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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끝까지 지켜보려고 했던 비극적인 노력 8가지

  • 박수진
  • 입력 2016.05.19 09:47
  • 수정 2016.10.15 07:41
ⓒ영화 'Take This Waltz'

이혼을 결정하기 전 마지막 수단까지 시도해 보는 건 가치있는 일이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유지시키는 게 불가능할 때도 있다. 허핑턴포스트 블로거들이 이혼을 결정하기 전에 했던 마지막 노력을 공유했다.

남편을 로맨틱한 저녁 식사에 초대했지만 전혀 로맨틱하지 않았다.

“당시의 남편과 나는 집을 팔았고, 딸과 나는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합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고 와인을 곁들인 맛있는 저녁을 차려 로맨틱한 저녁 시간을 보내려고 그를 초대했다. 식사하면서 그는 계속 ‘자신의 새 삶’에 대해 이야기했고, 우리 결혼이 잘 되지 않았다, 그게 전부 나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게 기억난다. ‘당신이 이것만 더 잘했더라도’, ‘당신이 군인의 아내라는 데 만족하고 커리어를 가지려고 하지만 않았더라도’. 그게 우리가 같이 한 마지막 식사였고 남편과 아내로서 가진 마지막 대화였다. 절대 잘 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저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 어너리 C.

아내에게 불륜을 계속해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다.

“나의 최후의 노력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첫째, 나는 아내의 불륜이 끝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불륜 이후에 결혼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둘째, 내 문제를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종속적이었고, 상대를 주로 돌보는 역할을 맡은 것을 억울하게 생각했다. 셋째, 나는 아내에게도 의지가 있다고 생각해서 깜짝 결혼식을 해서 다시 결혼 서약을 하려 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내에게 불륜을 계속하라고,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이 모든 노력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내가 점점 더 호구가 되었을 뿐이었다.” – 크리스 B.

결혼을 유지하려고 성형 수술을 고려해 보았다.

“내 결혼 생활의 마지막 몇 해는 다트를 계속 빗나가게 던지는 것과 비슷했다. 다트 하나가 나의 노력 하나를 상징한다. 세라피, 내 외모를 꾸민 것, 처음으로 손톱을 길게 꾸민 것. 나는 딸과 여행을 간 14일 동안 매일 러브 레터를 하루에 한 장씩 손으로 썼고, 우리 삶에서 의미가 있는 노래들로 플레이리스트도 만들었다. 심지어 성형 수술까지 고려해 보았다. 전혀 나답지 않은 것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주말에 여행을 가고, 저녁에는 테라스에서 긴 대화를 나누었다. 결혼한지 거의 20년이 지난 때였지만, 내가 충분히 바뀌지 않았다, 이 결혼을 지속하려면 내가 훨씬 더 많이 변해야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 결국 나는 내가 변해야 하지만, 그건 내 아이들과 내 자신을 위해서라고 결론내렸다. 나는 그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부탁하고 그와 이혼했다. 그 다트는 적중했다. 아이들을 가진 것을 제외하면 내가 평생 제일 잘한 일이 그것이다.” – 클라라 H.

남편에게 로맨틱한 여행을 같이 가자고 했다가 나 혼자 갔다.

“남편과 내가 보르네오로 일주일 동안 여행을 떠나기 전 날에 내 결혼이 끝났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일주일 내내 싸우고 있었다(사실은 4년 동안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데까지 이른 것은 그 주였다). 나는 우리의 여행이 결혼을 되살려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 잘 여행했다. 그러나 자정이 다가오는데 남편이 우리는 더 이상 부부가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은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에 나는 남편을 깨우고 같이 가자고 사정했다. 그는 거부했다. 나는 혼자 다녀왔다. 근사한 한 주였다. 새 친구들도 사귀었다. 나는 대중 교통을 타는 법을 익혔다. 스쿠버 다이빙을 가서 물고기 수천 마리가 내 주위에서 헤엄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다른 여행자들과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시고 신선한 해산물을 먹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끝이라고 말했다.” – 줄리 M.

결혼 카운셀링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우리는 결혼 카운셀링을 여러 번 시도했다. 세 번 정도다. 그리고 세 번째에 나는 무의미한 시도를 계속할 힘이 더 이상 없었다. 세 번째에는 다른 세라피스트를 찾아갔다. 나는 그 세라피스트가 전 날 밤에 읽은 책에 나온 세라피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었고 그녀가 시키는 것을 했다. 남편도 그랬다. 하지만 며칠 지나자 흐지부지 되었다. 그건 변화를 불러오는 게 아닌 그저 힘든 일에 불과했고, 나로선 내 전 남편이 내가 하는 노력을 몰라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도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 로라 L.

나는 아내에게 이혼하지 말고 함께 세계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는 출장을 다녀와 아내와 함께 바닥에 앉아서 말했다. ‘나는 유럽에 있는 동안 우리 결혼이 죽었다는 걸 깨달았어.’ 아내도 같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혼해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집을 팔고 아이들을 데리고 세계 여행을 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끝이었다. 우리는 23살 때 만났다. 이제 우리는 40세였다. 아무것도 그걸 고쳐놓을 수는 없었다. 헤어지는 게 서로에게 더 나았다. 우리는 헤어졌다.” – 애덤 G.

남편이 친구들에게 우리 결혼은 끝났다고 말하는 걸 우연히 들었지만 못 들은 척했다.

“어느 따뜻한 저녁, 그는 소리 죽여 말하고 있었다. 그게 신호였다. 우리 집 앞뜰에 앉아있는데 남편이 우리의 친구들에게 ‘패티는 우리가 앞으로 오래 같이 살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나는 그게 술에 취해 하는 말이길 바랐고 그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증거이자 내가 간과했던 부정적인 면은 정말 뻔했다. 그는 더 이상 내게 착하게 굴지 않았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 패티 B.

별거했다가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의 집으로 들어가 새로 시작해보려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남편 집에 들어갔다. 내 막내가 태어난 여름 대부분을 우리는 떨어져 지냈다. 남편이 새로 태어난 아기의 갓난아기 시절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게 나는 가슴 아팠다. 남편 역시 심란한 것 같았고, 달라지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주저하면서도 그가 샀던 새 집으로 들어갔고, 그가 달라지겠다는 약속을 지키길 기대했다. 그게 8월이었다. 가을 중순이 되었을 때 나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고 영영 떠났다. 그러나 모든 걸 잃은 건 아니다. 우리는 이제 평화롭게 양육을 분담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게 훨씬 더 손발이 잘 맞는다.” – 린지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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