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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농약사이다' 할머니에게 '무기징역' 선고한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다

ⓒ연합뉴스

"조각조각인 증거들을 하나로 모아놓으면 피고인을 범인으로 판단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한 마을 노인 6명이 죽거나 부상한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 피고인 박모(83) 할머니가 19일 열린 항소심에서도 1심과 똑같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박 할머니 변호인단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의 범죄사실을 완벽히 증명할 수 없다며 1심 판결의 부당성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인 대구고법 제1형사부(이범균 부장판사)는 증거 하나하나로는 피고인을 범인으로 단정 짓기에 다소 부족함이 있지만, 해당 증거들을 한 묶음으로 엮으면 박 할머니가 범인임을 가리킨다고 판단했다.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범죄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갖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두루 살펴 종합적인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에 기반을 둔 것이다.

재판부는 "변호인은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고 그중에는 경시할 수 없는 주장도 일부 있다"며 "하지만 그 가능성의 대부분은 상식과 경험칙, 과학적으로 밝힌 객관적 사실에 반한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변호인 측 주장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열거했다.

우선 1심 때부터 논란이 된 범행 동기에 대해 "피고인은 평소 화투를 치면서 피해자들과 다툼·갈등이 있었고 평소 억눌렸던 분노가 표출돼 범행을 저질렀다"며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피고인 입장에서는 살해 동기로 충분했다"고 말했다.

또 "많은 범죄는 이성적 계산 아래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지배하에 이뤄진다"며 "일반인이 볼 때 사소한 감정 문제이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임에도 왕왕 순간적인 분노 폭발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고 했다.

피고인이 마을회관 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사이다에 농약을 넣고 이를 피해 할머니들에게 마시게 한 사실이 없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범행 전날부터 당일까지 피고인은 언제든지 사이다에 농약을 넣을 수 있었다"며 "일부 피해자들과 같이 있던 상황이었어도 마을회관 내부 구조 등을 고려할 때 큰 어려움 없이 범행을 실행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특히 "농약은 고령인 피고인이 손쉽게 취득해 사용할 수 있다"며 " 만약 피해자들을 사망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경우라도 혼내주기에는 문제가 없었으므로 피고인에게는 아주 적합한 범행 수단이었다"고 했다.

이밖에 범행 당시 마을회관 안에 있던 할머니 7명 가운데 피고인만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점, 박 할머니 집 풀숲에서 농약 성분이 든 드링크제 병이 나온 점, 피고인 상·하의 및 전동휠체어, 지팡이 등 21곳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된 점, 사건 현장에 있으면서 구조 노력을 하지 않은 점 등도 모두 유죄 판단 근거로 채택했다.

게다가 항소심 재판과정 등에서 보인 박 할머니의 행동 역시 유죄 근거 가운데 하나로 언급했다.

재판부는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며 "그러나 피고인은 면회 온 가족들에게 억울하다는 하소연이나 진범이 잡혔는지에 대한 질문 등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 연령을 고려할 때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며 "하지만 범행 동기, 수단과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원심이 내린 무기징역 형이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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