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제19화 LGBT|글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성소수자의 삶을 말했을 뿐인데, 갑자기 방송 하차 통보를 받았다. 기독교단체와 학부모단체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항의한 뒤였다. 홍석천 얘기일까? 아니다. 2018년, 양성애자임을 밝혔다는 이유로 교육방송(EBS) <까칠남녀>를 하차해야 했던 은하선 작가 얘기다. 홍석천의 커밍아웃 이후 20년이 흘렀건만, 한국은 변하지 않았다고 실망할 법 하다.
여기 상전벽해가 뭔지 보여주는 기사가 있다. <한겨레>에서 1995년 2월에 쓴 기사다.
“그는 여장남자, 이른바 ‘게이’였다. 게이는 ‘성적으로 불완전한 남자’로 정의된다. 여자로 꾸미면 진짜 여자처럼 보인다. 게이는 흔히 ‘호모’라고 부르는 남성 동성연애자와는 다르다. 호모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면 게이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 같은 남자다”
그랬다. <한겨레>도 한때는 ‘빻은 말 대잔치’를 할 때가 있었다. 이제 <한겨레>는 그 어느 곳보다 성소수자 인권을 중시하는 매체다. 성소수자들은,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한겨레>아카이브가 LGBT 역사를 돌아봤다.
20년 전 홍석천의 커밍아웃과 방송아웃 : 만연한 호모포비아
2000년. 새천년을 열었으나 21세기는 아니던 시기. 여전히 20세기이면서 Y2K 바이러스와 종말론이 횡행하던 시기. 동성애를 ‘정신질환’ 또는 ‘성도착증’으로 여기던 시기. 그해, 홍석천이 커밍아웃했다. 국내 연예인으로는 최초였다. <일간스포츠>는 1면 헤드라인을 이렇게 뽑았다. “나는 호모다” 자극적일지언정 적절한 표현은 아니었다. 경멸과 비하의 뜻으로 공공연히 쓰이던 ‘호모’. 그걸 헤드라인으로 당당히 내거는 사회에서 성소수자 혐오는 얼마나 숨 쉬듯 쉬웠을까.
홍석천이 나오는 시트콤을 보고 자란 1인으로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뒤범벅된 그 순간을 기억한다. 방송 뉴스와 신문에는 그가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거나 우는 장면뿐이었고, 그게 그가 커밍아웃하려고 만든 1시간30분짜리 영상 중 고작 1분도 안 되는 순간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이후 그는 오래 보이지 않았다. 커밍아웃한 대가로 ‘아웃’당했으니까. 문화방송(MBC) <뽀뽀뽀>에서도, 한국방송(KB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하루아침에 잘렸다. 2000년 10월 <한겨레21>이 말했듯 “그는 ‘미워 죽겠어!’라는 쁘아종 특유의 앙탈 한번 못 부리고 고분고분하게 방송사를 나와야 했다.”
동성애자가 소비되는 방식 : ‘느끼하거나, 무섭거나’
그럴 만도 했다. 한국은 1999년 말까지만 해도 교과서에 이런 문구를 넣는 게 예사로운 사회였다. “에이즈, 동성연애가 늘면서 성도덕 문란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윤리’) “동성 간 사랑이나 성행위는 에이즈 등 부작용을 일으키므로 건전한 성의식과 성역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교련’)
<한겨레>로 살펴본 ‘교육용 문구’ 중 제일 골 때리는 건 이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성폭력·성도착증 등을 성적 문제행동으로 본다.”(서울시교육청 성교육 교재 ‘성과 행복’) 세상에, 3가지의 층위가 심하게 다른데 어떻게 동일한 카테고리에 병렬식으로 욱여넣었을까? 그것도 동성애와 성폭력을? 하나는 타인에게 완벽히 무해한 행위이고 하나는 타인의 인격을 말살하는 범죄인데, 그게 분간이 안 되다니. 편견은 정녕 무지함과 무심함의 산물일까.
