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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9일 15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10월 19일 15시 30분 KST

“쌓여있는 앨범들 보니 ‘지구야 미안해'" 지속가능한 케이팝 '덕질' 위해 이제 엔터사가 나설 때다 (케이팝포플래닛 인터뷰)

‘죽은 지구에는 케이팝도 없다’

케이팝포플래닛 제공
케이팝포플래닛 활동가들이 화력발전소 탓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맹방해변을 살리자는 캠페인 ‘세이브 버터 비치(Save Butter Beach)’에 참여한 모습.

9년째 여러 케이팝 아이돌그룹을 좋아해 온 직장인 김아무개(26)씨는 “방 한구석에 쌓여있는 앨범을 보고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앨범 안에 있는 포토카드나 팬 사인회 응모권 때문에 같은 앨범을 40장씩 산 적도 있어요. 실제로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플라스틱만 쌓이니까 환경 문제가 걱정되죠.” 아이돌그룹 엔시티(NCT)의 팬인 고등학생 김나연(16)양도 “앨범을 살 때마다 과대포장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려고 사는 앨범이 기후위기에는 나쁜 영향을 미치니 고민”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이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3월 기후행동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지구를 위한 케이팝)을 열고 직접 행동에 나섰다. 케이팝포플래닛 운영자들은 지난 12일과 14일 <한겨레>와의 화상(줌) 인터뷰에서 “이제는 엔터테인먼트사가 케이팝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엑소의 팬이자 케이팝포플래닛 설립을 주도한 인도네시아의 누룰 사리파(22)는 “기후위기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에 케이팝포플래닛을 만들었다”며 “케이팝 팬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팬들이 온라인 플랫폼에 모여 함께 환경 문제를 논의하고 행동에 옮기려는 것”이라고 행동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한겨레/줌 화면 갈무리
아이돌그룹 엑소의 팬이자 케이팝포플래닛 운영자인 누룰 사리파(22)씨.
EugeneTomeev via Getty Images/iStockphoto
자료사진

 

이제는 엔터테인먼트사가 나설 때다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문제는 플라스틱을 양산하는 실물 앨범 소비다. 지난해 한 해 동안 팔린 앨범(가온차트 연간 400위권 기준)은 4200만장, 올해는 9월까지만 4300만장에 이른다. 같은 앨범이 여러 버전으로 나오거나 앨범 안에 포토카드, 팬 사인회 응모권 등이 포함돼 있어 팬들 1명이 많게는 수백장씩 구매해서다.

앨범은 ‘가장 나쁜 플라스틱’으로 꼽히는 폴리염화비닐(PVC)로 포장돼 있고, 플라스틱과 코팅 종이, 특수 화학처리를 하는 혼합 플라스틱인 CD 등으로 구성돼 있어 재활용도 쉽지 않다. 에스파의 팬이자 케이팝포플래닛 운영자인 이다연(19)씨는 “앨범 때문에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왔다며 ‘지구야 미안해’, ‘차라리 먹어치워 버리게 식용으로 만들어주면 안 되냐’는 말까지 할 정도로 앨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팬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케이팝포플래닛은 지난 7월부터 ‘죽은 지구에는 케이팝도 없다’는 이름으로 엔터테인먼트사에 실물 앨범 대신 디지털 앨범 등 친환경 선택지 제공, 앨범·굿즈 플라스틱 포장 최소화, 탄소 배출이 적은 공연 등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씨는 “소비자인 팬들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결국 엔터테인먼트사가 앨범을 많이 사게 만드는 구조와 과대포장을 바꿔야 한다. 포토카드 외에는 친환경 종이를 사용한 가수 청하의 ‘케렌시아’ 앨범 등이 긍정적인 사례”라고 언급했다.

 

 “케이팝 가수 응원하면서 죄책감 느끼고 싶지 않아”

케이팝포플래닛의 활동은 케이팝 산업 안에서의 캠페인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행동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9월 방탄소년단의 앨범 재킷 촬영장소인 강원도 삼척시 맹방해변 인근에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를 홍보대사로 임명한 인도네시아의 전자상거래 기업 ‘토코피디아’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라고도 요구했다.

타이(태국)의 엔시티 팬이자 케이팝포플래닛 운영자인 몬파리야 롭농부아(25)는 “다른 국가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전 세계의 케이팝 팬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관심을 보이고 지지하고 있다”며 “태국에서도 방탄소년단 팬덤 ‘아미’들의 참여로 맹방해변 캠페인 관련 트윗이 하루에만 1천번 넘게 리트윗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주로 엠제트(MZ) 세대로 구성된 케이팝 팬들이 기후위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세대라는 ‘당사자성’에 주목한다. 몬파리야 롭농부아는 “2019년 미세먼지가 심해 휴교령이 내려져 며칠 동안 학교에 가지 못한 적이 있다. 여름에 홍수가 마을을 덮쳐 주민들이 대피한 경험도 있다”며 “기후위기를 체감했다”고 말했다. 누룰 사리파는 “케이팝 팬들은 주로 기후위기의 당사자인 엠제트 세대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더는 케이팝 가수를 응원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팬들의 목소리에 엔터테인먼트사가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