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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IT의 역사를 쓴 구글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들이 처음부터 독자적인 검색 알고리즘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인터넷 회사를 세우겠다는 꿈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적인 서비스를 만들어낸 것일까? 이 두 명이 만들어 낸 '점의 연결'을 따라가보자. 브린과 페이지는 숙제를 잘해보겠다는 작은 목표에서 출발해, 작은 점들을 하나씩 찍어나갔다. 그들은 단지 눈앞의 '점 하나'에 집중했을 뿐이다.

  • 김민태
  • 입력 2016.05.20 13:22
  • 수정 2017.05.21 14:12
ⓒ연합뉴스

2015년 봄 어느 날, SNS 활동을 하는 대학 동문들을 중심으로 번개 모임이 열렸다. 예닐곱 명이 모였고, 자리는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할 얘기들이 다 떨어진 탓일까? 화제는 뜬금없이 선배 H의 딸 Y의 이야기로 모아졌다.

초등학생인 Y는 태어나자마자 척추에 생긴 소아암으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 치료 결과는 좋지 않아 지금은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하지만 Y는 천성이 낙천적인 데다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체육이라고 할 만큼 활동적이다.

그러나 Y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딱 거기까지다. 집과 학교의 울타리를 넘는 순간 무력해진다. 턱이 있는 가게, 승강기가 없는 건물은 아예 들어갈 수도 없다. 게다가 Y는 지하철 타는 걸 좋아하는데 이 여정이 일반인의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다. 같이 있던 사람들은 엄마인 H의 경험담에 점차 몰입되었다. "지하철역 환승 통로에서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 났다는 안내문을 봤는데, 그 안내문대로 갈아타면 40분이나 더 걸리더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모두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을 널리 알릴 방법이 없을까?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다. 장애인을 위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볼까? 방송사에 다큐멘터리 제안을 해볼까? 제작비용을 댈 수 있는 후원자를 찾을까? 아니면 먼저 국회의원을 만나 이슈화시켜볼까? 결론은 안 났지만 그날 자리는 그렇게 뜨거운 열정을 확인하고 끝났다.

그 이후, 난 한동안 마음의 부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씩 떠오르던 고민은 현업을 핑계로 슬며시 묻혔다 나왔다 하기를 반복했다. 좋은 실행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편집 회사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은 후배 N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부탁했다. "촬영은 문제가 없는데, 편집 비용이 문제야. 포털에서 하는 펀딩에 스토리를 올리고 제작비를 마련했으면 하는데, 첫 편만 도와줄 수 있겠니?" 난 실컷 너스레를 떨며 이런 말도 덧붙였다. "혹시 아니? 네가 이 프로젝트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될지." 후배 N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승낙했다. "한번 해보죠."

그렇게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제목은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로 정했다. 첫 편은 스마트폰 2 대를 가지고 서울 지하철 상일동역에서 합정역까지의 여정을 쫓아갔다.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2015 년 봄 어느 날, SNS 활동을 하는 대학 동문들을 중심으로 번개 모임이 열렸다. 예닐곱 명이 모였고, 자리는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할 얘기들이 다 떨어진 탓일까? 화제는 뜬금없이 선배 H의 딸 Y의 이야기로 모아졌다.

초등학생인 Y는 태어나자마자 척추에 생긴 소아암으로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았다. 치료 결과는 좋지 않아 지금은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하지만 Y는 천성이 낙천적인 데다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체육이라고 할 만큼 활동적이다.

그러나 Y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딱 거기까지다. 집과 학교의 울타리를 넘는 순간 무력해진다. 턱이 있는 가게, 승강기가 없는 건물은 아예 들어갈 수도 없다. 게다가 Y는 지하철 타는 걸 좋아하는데 이 여정이 일반인의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다. 같이 있던 사람들은 엄마인 H의 경험담에 점차 몰입되었다. "지하철역 환승 통로에서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 났다는 안내문을 봤는데, 그 안내문대로 갈아타면 40분이나 더 걸리더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모두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을 널리 알릴 방법이 없을까?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다. 장애인을 위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볼까? 방송사에 다큐멘터리 제안을 해볼까? 제작비용을 댈 수 있는 후원자를 찾을까? 아니면 먼저 국회의원을 만나 이슈화시켜볼까? 결론은 안 났지만 그날 자리는 그렇게 뜨거운 열정을 확인하고 끝났다.

