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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과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올해 2월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진실' 자료는 일부 정신질환은 일시적으로 조절되지 않은 충동성 때문에 자해, 타해 위험성을 보일 경우가 있지만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마저도 타해 위험성은 자해 위험성의 1/100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1년 대검찰청이 발표한 범죄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비정신질환자 범죄율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조현병 환자의 범행으로만 몰고 가기엔 무리가 있다.

  • 김선현
  • 입력 2016.05.24 11:37
  • 수정 2017.05.25 14:12

프레더릭 모건, 홍수, 1897년

옛날에는 아이들이 오줌을 싸면 키를 씌워서 집집마다 소금을 얻으러 다녔다. 이런 풍습은 다시는 오줌을 싸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창피를 주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놀리기 위해서였을까?

자면서 오줌을 싸는 문제는 어린 아이의 노력만으로 쉽게 고쳐지진 않는다. 신체적 문제이거나 심리적 불안에서 기인하므로 망신을 준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그런 면에서 오줌을 싼 아이에게 당시 비싸고 귀한 소금을 나눠주는 행위는 관심의 표현이요, 도움을 주려는 손길이었다. 옛날 어른들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지금 개인의 문제는 개인이나 가족끼리만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여겨진다.

최근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은 초기에 '묻지마 범죄'로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무시당해서 범행을 했다'는 피의자의 진술이 나오면서 '여성혐오 범죄'로 회자되었다. 피의자는 조현병환자로 알려졌다. 2011년부터 정신분열이라는 병명은 부정적 인식을 개선한다는 취지에서 조현병으로 개명됐다. 동시에 병원의 문턱을 낮추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되고,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조현병을 다룬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올해 2월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진실' 자료는 일부 정신질환은 일시적으로 조절되지 않은 충동성 때문에 자해, 타해 위험성을 보일 경우가 있지만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마저도 타해 위험성은 자해 위험성의 1/100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1년 대검찰청이 발표한 범죄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비정신질환자 범죄율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조현병 환자의 범행으로만 몰고 가기엔 무리가 있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이를 개인적 문제로 여겨 모든 환자를 병원에 격리시키는 게 해결책일까. 사건을 접한 여성들은 놀람과 함께 두려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 감정들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여성들이 그동안 사회적으로 자신도 '나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와 같은 그동안 부당하다고 느꼈던 경험을 이 사건을 기폭제로 털어놓게 된 것이다. 또한 강남역은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인데도 불구하고 사건이 벌어진 데에 따른 불안감이 증폭했다.

사건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원인을 짚어보고 향후 이런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 번째, 안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시설만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의 필요성이다. 사건은 많은 여성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우리 사회가 환경적으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심리적, 정서적 안정감을 갖게 한다.

두 번째, 피의자의 성장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피의자를 돌보았던 어른들의 역할이 어떠했는지, 사회생활을 통해 여성에게 받은 상처가 어떻게 여성 전체에 대한 분노로 확산됐는지 왜곡된 인지 과정을 봐야 한다. 그래야만 여성혐오범죄인지, 조현병 환자의 망상에 비롯된 사건인지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

세 번째, 사회 전반적인 교육문제의 필요성이다. 어릴 때부터 인간존중사상과 성평등인식을 교육해야 한다. 특히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이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음 세대와 이 개념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현 사회는 이와 같은 인성 기초교육이 시급하다.

네 번째, 한 사람의 아픔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 학교, 사회, 지역 공동체의 문제여야 한다. 공동체와 함께할 때 우리는 혼자만의 무거운 짐에 눌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장애아동을 가진 '가족' 중에서 '부모', 나아가 자식을 낳은 '엄마'의 책임만 지는 사회가 된다면 그 엄마의 삶은 너무나도 벅차다. 이는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 공동체 책임의식을 함께하는 사회가 절실하다. 그러나 일부에선 여성, 남성들 사이에 또는 연인관계에서 이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여성이 피해자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남성들은 이야기 과정 중 잠재적인 가해자로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 사건을 바라보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인정하되 평가하지 않으면서 소통해야 한다. 감정의 동일시에서 벗어나 감정을 의식하고, 감정에 대한 인과관계를 모색하면서 동일시하게 되는 과정을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내 감정의 원인을 알아채면 감정의 동일시로부터 벗어나 감정을 관조할 수 있으며, 어떤 사건이 발생할 때 동일한 감정이 생기는 것을 깨닫고 똑같은 감정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후 자신의 감정을 알고 말로 표현하며, 감정의 원인을 알아낸다면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해 공감하고 서로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인식할 수 있다.

페데르 세베린 크뢰이어, 스카겐 남부 해변에서의 여름 저녁, 1893년

어린 시절 동네에서 간질병 환자가 길에 쓰러진 걸 본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그저 놀라서 쳐다보고 있을 때, 환자를 일으켜 집에 대려다 주는 어른들이 있었다. 정신병자라고 놀림받는 이에게 '밥은 먹었니?'라며 따뜻한 관심을 보이는 어른들이 있었다. 이런 풍경이 부쩍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아픔은 아픔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아픔을 통해 변화하고 성숙하며, 성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개인도, 사회도 아픈 만큼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극복한 만큼 성장한다. 그리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성장할 때 딛고 일어서는 힘은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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