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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행복한 모습을 보면, 내가 행복해진다" 찐 머글들은 평생 알지 못한다는 신비한 덕후의 세계를 알려주마

덕질하기 가장 좋은 나이란 없다.

 

 ″보고 또 보고,  돌려보고, 또 돌려보고. 내가 그럴 줄은 몰랐어. 이게 뭐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각축전(경연) 벌일 때 누가 1등 했으면 하는 꽂힌 건 있잖아. 임영웅이 1등 못 하면 어쩌나 가슴이 뛰는데, 이게 뭐지? 나한테 이런 게 있었나? 그런 생각을 했고. 무아지경으로 들어갔었어”

덕후라면 모두가 이해할만한 생생한 ‘입덕’(새로운 분야의 덕후가 되었다는 뜻)썰. 연예계 대표 ‘영웅시대’(임영웅 공식 팬클럽)인 배우 김영옥이 한 말이다. 1937년생인 그는 임영웅의 고향, 생일, 키와 같은 기본 프로필에서부터 좋아하는 음식, TV 출연 방송과 유튜브 영상들까지 숙지하고 있다. 임영웅의 시그니처 구호인 ‘건행’을 외치는 건 필수다.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TV조선

덕질하기 가장 좋은 나이란 없다

일본어 오타쿠オタク(한국식 발음 ‘오덕후’)에서 파생된 단어인 덕질은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해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을 말한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향한 팬 활동도 덕질이라는 단어로 통용된다.

TV조선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은 중장년층에게 ‘덕질‘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눈뜨게 해줬다. 이들은 트로트 가수의 무대를 보며 설레하고 젊은 층과 다름없이 열정적으로 응원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PD저널에 “과거에는 ‘덕질’이 10대, 20대만 하는 소수 특이한 행동으로 받아들여 사회적 인식이 안 좋았다. 이제는 중년층을 넘어 노년층까지도 열성적인 팬 문화에 공감하며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KBS2 '주접이 풍년'
KBS2 '주접이 풍년' ⓒKBS2

이와 관련한 예능 프로그램도 생겼다. KBS2 ‘팬심자랑대회 주접이 풍년’은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덕질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주접단’을 조명했다.

지난 1월 27일 임영웅 편에서는 방송을 통해 ‘덕밍아웃’(덕질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한 중년 남성의 사연이 공개됐다. 닉네임이 ‘피터분당’인 그는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열성 팬 활동을 숨겨왔지만, 임영웅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출연을 결정했다. 

KBS2 '주접이 풍년'
KBS2 '주접이 풍년' ⓒKBS2

특히 ‘피터분당’이 방문한 임영웅 팬덤 전문학원 ‘참된 덕후 교실’이 화제가 됐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이곳은 임영웅 초보 팬들에게 응원 방법 등을 자발적으로 교육하면서 소통하는 공간이다. ‘피터분당’은 꼼꼼하게 필기하며 시상식 투표 방법을 배웠다. 

‘참된 덕후 교실’은 평일반과 주말반으로 나뉘어 운영되며 예약제로 교육 신청을 받는다. 운영자는 “아직도 응원 방법이 서툴거나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언제든지 신청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며 “꼭 교육이 아니더라도 소통하실 분들의 방문도 환영한다”고 전했다. 이만큼 사심 없고 서열 없는 공동체가 어디 있을까. 모든 게 ‘팬심’이라는 마음 하나로 가능한 일이다. 

참된덕후교실
참된덕후교실 ⓒ영웅시대밴드(나눔모임)

2021년 2월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표한 ‘트로트 열풍으로 보는 오팔 세대의 부상과 팬덤 경제’에 따르면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오팔(OPAL:‘Old People with Active Lives’) 세대의 팬덤은 결집력과 행동력이 매우 강하며 활동 빈도도 높고 1020세대와 달리 좀 더 관대하게 스타를 바라보기 때문에 지속성이 긴 편이다.

또한 보고서는 “높은 디지털 향학열로 디지털 기반의 활동과 소비에도 MZ세대와 유사한 행태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웅시대’가 꾸준히 하는 팬 활동은 음원 스트리밍과 네이버TV·유튜브 영상 스트리밍이다. 멜론을 비롯한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임영웅 노래가 절대적으로 상위권을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덕후의 하루

그룹 NCT
그룹 NCT ⓒSM엔터테인먼트

가수를 덕질하는 사람에게 ‘스밍’(스트리밍의 준말)은 필수다. 음원 재생 횟수는 차트에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순위뿐 아니라 음악 방송, 연말 시상식 등에도 영향을 끼친다. ‘피터분당’ 역시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스밍’을 한 후, 임영웅 관련 기사, 팬카페, 유튜브를 체크한다고 말했다. 

아이돌 덕후인 나도 이 루틴을 잘 이해하고 있다. 나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새 앨범이 나오면 액정 깨진 공기계와 지금 쓰는 휴대폰, 아이패드까지 총 세 개를 ‘스밍’ 돌리는 데 이용한다. 내 가수에게 좋은 성적을 안겨주고 싶어서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신곡 홍보도 자발적으로 나선다. 더 많은 사람이 아티스트의 활동을 알아주고 노래를 들어줬으면 한다. 이미 내 영업과 주접에 지친 친구들에겐 존댓말로 정중히(?) 곡을 알린다. “대박 소식이 있다”라는 밑밥은 옵션이다. 

