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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07일 15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12월 10일 11시 06분 KST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엠팍 등 남초 커뮤니티에서 쏜 '화살촉'이 백래시를 증폭하는 방식 : 팩트체크는 없다

근거 불분명한 주장 게시→남초 커뮤니티에서 확산→언론·정치권이 ‘논란’으로 재생산→공격 대상 기업·공공기관 사과→공격 세력 승리 선언→무한반복

뉴스1 / GS25
근거 없는 억측이 만들어낸 백래시 피해 사례. '숏컷'했다는 이유로 공격 받은 안산 양궁 금메달리스트와 '집게손'이 남성비하를 의미한다는 주장 때문에 수정을 강요당한 GS25 포스터.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 일부 남성 중심 커뮤니티의 반페미니즘 주장을 대변하는 발언이 여과 없이 나오고 있다. 젠더 갈등 조장 선거전략이 집권 여당과 수권을 노리는 제1야당 모두에서 공공연히 나오는 것은 한국 정치의 퇴행이자 후진성을 보여준다.

이들 커뮤니티는 2021년 한 해 페미니즘에 반발하는 백래시 생산과 유통의 중심에 있었다. <한겨레>는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한국여성민우회와 함께 올해 발생한 백래시 사건 10건을 선정해, 근거 없는 커뮤니티발 주장이 언론 보도를 통해 확대재생산하는 과정을 전수 분석했다.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선거전략은 말 그대로 허상에 기초하고 있었다.

 

“의심된다” 글 1시간만에 “남혐이다” 낙인 번져

“손 모양이 애매한 것 같기도 하고, (남혐 표현으로) 의심이 간다.”

지난 5월1일 오전 10시15분 한 누리꾼은 온라인 커뮤니티 ‘뽐뿌’에 한 기업 홍보물을 갈무리한 사진을 올렸다. 홍보물은 10분 전 카카오톡을 통해 이 기업의 5월 행사를 홍보하는 메시지와 함께 소비자들에게 전송됐다. 온라인 공론장을 뜨겁게 달구고 기업이 사과까지 한 ‘지에스(GS)25 집게손’ 사태의 시작이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다. 집게손이 남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한 표지와 비슷하다는, 실체가 불분명한 주장이 온라인을 뒤덮었다.

올해 발생한 유사 사건들은 비슷한 과정을 반복했다. 근거 불분명한 주장 온라인 게시→남초 커뮤니티에서 확산→언론·정치권이 ‘논란’으로 재생산→공격 대상 기업·공공기관 사과→공격 세력 승리 선언. 이 흐름 속에서 팩트체크나 합리적 반론이 들어갈 여지는 없었다. 이를 가로지르는 열쇳말은 남성 중심 커뮤니티의 무차별적 백래시(성평등에 대한 반발성 공격)였다.

GS25 수정 전 포스터
'한국 남성 평균 생식기 크기는 6.9cm'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공격받는 이른바 '메갈리아 표식'. 그러나 소시지를 집으려는 집게손일 뿐이다. 

<한겨레>는 페미니즘 백래시 생산과 증폭, 여론화 과정을 살펴봤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과 한국여성민우회와 함께 올해 발생한 대표적 백래시 사례 10건을 골랐다. 이를 빅데이터 분석 업체 타파크로스의 데이터 분석 서비스 ‘트렌드업 V4’로 분석했다. 특정 사건이 시작되고 2~4주 사이 40여개 커뮤니티, 트위터, 주요 포털사이트 카페와 블로그에 올라온 게시물 중 사례별 주요 키워드를 포함한 온라인 게시물과 언론 기사를 수집했다. 백래시 사례 10건의 생산-증폭-여론화 과정은 거의 동일했다. 특히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사건들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남성 중심 커뮤니티의 진화 : 디시, 에펨코리아, 불팍

백래시 관련 게시물을 분석했을 때 가장 많은 글이 올라온 상위 3개 커뮤니티는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엠엘비(MLB)파크였다. 게임, 스포츠, 전자기기에 관심 많은 이용자들이 주로 찾는 남성 중심 커뮤니티다. 지에스25 편의점 집게손 홍보물 사건의 경우 논란이 불붙었던 5월1일부터 한달 동안 27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3542개의 관련 게시글이 올라왔다.