타인에게 무지하거나 무심하면서 무관용 하기란 껌을 씹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교과서만 그 쉬운 일을 하진 않았다. 2000년 8월, <씨네21>은 대중매체가 남성 동성애자를 다루는 방식을 말하며 이런 분석을 내놨다. “느끼하거나 무섭거나.” 진심 뼈 때리는 분석이다. 생각해보라. 그동안 웃음을 유발한답시고 ‘여성스러운’ 말투를 연출하는 남성 캐릭터가 얼마나 많았으며, “예의 그 흐린 창과 코맹맹이 증언으로” 동성애자들을 등장시킨 심층 추적 프로그램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이를테면 <개그콘서트>에서 ‘호모’로 불린 ‘느끼남’은 ‘계집애 같다’고 늘 조롱당했고, 한국방송 <추적 60분>은 2000년 7월 방영분에서 “동성애자를 여전히 에이즈 확산의 원흉으로 지목”하는 연출로 누리집(홈페이지)이 몸살을 앓았다. ‘동성애자=정신이상자’, ‘신이 만든 불량품’, ‘엽기, 변태 동성애자 때려죽이자’ 같은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 게시물이 쇄도했다. 기사를 쓴 신윤동욱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코미디 프로그램과 추적 다큐 프로그램. 이 두 장르를 통해 동성애자들은 극단적으로 희화화되거나 위험집단으로 타자화되었다.”
LGBT운동의 태동 : ‘변태’도 ‘호모’도 아닌 ‘게이’라는 자긍심
변화를 이끄는 균열은 서서히 생긴다. 성소수자끼리 자발적으로 만든 커뮤니티가 그 균열의 시작이었다. 남성 동성애자 모임 ‘친구사이’, 여성 동성애자 모임이자 현재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전신 ‘끼리끼리’, 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서(생물학적으로 반대인 성의 외모나 복장을 취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 자신을 반대 성으로 느끼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트랜스젠더와 다르다)의 모임 ‘아니마’. 1990년대 초부터 연대한 이들이 한국의 엘지비티(LGBT: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을 태동시킨 주체였다. ‘숨은 존재’이던 성소수자들이 처음으로 가시화되었고, 성소수자는 비로소 ‘성소수자 친구’를 갖게 되었다.
엘지비티 운동은 남성 동성애자들의 인식을 가장 크게 바꾸어놓았다. 2000년 10월, 홍석천이 커밍아웃한 직후 <한겨레>와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남성 동성애자들은 ‘우린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일 뿐’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더 이상 자신들이 ‘변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호모’라는 멸칭 대신 ‘게이’라는 자긍심의 언어가 자리 잡은 것도 이즈음이다.
“이전 세대가 대부분 신분을 숨긴 채 주로 성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슥한 밤거리로 스며들었다면, 90년대 중반 공동체로 편입된 동성애자들은 서로 실명과 집, 전화번호를 교환한 첫번째 세대다. 이전 세대가 일상과 동성애적 삶의 분열을 감내하고 살았다면, 70년대생 동성애자는 그 고통을 적극 해소하려 했다. 이런 현상은 ‘커밍아웃’ 욕구의 증가로 나타났다.” 그렇게 1995년 최초의 커밍아웃이 있었고, 1999년 영화감독 이송희일이, 2000년 배우 홍석천이, 2006년 영화제작자이자 감독 김조광수 등이 커밍아웃했다.
하리수, 최한빛 등 트랜스젠더 가시화 : 이들을 둘러싼 논쟁
비슷한 시기, 트랜스젠더도 가시화되었다. 처음은 하리수였고, 다음은 최한빛이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생물학적 성을 바꾼 하리수는 2001년 4월, 어느 화장품 광고로 화제가 된 뒤 가수로 활동했다. 최한빛은 원래 무용수였는데, ‘의료조치’(성전환수술) 뒤 슈퍼모델 대회(2009)에 출전하면서 유명해졌다. 둘 다 트랜스여성, 엠티에프(MTF. male-to-female: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정체성을 가진 사람)였고, 화려했으며, ‘아름다웠다’.
