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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한 내 상처는 어디에 있을까 | 차별경험 '같은 응답, 다른 의미'를 아십니까

결과는 성별에 따라 명확하게 나뉘었다. 남성 노동자가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했을 때 그 대답은 '아니요 (구직 과정에서 차별받은 적이 없다)'를 뜻했고, 여성 노동자가 같은 답을 했을 때 그것은 '예 (구직과정에서 차별 받은 적이 있다)'라는 뜻에 가까웠다. 같은 대답이지만 남성과 여성에서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구직 과정에서의 차별만이 아니었다. 월급을 받는 과정의 차별 경험을 측정했을 때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여성의 '해당사항 없음'은 차별을 받았다는 뜻이었고, 남성에서는 반대였다.

  • 김승섭
  • 입력 2016.05.22 11:31
  • 수정 2017.05.23 14:12
ⓒGettyimage/이매진스

성차별 뛰어넘자 '폴짝'. 여성 노동자들이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서 성차별 장벽을 넘는다는 뜻으로 줄넘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신소영 (2010년 4월)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맺는 여러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 관계들은 상처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 이러한 사회적 폭력은 인간의 몸에 생채기를 남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인간의 몸을 병리적으로 변화시킨다. 그 변화된 신체 조직의 부위와 형태에 따라 현대 의학은 그 상처를 심장병이라고 우울증, 암이라고 부른다.[1][2][3]

사회적 폭력이 인간의 몸에 질병으로 남긴 상처를 해독하는 학문이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이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인 것처럼, 벤젠이 혈액암을 발생시키는 것처럼, 차별과 왕따와 같은 사회적 폭력도 역시 병을 유발한다. 그런데, 흡연 여부와 벤젠 노출을 측정하는 것에 비해서 차별과 같은 사회적 폭력을 측정하는 일은 훨씬 더 예민하고 복잡하다.

아래 인용한 에이즈(AIDS) 감염인 민우의 말처럼 사회적 폭력에 노출되는 약자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차별을 받은 뒤에도 과연 자신의 경험이 차별이었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특히 차별적인 대우에 만성적으로 익숙해져 있는 이들은 그런 판단을 하기 더더욱 어렵다.

그래도 사실 어떤 부분이 차별이고 편견인지는 잘 모르겠어. 진짜 취약 계층은 더 그래. 계속 살아온 과정이 그렇기 때문에 더 그런 거야. 주변에서 이렇게 하는 게 차별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또 그런 걸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돌아보면 나도 대부분 지나고 나서야 아는 거야. 아무 힘 없는 사람들이 모르고 차별을 받는 거지.

(에이즈 감염인 민우,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중 180쪽)

경험과 표현의 간극

사회적 폭력의 대표적 형태인 차별 경험을 측정하는 일이 그러하다. 흡연 여부를 묻는 것이나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것에 비해, 차별을 경험했는지 묻는 것은 훨씬 복잡하다. 차별 경험은 권력관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데, 약자인 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부당한 일들을 쉽사리 보고하지 못한다.

그와 같은 이유로 '차별과 건강'을 연구하는 하버드대학의 낸시 크리거(Nancy Krieger) 교수는 설문이나 인터뷰를 통해 차별 경험을 측정하는 것은 특히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며,[4] 차별을 경험하는 것(Experienced discrimination), 그 경험을 차별이라고 인지하는 것 (Perceived discrimination), 그 인지한 차별을 보고하는 것(Reported discrimination)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차별을 경험한다고 그것을 모두 차별로 인지하지 못하고, 또 차별을 인지한다고 해서 모두 보고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보스턴 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연구는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한 만큼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것을 차별이라고 보고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했다.[5] 또한 미국에서 진행된 다양한 인종을 대상으로 한 실험 연구는 미국 사회에서 약자인 흑인, 여성, 아시아인들이 차별을 경험했을 때, 그 경험을 차별이라고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인지하는 것이 자신이 차별받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마음이 덜 불편하기에 심리적으로 이득이라는 설명이다.[6]

말하지 못한 차별 경험과 여성의 몸

한국은 어떠할까.[7]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것은 한국의 노동패널 데이터를 이용하여 차별 경험이 건강과 어떠한 연관성을 보이는가에 대해 분석할 때였다. 한국에서 남성의 경우 차별의 주요 원인이 학력과 연령이고 여성에서는 성별과 학력이라는 결과와 더불어, 그 차별 경험이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결과를 보고한 논문이었다.[8]

(논문 원문: http://bit.ly/1R1h6sX)

그런데 그 논문을 작성하다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귀하는 새로운 일자리에 취업할 때 차별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이 질문에 대해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사람들이 있었다. 만약 아직 한번도 일자리를 구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구직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할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대답이 가능했다.