그 이후, 난 한동안 마음의 부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씩 떠오르던 고민은 현업을 핑계로 슬며시 묻혔다 나왔다 하기를 반복했다.

좋은 실행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편집 회사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은 후배 N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부탁했다. "촬영은 문제가 없는데, 편집 비용이 문제야. 포털에서 하는 펀딩에 스토리를 올리고 제작비를 마련했으면 하는데, 첫 편만 도와줄 수 있겠니?" 난 실컷 너스레를 떨며 이런 말도 덧붙였다. "혹시 아니? 네가 이 프로젝트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될지." 후배 N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승낙했다. "한번 해보죠."

그렇게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제목은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로 정했다. 첫 편은 스마트폰 2 대를 가지고 서울 지하철 상일동역에서 합정역까지의 여정을 쫓아갔다.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담담하게 뒤를 밟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 달 후, 편집본이 나왔다. 영상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후원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보상이었다. 펀딩은 기부와 다른 개념이라 사례를 줘야 한다. 그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 회사 (EBS)에서 다시보기 이용권을 주면 되겠네!'

이때 처음으로 이 프로젝트가 내가 업무상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와 연결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난 당시 '육아학교'라는 인터넷 방송과 애플리케이션이 결합된 육아 정보 서비스를 만들고 있었다. 뒤늦게 발견한 키워드는 '사회적 육아'였다. '그렇지, 아이는 부모만 키우는 게 아니라 사회가 같이 키워야지!' 그렇게 보상 문제가 해결됐고, 펀딩은 성공했다. 첫 영상을 게시한 후 불과 열흘 만에 목표 금액 5 백만 원을 채웠다. 안정적인 제작 여건을 만든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우연과 흥분으로 가득 찬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당시 동문회 자리에 있던 선후배들의 후일담도 들어보면 비슷하다. '아, 우리의 수다가 정말 이야기가 되는구나.' 프로젝트의 주인공인 H에게도 역시 놀라운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H와 그녀의 딸 Y의 이야기가 인터넷 매체에 소개되면서 지상파 라디오에서 출연 섭외를 받고, 일간지 1면 머리기사에 오르기까지 했다. 종합지에서 정치, 경제 혹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아니면서 1 면에 소개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라는 캠페인성 다큐를 만들면서 H와 그녀의 딸 Y, 제작의 중심에 있던 N, 그리고 프로듀싱한 나까지 모두 무언의 경험을 공유했다. 세상에는 하고자 한다면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깨달음과 마침내 '우리가 해냈다'는 성공 경험이다. 매 단계에 서 자존감이 높아진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모든 것이 '한번 하기'가 만들어 낸 '점의 연결'이다.

... '점'은 이미 눈앞에 있다

2015년 구글의 회장인 에릭 슈미트가 어린이 교육과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방한했다. 한 기자가 구글이 지속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비결을 물어보자, 슈미트는 구글이 탄생한 창고에 빗대 설명했다. 그의 요지는 구글뿐만이 아니라 많은 혁신 기업의 출발이 공교롭게도 창고인 이유는 그곳이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것. 슈미트는 한마디로 "혁신은 우연하게 나온다"고 말했다. 구글의 역할은 그저 우연을 키울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글에서 혁신과 창의성 프로그램 총괄매니저를 맡고 있는 프레드릭 페르트 역시 혁신과 창의성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라는 오래된 믿음을 단호히 부정한다. 구글이 아이와 같은 행동을 장려하고 장난스러움을 격려하는 이유는 창의성이 발현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 이것은 창의성과 혁신이 외부로부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우리 내부에 이미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회의 '점'도 마찬가지다. 단지 잘 보이지 않을 뿐,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에 숨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한 액션 플랜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 눈을 크게 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이 '발견되도록' 마음이 가는 곳에서 작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21세기 IT의 역사를 쓴 구글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들이 처음부터 독자적인 검색 알고리즘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인터넷 회사를 세우겠다는 꿈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적인 서비스를 만들어낸 것일까? 이 두 명이 만들어 낸 '점의 연결'을 따라가보자.

발단은 대학원 학기 말에 내야 하는 래리 페이지의 논문 과제에 있었다. 페이지는 온라인 도서관의 검색 결과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려고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검색 엔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검색 사이트가 급증하던 때로 30 개가 넘는 검색 엔진이 있었고, 야후와 알타비스타가 세계 최고의 자리를 놓고 다투던 시대였다. 엔진의 종류는 달랐지만 대개의 알고리즘은 특정 키워드가 웹페이지 내에 얼마나 많이 출현하느냐에 따라 순위를 결정했다.

