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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억압 덜 받았던 2030 여성의 분노가 높은 이유

ⓒ연합뉴스

“우리 세대는 남자 형제들과 차별받거나,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 이런 소리를 듣고 크지 않았다. 학교에서 차별받은 적 없고, ‘노력만 하면 다 할 수 있다’고 배웠다. 하지만 대학 졸업하고 사회 나오니까 아니었다. 취업과정에서 차별받고, 직장에는 성희롱이 만연하다. 오늘 아침에도 친구가 카톡으로 ‘팀장이 나한테 성희롱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물어봤다. 10년 이후에도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고민하고, 승진 트랙에도 끼지 못한다. 알고보니 우리 사회는 남녀 차별이 없는 사회가 아니었던 것이다.”(이유진·가명·대학원생·27)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추모 열기의 주역들은 2030 여성들이다. 이들은 1980년대 이후 태어나 제도적 남녀평등이 어느 정도 자리잡은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다. 1~2명의 자녀만을 두는 핵가족에서 ‘너만 노력하면 남자들과 똑같이 성공할 수 있다’고 부모한테 격려받고 자란 ‘알파걸’들이 많다. 과거 ‘장남을 위해 여자 형제들이 희생’할 것을 공공연히 강요받던 4050 이상 세대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란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달랐다. 2030 여성들은 성희롱·성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됐고 취업과 승진에선 유리천장에 부딪혔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여혐’에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런 세대적 특징이 놓여있다.

회사원 전수희(가명·27)씨는 “회사에서 ‘여자들은 애 낳으면 그만둬서 안 된다’는 말을 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상사들이 많다. 조금 높은 지위 올라간 여자 직원을 배척하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교육받을 때는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사회생활에서는 ‘여자다움을 유지할 것’과 ‘여자랍시고 어드벤티지를 요구하지 말 것’이라는 모순적인 기준을 여자들에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회계사인 이수진(가명·27)씨는 “회사 남자 동기들이 ‘너는 다른 여자들이랑 달리 야근을 잘한다’는 말을 칭찬삼아 한다. 그런 식의 구도가 매우 불편하고 짜증나지만 그들은 이해를 못한다”고 말했다.

이 세대는 또한 각자의 상처를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하면서 ‘여성으로서의 공감대와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유진씨는 “메갈리아 등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들이 재미있는 방식으로 이슈들을 다루기 때문에 우리 세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씨는 “4050 여성들이 ‘만연한 불합리’를 피부처럼 느끼고 살았다면, 우리 세대는 스스로 고민해볼 계기가 좀더 있었다. 일베의 등장, 성재기(남성연대 대표) 자살 등 상징적 사건들을 겪으면서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2030 여성들은 전통적인 가부장적 억압을 별로 느끼지 않고 자라났는데 정작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가 퍼져있다는 데 분노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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