문제는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답변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구직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보아도 여전히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150명 가량 남아 있었다. 이들은 구직 과정을 거쳐 현재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이들의 대답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구직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이니까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했는가?'라는 질문에 '예' 아니면 '아니요'라고 답해야 하는데, 무슨 이유로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것일까.

과연 이들은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했던 것일까, 아닐까? 통계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본인이 차별을 경험했는지 여부를 밝힌 3000여 명 노동자들의 정보를 활용하여 차별을 경험했을 확률을 계산하는 모형을 만들고,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이들에게 적용해 보았다(논문 원문 http://bit.ly/1R1h6sX).[9]

결과는 성별에 따라 명확하게 나뉘었다. 남성 노동자가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했을 때 그 대답은 '아니요 (구직 과정에서 차별받은 적이 없다)'를 뜻했고, 여성 노동자가 같은 답을 했을 때 그것은 '예 (구직과정에서 차별 받은 적이 있다)'라는 뜻에 가까웠다. 같은 대답이지만 남성과 여성에서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구직 과정에서의 차별만이 아니었다. 월급을 받는 과정의 차별 경험을 측정했을 때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여성의 '해당사항 없음'은 차별을 받았다는 뜻이었고, 남성에서는 반대였다.[9] 이 결과는 여성 노동자가 구직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보고하는 것은 남성에 비해 더 예민하고 복합적인 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성 노동자에게는 차별 경험을 인지하고 타인에게 보고하는 게 심리적으로 더 아픈 일이기에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대신해서 선택했던 것 아닐까.

그런 해석을 뒷받침하듯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사람들을 포함해서 차별 경험과 자가평가 건강(self-rated health)과의 연관성을 살펴보았을 때, 여성의 경우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사람들이 건강 상태가 가장 나빴다. 차별을 겪지 않은 사람이 가장 건강했고, 차별을 경험했다고 보고한 이들이 그 다음이었고,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그룹이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이들, 자신의 차별 경험을 보고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이 실제로는 가장 많이 아팠던 것이다. 그리고 남성의 경우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답변이 실제로 차별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논문의 결과를 반영하듯,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남성 노동자들의 건강은 차별받지 않은 이들과 실제로 차이가 없었다.

말하지 못한 학교 폭력과 남성의 몸

비슷한 문제를 다른 상황에서 만난 것은 얼마 전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를 분석할 때였다(논문 원문: http://bit.ly/1X2I04k). 한국에서 다문화 가족의 숫자는 지난 15년 동안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다른 인종에 적대적인 한국사회에서 결혼이주 여성과 그 자녀들은 다양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데이터를 분석하여,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이 어떤 형태의 학교 폭력(욕설, 집단 따돌림, 성희롱, 갈취 등)을 겪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그런 경험들이 어떻게 우울증상과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본 연구였다. 물론, 학교 폭력을 경험한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서 우울증상 유병율이 높은 것이 새삼스럽게 연구주제가 될 이유는 없었다.

연구의 주된 관심은 학교 폭력을 경험한 뒤에 어떻게 대응했는가에 따라 우울증상의 발생 위험에 차이가 있었는가였다. 폭력을 경험했을 때, 청소년들의 반응을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친구/부모님/선생님 등 주위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 경우,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경우, 그리고 '별다른 생각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한 경우였다.

