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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이자 '난타' 제작자 송승환이 "온라인 공연? 생선회를 통조림에 넣어 팔 수 있냐"고 반문했다 (인터뷰)

그는 황반변성 혹은 망막색소변성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다.

연극 <더 드레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는 송승환. 사진 정동극장 제공
연극 <더 드레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는 송승환. 사진 정동극장 제공

그는 눈앞이 흐릿하다. 앞에 선 이의 얼굴도, 새옷으로 갈아있은 계절의 초롱초롱한 자태도 더는 눈에 담을 수 없다. 배우이자 제작자인 송승환(63). 1990년대 ‘난타’를 전 세계에 알렸고, 2년 전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막식을 화려하게 구성해 찬사를 받았던 그. 그는 시력을 잃었다. 모든 사물의 선이 아득하다.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 급격하게 나빠진 시력의 진단명은 황반변성 혹은 망막색소변성이었다. 의사마다 진단명은 달랐지만, 공통으로 하는 얘기는 ‘실명’이었다. “다행히 지난해 더는 나빠지지 않게 되었지만”, 갑자기 닥친 인생의 난관 앞에 당황했고, 절망했다. 하지만 무릎 꿇지 않았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다시 시작했다. 그는 곧 무대에 선다. 연극 <더 드레서>(11월28일~2021년 1월3일)에서 주인공 늙은 배우 ‘선생님(Sir)’을 연기한다. 공연장인 정동극장에서 그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처연하게 떨어지는 낙엽들 사이로 그가 나타났다. “제가 중심 시력의 시각세포가 거의 다 죽었어요. 주변 시력은 살아 있어서 형체를 겨우 알아보는 정도죠. 문제는 글씨가 전혀 안 보인다는 겁니다.” 그는 담담했다. 아이패드를 꺼낸 그는 넷플릿스 영화 한 편을 골랐다. 바짝 얼굴을 들이밀면서 화면 속 작은 점 하나를 클릭한다. “자, 이렇게 하면 들려요. 주인공의 동작, 대사 등이 말이죠.” 그가 영화를 ‘듣는다.’

연극 <더 드레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는 송승환. 사진 정동극장 제공
연극 <더 드레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는 송승환. 사진 정동극장 제공

― 시력을 잃어가면서 충격이 컸겠다.

“이젠 안 보이는 거에 익숙해졌다. 티티에스(TTS·text-to-speech·텍스트 음성변환기술) 같은 기술에 도움을 받는다. 처음엔 휴대전화 문자도 안보이니까 엄청 당황했다. 한자씩 커다랗게 키워 봤는데, 읽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 스마트폰의 보이스오버(대사, 문자, 메일 등을 목소리로만 들리도록 하는 일) 기능을 알게 됐다. 주변엔 눈 좋은 사람만 있으니 처음엔 몰랐다. 피디에프 파일 읽어주는 앱도 있다. 연극 대본도 이 앱을 통해 듣고 다 외웠다.”

<더 드레서>의 공연시간은 2시간. 대본은 100장이 넘는다. 그는 듣고 또 들었다. 행여 자신이 동료 배우들에게 폐가 될까 싶어 첫 대본 연습 날 100장을 다 외워갔다. 하지만 “유일한 취미인” ‘영화 보기’는 도무지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자막이 전혀 보이지 않는 건 형벌과 같았다. 그는 길을 찾았다. 케이티(KT) 관계자를 만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한국어 더빙을 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더빙 영화’라는 장르를 만들고 있긴 하나 그 수가 적었다고 했다.” 답답했다.

―사실 시력이 이 정도면 ‘영화 보기’를 포기할 만한데.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그럴 순 없었다. 무작정 넷플릭스 한국 측을 찾아갔다. 티티에스 기술 얘기를 했다. 미국에 있는 ‘넷플릭스 프로덕트 팀’에 문의하더라. 이미 준비 중이었는데 내 문의가 계기가 되어 서비스 출시를 당겼다. 우리 오티티(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실감했나?

“시각장애인이 돼서 알았다. 넷플릭스 서비스 같은 게 있으면 적어도 유명한 외화의 스토리 정도는 알 수 있다. ‘배우가 뛴다. 전화를 받는다.’ 같은 동작도 들어 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백내장, 녹내장 등 눈과 관련한 질환을 앓는 이가 많다. 노년층에 접어든 내 친구만 해도 약해진 시력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마트 가전’ 홍보하던데 장애인을 위한 기능이 있어야 진짜 ‘스마트 가전’이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크다”

―우리는 아이티 강국이다. 예전 휠체어 타는 이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홍보하는 외국 회사의 영상을 본 적 있다. 기술이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야지, 그저 자본을 축적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 의견) 맞는다. 시력이 떨어지는 초반에 한 장애인복지관에 찾아가 책 보는 법을 물었다. 자세히 알려주더라. 하지만 영화 자막 보는 법은 없다고 하더라.”

―인생의 한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이 있다. 지금 그런 상황 아닌가.
“청각이 예민해졌다. 예전보다 다른 배우의 대사를 더 귀담아듣는다. 보는 것하고는 완전히 다른 걸 느낀다. 배우는 서로 교감하면서 연기를 하는데, 보통 상대방의 눈빛을 보면서 나눈다. 나는 눈빛을 못 보지만, 상대방의 대사를 더 예민하게 듣게 되면서 다른 느낌을 알게 됐다. 눈이 나빠진 후 많이 겸손해졌다. 고마운 게 많아졌다. 나뭇잎의 모양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초록색이 노란색으로 바뀌는 건 보인다. 정말 반갑고 고맙다. 이렇게 감사하게 된 건 또 다른 축복이다.”