특히 사건이 처음 촉발된 뒤 3일간 올라온 게시글 수만 2090개로 절반이 넘었다. 이 가운데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게시글 수는 전체의 약 46% 수준인 979개로 가장 많았고, 엠엘비파크 215개, 에펨코리아는 135개였다. 2010년대 중반 여성혐오 발언의 주된 통로로 여겨졌던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게시된 글은 177개였다. 백래시 생산과 유통이 남성 중심 커뮤니티 전반으로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여성혐오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오랜 시간 온라인상 유희의 소재로 소비됐다. 당시엔 커뮤니티 밖에선 이를 알 수 없었지만 점차 여성을 ‘김치녀’ ‘개념녀’ 등의 멸칭으로 부르고, 2015년 메갈리아의 등장, 페미니즘 대중화가 이뤄지면서 백래시가 거세졌다. (이 과정에서) 남초 커뮤니티 안에 머물던 이야기가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장’에서 ‘집단 확신’으로

한겨레
'집게손' 억측이 남초 커뮤니티에서 확대된 추이와 경로

 

집게손 검열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5월 한달 동안 언론보도를 포함해 집게손 모양과 관련한 온라인 게시물은 7281건이었다.

5월1일 오전 10시15분 게시물의 댓글에는 집게손 모양이 ‘남성 비하’라는 주장에 “맞는 것 같다”, “과한 해석이다”, “프로 불편러” 등 엇갈린 반응이 올라왔다. 그러나 근거 없는 주장이 일부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게시물이 올라온 지 1시간 만에 각종 커뮤니티에 지에스25 홍보물 관련 글 6개가 올라왔는데, 하나의 게시물을 제외하곤 “GS25 페미기업 확정”, “GS25 논란 터졌다” 등의 글이었다.

결국 이날 오전 11시31분께 엠엘비파크에 한 누리꾼이 “(공격) 들어가자”며 지에스25에 항의하는 방법을 적었다. 조회수 4만6천여회를 기록한 이 게시물 댓글엔 “항의하고 왔다”는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항의가 지속되자 지에스25는 이날 오후 3시께 홍보물에서 손가락 모양을 삭제했다. 홍보물이 공개되고 5시간 만이다.

그럼에도 일부 누리꾼들은 집게손 색출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이날 저녁 8시12분께 엠엘비파크에는 “(GS25) 광고 안에 megal(메갈) 단어가 숨겨져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홍보물에 적힌 영어 문구 마지막 알파벳을 아래에서 위로 읽으면 ‘메갈’(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을 앞세웠던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날 저녁 8시12분부터 밤 12시까지 올라온 커뮤니티 게시물은 50건이었다. 이는 “GS 광고 페미가 만들었다는 확실한 증거”라거나 “GS25 메밍아웃(메갈리아 커밍아웃)” 등의 제목을 달고 각종 커뮤니티로 빠르게 퍼졌다. 결국 지에스25는 이날 밤늦게 게시물을 또 한번 수정했고, 다음날인 2일 홍보물을 삭제하고 사과했다.

한겨레
2021년 한국 온라인 백래시 TOP10

공격 대상 ‘발굴’은 계속


이후 커뮤니티에선 집게손 검열의 시간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청, 의류기업 무신사, 비비큐, 평택시 홍보물 등에 포함된 집게손 모양도 남혐 표현이란 주장이 나왔고, 해당 기업과 기관은 게시물을 수정했다.

이들의 공격은 다른 대상으로 확대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페미니즘 공부 모임을 후원했다”며 커뮤니티 남성 회원들의 후원 중단 인증글이 올라왔다. 이는 3년 전인 2018년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이뤄진 행사를 누군가 발견해, 지난 5월20일 최초로 커뮤니티에 올리며 “초록우산도 ‘페미’”라고 공격한 것이 계기였다. 인증글이 늘어나자 어린이재단은 “(언급된) 해당 모임·행사와는 관련성이 없다”고 입장문을 내야 했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가 20대 여성의 자살 방지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시스터즈 키퍼스’ 사업에 대한 백래시도 ‘발굴’로 확산됐다. 센터는 지난 3월 말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여성 활동가 모집 공고를 냈는데, 4월2일 저녁 8시19분께 에펨코리아에 “청년 자살을 줄인다면서 여성(활동가)만 모집한다”는 취지로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40분 사이 또 다른 커뮤니티 4곳에 동일한 제목과 내용으로 순차적으로 올라왔다. 현재 모두 삭제된 이 게시물들은 게재 당시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같은 달 3일부터 10일 사이 해당 사업 비판 게시물은 15건(하루 평균 1.9건)에 불과했다.