하지만 페이지는 무질서하게 나오는 정보들 때문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투덜댔다. 그때마다 수학을 잘했던 브린이 도움을 주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그러다 페이지는 '차라리 우리가 새로운 검색 엔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제안했고 브린이 받아들였다.

지인들은 검색 엔진이 이미 포화상태인데 얼마나 새로운 걸 만들겠다는 건지, 자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 정신 나간 짓이라며 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청년은 그냥 해보기로 했다.

페이지는 키워드 양을 기준으로 한 기존 검색 엔진의 방식보다 웹사이트 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방법이 더 좋은 검색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백럽 BackRub 이라는 로봇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것이 바로 구글의 전신이다.

새 검색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양의 컴퓨터가 필요했지만 페이지와 브린에게는 돈이 없었다 . 이들은 학교 실험실에 방치돼 있던 PC 부품을 구걸하다시피 얻어와 기숙사 방안에서 하나씩 조립했다. 페이지의 방은 늘어난 컴퓨터와 각종 장비로 꽉 차 누울 공간조차 없었다. 그러면서 브린의 기숙사 방이 사무실 겸 개발실로 쓰였다.

운 좋게도 이들의 가능성을 알아본 교수의 지원으로 프로젝트는 한 발씩 나갈 수 있었고, 마침내 1996년에는 대학 네트워크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렇다고 회사를 차릴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구글의 하루 접속 횟수가 1 만 건이 넘어가자 학내 인터넷망이 마비될 정도로 피해를 끼치게 됐다. 개발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브린과 페이지는 검색 서비스를 다른 회사에 팔기로 결심한다. 그들이 생각한 액수는 100만 달러. 알타비스타, 야후 그 밖의 많은 인터넷 기업들을 접촉했지만 번번이 쓴 맛을 봤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행운이었다. 현재 구글의 시가총액은 당시의 상상력이 따라가지 못할 수준이다.

결국 이들은 10만 달러의 투자금을 받고 1998년 9월 구글을 창업했다 . 그로부터 불과 2년 뒤, 세계 최고의 검색 사이트에 등극했다.

2006년에는 사용자가 더 늘어나며 회사명 구글 google이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록되어 '구글을 이용하여 인터넷의 정보를 검색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구글은 현재 전 세계 검색 시장의 70 %를 장악하고 있다. 서비스는 검색 엔진을 넘어 구글 어스, 유튜브 동영상까지 확대되었다. 2007년에는 모바일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통해 모바일 시장에도 진입했다. 간편한 통번역 서비스에서 무인 자동차 개발까지, 지금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브린과 페이지는 숙제를 잘해보겠다는 작은 목표에서 출발해, 작은 점들을 하나씩 찍어나갔다. 그 점들이 나중에 어떻게 이어질지는 당시에 예측할 수 없었으나 마침내 지구촌마저 연결시켰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컸다면 그처럼 큰 프로젝트를 밀고 나가지 못했을 것이 다. 그들은 단지 눈앞의 '점 하나'에 집중했을 뿐이다.

... 현재의 '점'이 연결되어 '길'이 된다

모든 경험은 그 자체로 '점'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의 말대로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연결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뒤돌아보면 분명히 보인다.' 작은 점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먼 나라의 먼 사람들 얘기 같지만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본질적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때 그걸 했어야 했는데' 이런 후회들, '그 친구는 참 운이 좋아' 이런 부러움 속에 있는 것이 바로 '점'이다. 이런 과거들이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이후 어떤 사건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 역시 지나야 보인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한다. 혁신적인 사람들로 인해 그 혜택을 전 인류가 누릴 정도니, 사람들은 그들을 기꺼이 '위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 역시 처음부터 탁월한 계획표를 가지고 일을 벌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작은 미비했고, 무수히 많은 작은 도전 중에 어쩌다 작은 성공이 걸려든 것이다. '어쩌다'가 그들을 폄하하는 말이 아닌 이유는 '무수히 많은' 도전이 그 가치를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쨌든 일단 '성공해 보기'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 성공이 다시 더 큰 도전을 이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나는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 | 운명을 바꾸는 '한번 하기'의 힘>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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