―어쩌면 시력 감소는 노화가 원인일 수 있다. 늙는다는 거, 곧 우리에게 닥칠 일이다. 노화나 늙음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나?

“물론이다. <더 드레서>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무대에서 늙어가는 배우다. 이 작품에 공감하는 바가 컸다. 눈이 나빠지면서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한 1년 겪은 다음 더는 나빠지지 않게 되면서 역으로 늙는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늙으면 불편해지는 게 많을 것이다. 잘 견딜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뭐 안 보여도 살 만하네.’ 이렇게 말이다. 문득문득 답답하지만, 기술 덕택에 못 견딜 정도로 불편하지 않고. ‘늙으면 또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한다.”

연극 <더 드레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는 송승환. 사진 정동극장 제공
연극 <더 드레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는 송승환. 사진 정동극장 제공

<더 드레서>는 영국 작가 로날드 하우드의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다. 전쟁이 한창인 때 한 지방 극장에 올라가는 ‘리어왕’의 주인공 ‘선생님’과 그의 의상 담당자 노먼 얘기다. ‘선생님’은 늙은 배우다. 우리는 늙기 시작하면 신체의 여러 기능이 제구실을 못 한다. 부품이 하나둘씩 멈추면 결국은 버려지는 기계처럼 우리도 그런 날이 올까 두렵다. 하지만 그는 “남아 있는 기능에 감사하면서 사는 게 중요하다. 아직 내가 냄새는 맡을 수 있네. 뛰지는 못해도 걸을 수 있네. 빨리는 못 걸어도 갈 수는 있네. 이런 생각 하면 늙는 대로 살 만하다. 없어진 것을 아쉬워하지 말고 아직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면 된다”고 말한다.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면 과거 난타 공연의 세계적인 성공이 분기점이 될 거 같다.

“20~30대 한참 스타 소리 듣던 시절 어느 날 무작정 뉴욕에 가서 3년 6개월을 살았다. 1985년이었다. 그 기간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 서울과 문화적인 차이가 컸다. 충격이었다. 다 새로운 거였다. 그 자극 때문에 난타도 만들 수 있었다. 많이 배우는 게 큰 재산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용기 낸 거다.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다. 귀국해 뮤지컬 등 제작 일을 하게 된 분기점이다. 누구나 잠시 인생에서 쉴 틈을 갖는 게 좋다.”

―제작자, 배우였고, 지금은 피엠시(PMC)프로덕션 대표이자 교수다. 다른 이들은 한 가지 일을 하기도 벅찬데. 이중 당신의 진짜 얼굴은?

“나는 배우다. 인생 3막이 시작됐다. 인생 1막은 청소년기와 20~30대 때였는데, 영화와 연극의 주인공을 했고, 2막은 주로 제작자와 평창 겨울올림픽 감독 등으로 활동했다면 늙어가는 지금은 배우로 살 것이다.”

―그 많은 다양한 일을 잘해냈는데, 비결이 있나?
“재미와 몰입. 재미없는 건 안 한다. 재미가 있어야 그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재미없는 일에 몰입을 어떻게 하나. 연극 작업하는 게 재밌다. 시력도 안 좋으면서, 안 보이는 눈 부릅뜨고 왜 하느냐 싶지만, 재밌다. 일을 선택하는 기준은 재미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공연계가 어렵다. 극장이 사라질 수도 있다. 다른 분야는 적응하기 위해 온라인 부분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세우기 바쁘다.

“공연은 대체 불가능하다. 공연을 온라인으로 중계한다? 그런 얘기 하는 이에게 생선회를 통조림에 넣어서 팔 수 있냐고 반문한다. 공연은 현장성이 중요하다.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 코로나19도 언젠가 끝날 것이다. 여행을 아무리 증강현실이나 스리디(3D)로 본다고 내가 여행 가서 느낀 그 공기와 냄새, 사람들의 체취, 그 나라의 느낌을 어떻게 재생할 수 있겠나.”

―연극 연습 얘기할 때 눈이 반짝거린다. 여전히 젊다. 앞으로 계획은?

“해왔던 것 쭉 할 생각이다. 이미 공연한 적 있는 연극도 새로운 배역을 맡으면 새롭다. 할 때마다 동료도 바뀌니 더 그렇다.”

하던 일을 하겠다는 그지만, 도전은 그의 인생에 영원한 문패다. 그는 최근 유튜브 제작에 나섰다. 11월 중 채널 공개할 예정인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엔 이순재, 오현경, 김영옥 등 우리를 웃고 울게 한 ‘늙은 배우’들이 등장한다. 인터뷰이가 된 그들에게 마이크를 건넨 이는 송승환. “그들의 젊은 시절 얘기, 방송 등에서 하지 못한 진솔한 이야기 등을 들을 수 있다. 일종의 아카이브다.” 늙음의 문턱에 선 배우가 늙어버린 배우들을 인터뷰하는 영상엔 뭐가 담겼을까.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는 그의 생각이 영상에 스며있을까.

1965년 <한국방송>(KBS) 어린이 프로그램 <은방울과 차돌이>에서 차돌이로 데뷔한 송승환. 50여년 ‘여러 사람’을 연기한 그가 꼽는 최고의 배역은 <에쿠우스>의 앨런과 <유리동물원>의 톰. 눈부시게 빛나는 청춘의 분열과 방황이 그대로 스며든 듯해 잊지 못한다는 그가 이제 초로에 들어섰다. 앞이 아득하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오히려 욕심이 생긴다”는 그가 이제 인생 3막을 열었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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