바로 이 지점에서 트랜스젠더는 오늘날 논쟁적인 존재다. 미디어가 재현하는 트랜스여성은 대부분 ‘예쁜’ 외모에 ‘여성스러운’ 스타일인데, 이게 트랜스여성을 포함한 모든 여성에 대한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이들은 트랜스여성이 ‘여성성’을 강조하려고 행하는 ‘꾸밈노동’이 성적 대상화와 ‘코르셋’에서 벗어나려는 여성운동에 반한다고 말한다. 2018년 1월,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가 <한겨레21>에 쓴 칼럼을 보자.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래디컬 페미니즘, 일명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는 트랜스젠더가 성별 구분을 무너뜨리거나 교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하리수처럼 ‘과잉 성애화’된 몸은 여성다운 외모의 전형을 더 강하게 규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랜스여성인 박한희 변호사의 경우, 과잉 성애화와는 거리가 멀다. 실제 트랜스젠더 외양은 굉장히 다양해서, 성별 구분을 강화한다고 단정하기 힘들다.”
MTF는 많은데 FTM은 없는 이유
유명한 트랜스여성은 꽤 많다. 하리수와 최한빛부터 변호사 박한희, 소설가 김비, 최근 육군 강제전역 판정을 받은 변희수 전 하사까지. 유튜버까지 치면 더 많다. 장추자, 미미, 파니…. 트랜스남성(FTM. female-to-male: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남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어떤가? ‘논바이너리(Non-binary: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을 가진 사람) 트랜스젠더’는? 글쎄, 떠오르는 이가 없다.
20~30대 트랜스남성 5명을 심층 인터뷰한 기사에서 희미하게나마 답을 찾아보았다. 2007년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트랜스남성이 ‘들킬 위험’은 그 어느 경우보다 위협적이고 치명적이다.” 트랜스남성은 ‘보통 한국남자’의 남성우월주의 문화와 위계를 학습하면 생각보다 손쉽게 ‘남성 집단’에 소속될 수 있지만, 혐오와 낙인의 두려움이 절대적이라 트랜스여성과 달리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남성들은 “사우나, 화장실, 군대 등에서 요구되는 몸의 공통성과 관련된 ‘허들’이 너무 높다. (중략) 서로의 신체를 수시로 확인하려는 남성문화 속에 ‘들킬 위험’은 그만큼 더 높아진다.”
트랜스젠더는 성소수자 중에도 가장 심한 편견에 시달리며, 사회적으로 배척당하는 존재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는 모든 성소수자 중 사회경제적 상황도 가장 열악하다. 대중은 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서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성소수자 모임이 대개 동성애자 중심이다 보니 성소수자 내부에서도 주변화되지 않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성소수자 중에 성소수자다. 트랜스젠더는, 그들의 인권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의 이중고 : 레즈비언과 바이섹슈얼은 어디에?
‘레즈비언’을 한겨레 데이터베이스(DB)에 검색하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기사가 뜬다. 문제는 대부분의 기사가 레즈비언 영화/드라마 후기, 퀴어영화제 관람기, 미국이나 영국, 일본, 스위스 같은 외국 사례라는 점이다. 국내 사례가 없어도 너무 없다. 무한클릭질에 지쳐 검색어를 바꿔봤다. ‘레즈비언+커밍아웃’. 겨우 하나 찾았나 싶었는데, 이게 웬일. 제목이 ‘‘아우팅’의 괴로움을 아십니까’다. ‘커밍아웃’이 키워드인데, 주제가 ‘아우팅’인 아이러니. 부제는 ‘가부장적 정서와 이성애주의의 벽에 짓눌려 폭력 앞에 무력한 레즈비언들’이다. 2007년 7월, <한겨레21>에서 썼다. 레즈비언들이 가부장 정서와 이성애중심주의 이중고 때문에 아우팅 공포가 극심하다는 내용의 기사다. 여성 동성애자들이 상대적으로 커밍아웃을 안 하는, 아니 못 하는 이유도 이 ‘이중고’에 있으리라.