자살예방센터를 비판하는 게시물이 급격히 증가한 건 유튜브 채널 ‘성인권센터’가 같은 달 8일 자살예방센터 관계자에게 ‘왜 남성을 위한 자살 방지 프로그램은 안 하고 있냐’고 따지는 통화 녹음본을 공개하면서다. 같은 달 14~15일 시스터즈 키퍼스 관련 게시물은 각종 커뮤니티와 블로그 등에 80건이 올라왔다. 센터 게시판에는 800여건의 항의글이 올라왔다. 센터는 4월16일 “혐오성 발언과 사진 게재 등을 중단해달라”는 입장을 내고 이들의 공격에 굽히지 않았지만, 한때 누리집이 다운되는 등 업무에 차질을 빚었다.

이들이 공격 대상을 계속 발굴하는 것은 백래시를 통해 기업 사과나 공공기관의 게시물 수정 등을 맛본 ‘승리 효능감’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권수현 대표는 “기업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차원에서 혐오를 끊어내고 정치인 역시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해선 안 되는데 되레 (백래시 주장을) 승인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비합리적 요구를 정당한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재구 장예지 기자 j9@hani.co.kr

백래시 피해 사례
안산 선수, 코미디언 박나래, 그리고 하예나 활동가 포항공대 강연 취소 사태

 

 


백래시 글 게시→논란 재생산… ‘여혐’ 기름 붓는 언론, 의식하는 정치권

 

남성 중심 커뮤니티 이용자 사이에서만 공유됐던 주장과 음모론이 백래시 형태로 공론장으로 나오게 한 일등공신은 언론이다. 언론이 이들의 스피커가 되면서 일부 커뮤니티 주장을 정치권이 수용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지에스25 집게손 논란이 벌어진 5월 한달 동안 7281건의 온라인 게시물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언론 보도는 625건(8.6%)이었다. 언론 보도와 온라인 게시물 증감 추이는 대략 일치했다. 언론 보도가 나오면 관련 게시물도 증가한 것이다.

다른 백래시 사건 확산에도 언론 역할이 컸다. 지난 4월 말 <에스비에스>(SBS) 웹예능 프로그램 ‘문명특급’ 피디(PD)인 재재가 맥도날드 모델이 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반페미 운동’ 일환으로 불매운동을 하겠다는 온라인 게시물이 등장했다.

남초 커뮤니티에선 재재가 여대를 졸업하고 쇼트커트, 비혼식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페미니스트라 규정해왔다. 이들 주장은 지난 4월30일 ‘맥도날드 불매운동 항의’라는 취지로 보도됐는데, 보도 전까지 온라인상 관련 게시물은 17건에 불과했다. 보도 이튿날 하루에만 관련 게시물은 40건으로 늘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이 지난해 2월 공개한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라는 성인지 감수성 교육 영상은 공개된 지 14개월이 지난 올해 4월 뒤늦게 논란이 됐다. 4월10일 한 커뮤니티에선 해당 영상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초기에는 반향이 크지 않았다. 게시물이 급격히 늘어난 건 언론 보도 이후였다. 4월12일 <머니투데이>는 양평원 관련 커뮤니티발 주장을 보도했는데, 당일 10건에 불과했던 온라인 게시물이 보도가 나온 다음날인 13일에는 92건으로 급증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보도가 커뮤니티 주장을 그대로 실어 날라 ‘논란’으로 재생산하는 데 집중됐다는 것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언론은 젠더 갈등이라는 명목으로 분노를 일으키기 쉽도록 구성된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커뮤니티 내용을 그대로 오려 붙이고 팩트체크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취재 없는 커뮤니티발 기사량이 줄어든다면 (백래시) 효능감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한 커뮤니티 여론은 대통령 선거 국면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효능감을 만끽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실효성은 없는 대신 피해자들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성폭력특별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거짓 성폭력 피해 주장을 처벌해야 한다는 남초 커뮤니티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2030 남자들이 펨코에 모여서 홍을 지지한 이유’란 글을 공유하고 읽어보자고 권했다. 민주당이 2030세대 남성 지지를 얻으려면 페미니즘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급기야 남초 커뮤니티 주장을 대변하는 유튜버와 신남성연대 등 100여명은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이수정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장이 페미니즘을 옹호한다며 퇴진을 촉구하는 항의시위를 벌였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들을 만나 면담하기도 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한국의 백래시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이끌고 정치인과 언론이 이를 따르는 형국을 띠고 있다. 커뮤니티의 비합리적인 주장이 공론장에서 확산된 것은 정치인들이 이 같은 주장에 화력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백래시가 정치권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말했다.


장예지 강재구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