머글들에게 '부탁은 정중하게' 친구들과의 카톡방에서 노래 홍보하기.
머글들에게 '부탁은 정중하게' 친구들과의 카톡방에서 노래 홍보하기. ⓒ카카오톡

사회적 체면을 내려놓고 공개한 카카오톡 캡처에 나와 있듯,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엔시티(NCT)다. 2년 전, 유튜브 알고리즘 세계에서 이들을 우연히 마주치고 말았다. 세상에. 무대 천재인데 귀엽고 재밌기까지 하다고? 대단한 사람들을 몰라봤던 내 과거가 통탄스러웠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동안은 엔시티 직캠 영상과 소속사 자체 제작 콘텐츠를 보며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웃음기 쫙 빠진 내 하루 중 제일 활발하고 기력이 넘칠 때가 바로 ‘덕질’할 때다. 직장인인 나에게 진정한 ‘덕생’이 펼쳐지는 시간은 퇴근길. 오늘 무슨 소식과 사진이 올라왔는지, 내가 돈 써야 하는 곳을 빼먹진 않았는지 덕질용 트위터 스크롤을 끊임없이 내린다. 만 원짜리 티셔츠도 고민하다가 안 사는 내가 굿즈는 고민 없이 결제한다. 이 맛에 돈 버는구나 싶다.   

자료사진
자료사진 ⓒJon Hicks via Getty Images

자기 전 침대에 누워 그날 올라온 엔시티 콘텐츠를 보는 게 가장 큰 힐링이다. “찢었다”, “미친 거 아니야?”, “귀여워” 같은 말을 격하게 내뱉으면서 앓다 보면 새벽 1시가 훌쩍 넘는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간신히 눈을 감고, 아침에 겨우 일어나 트위터를 복습한다. 이렇게 덕후는 하루에 눈 뜨는 순간부터 감을 때까지 좋아하는 가수와 함께한다. 

 

이토록 누군가의 행복을 바랄 수 있다니

덕질을 하다가 문득 ‘내 행복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이토록 바란 적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행복해하는 최애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기운이 난다. 대화도 직접 나눠본 적 없는 그가 더 성공했으면 좋겠고 오래 사랑받길 바란다. 최애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에 평생 사랑만 주겠노라 굳게 다짐한다. 참 신비하다. 그저 응원하고 좋아했을 뿐인데, 자꾸만 더 큰 행복이 되어서 돌아온다.

유튜브 '고막메이트'
유튜브 '고막메이트' ⓒYoutube
유튜브 '고막메이트'
유튜브 '고막메이트' ⓒYoutube

밴드 데이브레이크의 덕후인 작사가 김이나는 ‘팬심’을 “다양한 사랑 중에 가장 판타지 같은, 제일 순수한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김이나는 “누군가 행복한 모습을 보면, 내가 행복해지는 게 팬심이지 않나. 그 의미는 사실 엄청난 것 같다”며 “팬들의 입장에서는 가수의 찐 웃음을 보는 게 제일 좋다. 그거 하나가 내 하루를 엄청 생기있게 만들어준다”고 했다.

정말로 최애의 웃는 모습은 이 세상 어떤 자양강장제, 종합비타민, 피로회복제보다 효과가 확실하다. 지쳐서 눈에 초점을 잃고 있다가도, 동공이 확장되고 저절로 광대가 승천한다. 

위의 글을 쭉 읽고 갸우뚱했다면 덕후가 아닌 일반인, ‘머글’일 확률이 높다. 동시에 “아이돌이 밥 먹여주느냐”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덕질만큼 기운을 주는 게 있을까. 나 살자고 하는 일이기에 밥 먹고 살아갈 힘을 주는 건 확실하다. 

비타500 / 좋아하는 스타의 활동은 팬들에게 비타민이 된다. 
비타500 / 좋아하는 스타의 활동은 팬들에게 비타민이 된다.  ⓒ광동제약

이미 ‘덕밍아웃’ 했으니 끝까지 덕후의 본분을 다하려 한다. SM 스테이션은 소속 아티스트 엔시티 멤버들의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이는 ‘엔시티 랩’(NCT LAB)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난 2월 4일 마크가 첫 솔로곡 ‘차일드’(Child)를 발표하며 포문을 열었다.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사춘기에 대한 곡으로 마크만의 감성이 담긴 진솔한 가사와 멜로디가 큰 울림을 준다. 마크를 ‘고등래퍼’에 출연했던 아이돌로만 기억하고 있었다면 섬세한 보컬 톤에 깜짝 놀랄 것이다. 노래는 아래 영상에서 들어볼 수 있다. 꼭 한 번 클릭 해보시길.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팬들을 위해 이런 명곡을 선물하다니, 마크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 게 분명하다.)

이소윤 기자 : soyoon.lee@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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