양성애자(바이섹슈얼)도 사정은 비슷하다. 엘지비티 가운데 ‘양성애자’ 또는 ‘바이섹슈얼’로 검색했을 때 뜨는 기사 개수가 제일 적다. 현격한 차이로 그렇다. 성소수자 중에 그 수가 가장 적다는 사실 때문일까.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오간다는 시선 때문에 입지를 다지지 못해서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양성애자들의 목소리가 크지 않고, 그들이 성소수자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배제되어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의구심과 추론을 잠시 뒤로하고 레즈비언 기사를 ‘영끌’해보았다. 한국에서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은 대학생 정현수씨였다. 그는 서울대 음대 재학생이자 서울대동성애자모임에서 인권운동 하는 이였다. 커밍아웃은 1996년 4월에 했다. 2008년 4월에는 최현숙 진보신당 성정치기획단장이 18대 총선에 출마했다. 결과는 낙선이었지만,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가 공직선거에 출마하기는 처음이라 숱한 화제가 되었다. 가장 최근인 2015년 11월, 서울대에서 첫 성소수자 총학생회장이 탄생했다. 김보미씨는 선거 전부터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뒤 성소수자 문제를 공론화했으며, 86.8%의 찬성표를 얻어 제58대 총학생회장에 올랐다.
정현수, 최현숙, 김보미. 레즈비언 실명 인터뷰는 이들 말고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트랜스여성이 이들보다 많았다. 레즈비언의 일상과 현실을 생생히 보여주는 르포나 인터뷰 기사에 등장하는 이들도 신원을 밝히진 않았다. 1998년 7월, 서울 신촌 여성전용카페에서 ‘보지음악다방’을 열고 “다수자가 소수자를 억압하지 않고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부르짖던 레즈비언들은, 그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국내에선 홍석천과 김조광수가, 국외에선 조디 포스터와 드루 배리모어가 커밍아웃하는 동안 한국의 레즈비언들이 여전히 ‘숨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커밍아웃을 종용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런 말에 마음이 무거울 뿐이다. “여성이면서 레즈비언이기에 저는 이 사회에서 이중의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피억압자이자 소수자인 셈이죠.” 22년 전, ‘보지음악다방’에 참여한 레즈비언 리나씨가 <한겨레>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2년. 강산이 두번 바뀌었을 세월. 엘지비티라는 말이 만들어지고 알려진 세월. 엘지비티에서 맨 앞에 있는 레즈비언의 인권은, 그들의 삶은 얼마나 향상되었을까.
LGBT에서 LGBTAIQ로 : ‘침묵은 곧 죽음이다’
다시 홍석천으로 돌아가 보자. 그의 커밍아웃 이후로 한국 사회는 변했다. 정말인가? 절반은 진실, 절반은 거짓이다. 웬 멍멍이 풀 뜯어먹는 소리냐고? 실제로 멍멍이는 풀을 뜯어먹을 뿐 아니라 여린 새싹을 좋아한다. 한국은 변했을 뿐 아니라 불변하기도 했다.
수많은 이들의 힘겨운 노력과 투쟁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침실에 갇혀 있던 성소수자들이 광장으로 나왔으며, 퀴어축제에 가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즐기는 그들이 보인다. 사회적 집단으로서 성소수자가 부재하던 시절은 지났다. 그들은 몇년 전부터 ‘엘지비티’의 외연도 넓혀가는 중이다. 기존의 ‘엘지비티’에 A(Asexual: 무성애자), I(Intersex: 중성 또는 간성), Q(Questionary: 성적 지향 혹은 성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를 더해 ‘LGBTAIQ+’로 명명한다. 궁극적으로 이성애 중심 세상이 성소수자를 구분하는 것에 불과한 이 모든 경계가 흐려지길 바라면서.
엘지비티 운동의 역사가 게이 중심으로 흘러온 점, 동성결혼이 전 지구적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동성혼은커녕 사실혼조차 인정되지 않는 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여전히 불투명한 점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늘 그랬듯, 시간은 진격하고 쟁취하는 자의 편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더 많이 떠들고, 더 많이 나대는 수밖에. ‘침묵은 곧 죽음.’ 퀴어축제의 슬로건이다.◈
▶19화 해설자인 강나연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입니다. <엠비엔>(MBN) 사회부에 취재기자로 입사해 법조 및 중앙부처들을 출입했고, <한겨레> ESC팀에서 객원기자로 일하며 라이프/젠더 기사를 썼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다양한 젠더 이슈이며, 문학과 심리학을 좋아합니다. 맥주는 더 좋아합니다.
▶팩트스토리는 전문직, 실화 소재 웹소설·웹툰 및 르포 기획사입니다. 저널리즘 바깥으로 확장하는 실화를 추구합니다.
<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기사와 사진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시의성 있는 과거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한번도 소개된 적 없는 비컷 사진 필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주간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