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런 순간을 기막히게 잡아냈을까? 첫눈을 보는 고양이의 아련한 눈망울, 꼬리 아래 은밀한 곳에 붙은 낙엽 한 장, 생전 처음 타본 미끄럼틀을 내려오는 길고양이의 작은 발까지, 24시간 생활 밀착 예능 프로그램처럼 길고양이들의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한 사진 에세이가 출간됐다.
길고양이의 사계절을 담은 책 ‘숨은 냥이 찾기’는 사진작가 진소라씨가 2019년부터 ‘관계’를 맺어온 동네 고양이들과 여행지에서 만난 길냥이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진소라 작가는 대학 졸업 뒤 난치병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처음 카메라를 들었다고 한다. 당시 뚜렷한 목적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지만, 2019년 봄 길에서 길고양이 ‘뽀또’를 만나며 그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바로 동네 거리 곳곳에 숨은 길고양이들의 사생활을 촬영하는 것.
사진 속 길고양이들의 사계절은 평화로우면서도 사랑스럽다. 따스한 봄날엔 꽃 놀이를 즐기고, 여름엔 나무 밑 그늘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며, 가을엔 낙엽을 베개 삼아 잠을 청하고, 겨울엔 추운 줄도 모르고 눈밭을 뛰논다. 고양이들은 과거를 곱씹으며 괴로워 하지도 않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모습은 매혹적이다. 분명 그들에게도 고단한 삶이 있겠지만, 작가는 그 속에서도 행복한 순간들을 포착해 ‘길고양이만의 행복 비결’을 찾아낸다. “사람 사는 곳 어디든 있는 고양이들이지만, 힘든 귀갓길 길고양이들을 만나면 수호천사처럼 느꼈다”는 작가의 글처럼, 따스한 그의 시선은 독자에게도 폭신한 위로를 건넨다.
책은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지은이를 길고양이 사진가로 이끈 동네 고양이 ‘뽀또’와의 인연이 담겼다. 느긋하고 매력 넘치는 사랑둥이 뽀또와 그의 두 연인 ‘오즈’ ‘칙촉’, 그리고 그의 새끼들로 구성된 작은 길고양이 사회는 ‘짝짓기 예능’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각각의 친밀도와 갈등, 관심이 제각각인 이들의 관계는 길고양이란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졌던 생명에게도 개성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두 번째 장은 전국 곳곳의 고양이들이 담겼다. 제주 차밭을 지키는 ‘알바 고양이’부터 궁궐 뜨락을 누비는 고궁 고양이, 신선한 생선만 밝히는 방파제 고양이까지 다채로운 배경과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고양이뿐이 아니다 그들을 돌보는 길 집사(캣맘)들과 동네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216장의 사진 한장 한장이 모두 ‘덕심’을 자극한다.
한겨레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