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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혐오 나라의 여행 이야기

출발점은 나도 결코 이 강남역 사건에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반성하는 부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이번 일이 일어났기에, 이걸 공론화하고 분노하는 것이 비정상인가? 이번 일을 그냥 참아야 한다고 하거나, 그저 우연이 일어난 일이라고 하거나, 오버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정상인가? 참으로 혼란스럽다. "나는 가해자와 다른 남성이니깐 공격하는 것은 불합리해!"라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남성들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미안해 하고 반성해야 한다.

  • 정란수
  • 입력 2016.05.21 10:06
  • 수정 2017.05.22 14:12
ⓒ연합뉴스

여행작가로 생활하면서 나는 외국에 여행하는 기회가 많이 있다. 또한, 프로필 사진에서도 보이듯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착용할 수밖에는 없다. 여러 나라의 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중국 변방에 있는 애록(AEROK)이라는 나라에 가게 되었다. 몽골과 같은 초원이 많이 펼쳐져서인지 몰라도, 이 곳의 사람들은 시력이 참 좋다. 그래서일까? 안경 낀 사람들을 보는 게 신기했나보다. 그들은 안경을 낀 사람들이 지나가면 뚫어지게 그들을 쳐다보곤 한다. 그 노골적인 눈길이 정말 기분 나쁠 때가 있을 정도이다.

안경을 낀 것이 내 잘못도 아니다. 나는 원래부터 선천적으로 시력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안경을 착용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안경 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조롱거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게는 그러한 눈길이 불쾌했다.

혹자는 그렇게 불쾌하면 안경을 벗으라고 이야기한다. 렌즈를 착용하든지, 시력을 교정하라고 한다. 그런데 난 콘텍트렌즈가 불편하거니와, 안경이 나를 꾸며주는 하나의 아이템이라고 생각하여 굳이 안경을 벗을 필요를 못 느낀다. 그런데도 그곳의 사람들은 그러한 시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가 안경을 쓴 것이 오히려 잘못이라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만강(MANGANG)이라는 지역에서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무참히 사람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건 너무나 끔찍한 범죄였다. 가해자는 안경 쓴 자를 처음 본,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살해를 했다. 안경을 썼기 때문에 죽었고, 안경을 안 쓴 자는 살아남았다.

그 나라의 몇몇 사람들은 분노했다. 안경 낀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냐고, 이것이야말로 안경 쓴 자들의 혐오현상이라고 이야기들했다. 그러나, 많은 안경을 끼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가해한 것도 아닌데, 왜 나까지 이상한 사람으로 보냐고 이야기한다. 가해자만 잘못된 것이고, 이 사회를 그렇게 일반화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그곳의 사람들은 "거봐! 안경을 끼니 그런 일이 발생하지!"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집안 단속 잘 시키라고, 가족들도 안경을 끼고 돌아다니지 말라고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혼동스럽다. 안경을 끼고 돌아다니는 것이 문제인지, 안경을 낀 사람을 이상하게 조롱하고 혐오하는 사회가 문제인지.

이미 눈치를 차린 사람들도 있겠으나, 이는 내가 여행에서 겪은 실제 이야기가 아닌 가상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가상의 이야기가 가상의 장소인 애록(AEROK)의 반대인 KOREA, 만강(MANGANG)의 반대인 GANGNAM에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남녀의 상황을 '역지사지'할 수 있도록 쓰여진 소설은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가 쓴 "이갈리아의 딸들"이 대표적이다. 물론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과 같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설명할 때, 남녀를 바꾸어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나 극명한 남녀의 위치를 변경하는 것은 '나는 이 일에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 별 감흥을 주지를 못할 것이고, 여성증오 내지 여성혐오자들에게는 페미니즘이 아니냐는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애록(AEROK)이라는 가상의 국가는 아니지만, 여행작가로 활동하면서 꽤 많은 지역의 여행을 다니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는 여성이 다니는데 옷차림이 어떤지, 늦게 다녀도 되는지를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물론, 어떠한 나라는 우리보다 훨씬 남녀 불평등이나 차별, 억압이 심한 나라도 있다. 그래서 혹자는 더 보수적인 나라도 있으니 얼마나 우리나라는 나아졌느냐고 이야기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말도 안 되는 위로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 나라도 문제이지만 우리도 역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세월호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단지 하나의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그러한 문제를 만든 사회적인 병폐와 모순의 집합체 아니었던가. 이번 일이 단지 하나의 우연한 사고로 기억되기보다는, 지금의 분노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치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나도 결코 이 강남역 사건에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반성하는 부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 이번 일이 일어났기에, 이걸 공론화하고 분노하는 것이 비정상인가? 이번 일을 그냥 참아야 한다고 하거나,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하거나, 오버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정상인가? 참으로 혼란스럽다. "나는 가해자와 다른 남성이니깐 공격하는 것은 불합리해!"라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남성들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미안해 하고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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