(논문 원문: http://bit.ly/1X2I04k)

첫 분석결과는 놀랍지 않았다.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가장 우울증상 유병율이 높은 집단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경우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감당하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 비해 7배,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이들이나 '별다른 생각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한 이들에 비해 2배 가량 우울증 발생이 흔했다.[10]

그런데 남녀를 나눠서 분석했을 때는 새로운 결과가 관찰되었다. 결과가 확연히 바뀐 부분은 다름 아닌 '별다른 생각없이 그냥 넘어갔다'고 답한 이들이었다. 그렇게 답한 여학생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과 우울증 유병율의 차이가 없었다. '별다른 생각없이 그냥 넘어갔다'고 답한 여학생들의 경우를 평균값을 기준으로 해석했을 때 실제로 그들이 경험한 학교 폭력이 비교적 경미한 것이거나 상처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놀라운 결과는 '별다른 생각없이 그냥 넘어갔다'고 말한 남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모든 집단 중에서 가장 많이 아팠다.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별다른 생각없이 그냥 넘어갔다'고 답한 이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 비해 8배 높은 우울증 유병율을 보였을 뿐 아니라,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이들보다 3배 이상 높은 우울증 유병율을 보였다. 심지어 이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던 남학생들, 그러니까 기존 결과에 기반해 볼 때 가장 나쁜 상황에 처한 이들보다도 우울증상 유병율이 높게 나왔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폭력에 노출되고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했지만, 하지만 자신은 스스로 괜찮다고 말하며 그 상처를 숨기고 있었던 게다.

이 결과는 학교폭력을 경험한 남학생과 여학생에서 '별다른 생각없이 그냥 넘어갔다'는 말이 전혀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같은 대답이지만 여학생과 달리, 남학생에서 그 말이 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너무 괴로웠지만 도움을 요청할 수조차 없었다는 뜻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상처 받았고 괴롭지만, 스스로에게 '별 거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애써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의 원인이었을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남자가 힘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남자라면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그들은 '강한 남자'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속인 것일 수도 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들이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장애인 차별 철폐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신소영(2012년 4월)

말하지 못하는 상처와 기억하는 몸

구직 과정의 차별에 대해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여성 노동자와 학교 폭력에 대해 '아무 느낌 없다'라고 답한 다문화가정 남학생은 모두 자신의 실제 경험을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은 차별을 겪고도 자신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말했던 여성 노동자는 차별을 경험했던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아팠고, 학교 폭력을 겪은 후에 아무렇지도 않다고 이야기했던 다문화가정 남학생은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아팠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상처를 대하는 데 있어 아픈 동시에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인간의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록하고 기억하고 있다. 몸은 정직하다.

[참고문헌]

[1] Pascoe EA, Smart Richman L. Perceived discrimination and health: a meta-analytic review. Psychol Bull. 2009;135(4):531-54. Epub 2009/07/10. doi: 2009-09537-003 [pii] 10.1037/a0016059. PubMed PMID: 19586161; PubMed Central PMCID: PMC2747726.

[2] Krieger N. Discrimination and health inequities.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s. 2014;44(4):643-710.

[3] Williams DR, Mohammed SA. Discrimination and racial disparities in health: evidence and needed research. J Behav Med. 2009;32(1):20-47. Epub 2008/11/26. doi: 10.1007/s10865-008-9185-0. PubMed PMID: 19030981; PubMed Central PMCID: PMC2821669.

[4] Krieger N. Embodying inequality: a review of concepts, measures, and methods for studying health consequences of discrimination. Int J Health Serv. 1999;29(2):295-352. Epub 1999/06/24. PubMed PMID: 10379455.

[5] Crosby F. The Denial of Personal Discrimination. American Behavioral Scientist. 1984;27(3):371-86. doi: 10.1177/000276484027003008.

[6] Ruggiero KM, Taylor DM. Why Minority Group Members Perceive or Do Not Perceive the Discrimination That Confronts Them: The Role of Self-Esteem and Perceived Control.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997;72(2):373-89.

[7] 손인서, 김승섭. 한국의 차별경험과 건강 연구에 대한 체계적 문헌고찰. 《보건사회연구》. 2015;35(1):26-57.

[8] Kim S-S, Williams DR. Perceived Discrimination and Self-Rated Health in South Korea: A Nationally Representative Survey. PLoS One. 2012;7(1):e30501.

[9] Kim S-S, Chung Y, Subramanian SV, Williams DR. Measuring Discrimination in South Korea: Underestimating the Prevalence of Discriminatory Experiences among Female and Less Educated Workers? PLoS One. 2012;7(3):e32872.

[10] Kim JH, Kim JY, Kim SS. School Violence, Depressive Symptoms, and Help-seeking Behavior: A Gender-stratified Analysis of Biethnic Adolescents in South Korea. J Prev Med Public Health. 2016;49:61-8.

* 이 글은 <사이언스온>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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