과하는 연회비의 경우, 고유목적 사업을 하기 위한 일반회계와 시장경제 이념 창달·사회 협력·기업이해 증진 사업을 위한 사회협력회계로 나뉜다고 되어 있다. 전경련은 최근 회원사 회비로 조성된 사회협력회계를 통해 사회단체에 자금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사회협력회계에서 벧엘선교복지재단을 통해 어버이연합 쪽으로 돈이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경련은 어버이연합 불법지원 의혹이 불거진 지 한 달이 넘도록 침묵을 지키고 있다. 공공기관들이 전경련에 낸 월회비와 연회비 금액은 천차만별이다. 사회협력비를 따로 내는 경우는 소수였다. 전경련은 기관 규모나 매출액에 따라 회비를 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연회비와 별도로 해마다 100만원씩 사회협력비를 낸 중소기업은행의 경우 사용처를 미리 정한 뒤 사회협력비를 내는 건 아니라고 밝혔다. 전경련이 회원사들로부터 거둔 돈으로 사회협력 사업을 진행한 뒤 총회 등을 통해 사용처를 통보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공공기관들의 전경련 가입 사실을 묵인해 왔다. 2011년 전경련이 반기업 입법을 막기 위해 여야 지도부와 국회 주요 상임위원회 간부 등에 대한 로비를 강화하자고 삼성·현대차 등 대기업에 제안한 문건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그해 8월 국회 지식경제위가 주관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에 대한 공청회’에서 강창일 당시 민주당 의원은 “한국전력공사, 한국산업은행 등 대표적 공기업과 공직 유관기관 23개가 전경련 회원사”라며 “전경련 활동이 주로 대기업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규제 완화와 정부와 국회 로비인 상황에서 공기업이 전경련에 소속돼 있는 것을 국민들은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조처는 없었다. 공공기관 운영 전반을 규율하는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의 전경련 가입 사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기준 기재부 공공정책국장은 “각 공공기관이 왜 전경련에 가입했는지 살펴보겠지만 기본적으로 공공기관 운영은 자율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들의 전경련 가입 문제에 대한 기재부 입장은, 노사 합의로 진행돼야 할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모습과 대비된다. 이달 초 기재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는 공공기관에 내년 인건비 동결 등 불이익을 주고 기관장과 임원 평가에도 성과연봉제 시행 여부를 반영하기로 했다.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앞에서 민주노총 등 관련 시민사회단체 회원들로 구성된 '재벌이 문제야! 재벌이 책임져! 공동행동'회원들이 '전경련은 재벌의 나팔수'라며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경련에 가입한 공공기관 가운데 가장 많은 규모의 회비를 내고 있는 곳은 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중소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세 곳이다. 산은·수은·기업은행이 2015년 전경련에 낸 돈은 각각 1156만원·2100만원·2365만원이다. 이들 세 국책은행은 가입 당시부터 지금까지 전경련에 낸 돈의 규모에 대해서는 공개를 거부했다. 일정 기간 이전 자료는 현재 남아있지 않다는 이유를 댔다.

1968년 전경련에 가입한 기업은행은 2011년부터 4년 동안 1억1562만원의 회비와 사회협력비를 냈다. 1969년 회원사가 된 산은은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억5921만원의 회비를, 1976년 가입한 수은은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2억6529만원의 회비와 사회협력비를 전경련에 냈다. 현재 산은과 수은은 부실기업 지원으로 인해 곳간이 비면서 공적자금을 수혈받아야 할 처지다. 보증보험(채무자가 약속한 계약의 불이행에 따른 채권자의 피해를 보상해 주는 보험)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서울보증보험은 2009년 전경련에 가입해 2015년까지 모두 4016만원을 입회비 및 회비로 냈다. 서울보증보험에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2조원 가량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정부가 지분 100%를 보유한 인천국제공항공사(2004년 가입)는 지난 11년 동안 모두 8919만원을 회비로 냈다. 세금 및 기업 출연금 등으로 조성한 공적 기금을 관리하는 준정부기관인 신용보증기금(1976년 가입)과 기술보증기금(1996년), 한국산업단지공단(1967년), 선박안전기술공단(2003년), 산업연구원(1973년), 중소기업진흥공단(1986년)도 전경련 회원사이다. 각 기관들이 2015년 전경련에 낸 돈은 12만~204만원이었다.

공공기관인 선박안전기술공단과 함께 정부의 선박안전 검사를 대행하는 민간단체 한국선급도 1971년부터 전경련 회원사이다. 1960년대 해운조선·보험업계 인사들이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선급은 세월호에 대한 증·개축 및 복원성 검사를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논란을 빚었다. 그런데 연안 해운사들의 이익단체인 한국해운조합도 전경련 회원사다. 선박안전기술공단과 한국선급, 안전검사를 받는 업체들의 이익단체인 한국해운조합이 전경련을 울타리로 결합해 있는 모양새다.

공공기관들은 왜 전경련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걸까. 공식 사유는 산업 관련 정보 교류 및 유관 기업과 협력 강화였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교류와 협력 활동을 하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한 대기업 임원은 “전경련이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기업 회원사 간 협력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전경련은 로비단체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반기업 정서를 가졌다는 이미지를 줄까 봐 실익이 없음에도 전경련에 가입한다는 말도 나왔다. 석유 제품 품질과 유통을 관리하는 한국석유관리원은 2008년 11월 전경련에 가입했다가 “비용 대비 업무활용 빈도가 낮다”며 2년 만에 회비 납부를 중단했다. 실익이 없었다는 뜻이다. 한 공공기관 직원은 “기관장이나 경영진 인맥을 통해 규모가 되는 공공기관이면 전경련 회원사로 들어와야 하지 않겠냐는 요청이 오고, 반기업 정서를 가졌다는 이미지를 줄까 봐 이러한 요청을 거절하기 어렵다. 기관장들이나 부처 관료들은 퇴임 뒤 어떻게 될지 모르니 전경련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와 전경련의 ‘밀월’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첫 내각을 구성하면서 산업 정책을 총괄할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이윤호 전경련 상근부회장을 전격 발탁했다. 공공기관장들이 전경련의 위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정부가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전경련은 “공공기관도 민간기업과 사업을 하니 교류 필요성이 있지 않겠느냐”며 “우리는 민간단체이므로 가입을 압박할 수 없고, 공공기관들이 자율적으로 가입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개발 독재시대 ‘정경유착’을 계기로 만들어진 전경련의 특성 그 자체에서도 공공기관들의 전경련 가입 배경을 찾을 수 있다. 공공기관 17곳 가운데 절반가량은 전경련 설립 초창기인 1960~1970년대에 가입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학)는 “공공기관들의 전경련 가입은 ‘정경유착’이라는 구습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1961년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부정축재 혐의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를 비롯해 재벌 기업인 11명을 구속하기로 결정하고 이들을 잡아들인다. 당시 일본에 머물고 있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같은 해 6월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다는 기자회견을 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처벌 대신 경제 건설의 일익을 담당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렇게 풀려난 기업인들은 군부의 요구에 따라 1961년 7월 경제재건촉진회를 조직했고, 한 달 뒤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꿔 이병철 초대회장을 선출한다. 이후 1968년 한국경제인협회는 전경련으로 문패를 바꿔달았다. 박정희 정권이 주도하는 산업화 정책에 보조를 맞추면서, 전경련은 대·중소기업을 아우르는 법정단체 대한상공회의소를 제치고 재계의 맏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래픽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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