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다치는 이유는 운전자 표준 모형이 성평등하지 못한 데 있었다

차량 충돌 시험에 쓰는 인체 모형은 75kg 남성 기준이다.
현대자동차 제공

“여성들은 운전하기 위해 차에 탈 때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19년에도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사는 여전히 남성 인체 모형을 이용한 충돌 시험에서 얻은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차량을 만든다. 이 때문에 여성은 남성보다 교통사고로 인해 다칠 확률이 더 높다.”

볼보의 ‘모두에게 평등한 차량’(EVA·Equal Vehicles for All) 계획을 소개하는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문구다. 자동차의 안전 설계가 성평등하지 않다는 비판은 오래된 이야기다. 안전벨트부터 시트와 에어백까지 각종 안전장치가 전통적으로 남성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논란인 만큼 갑론을박도 많다. 실제로 같은 자동차를 탔을 때 여성이 더 위험한지, 그렇다면 이를 개선하기 위해 규제 당국과 자동차 제조사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자동차, 남성에게 더 안전?

한겨레

같은 조건의 교통사고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다친다는 내용의 연구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교통안전 전문가 디판 보즈의 2011년 연구를 보면, 충돌 사고에서 안전벨트를 맨 여성 운전자가 심각한 부상을 입을 확률이 같은 조건의 남성에 비해 47% 더 높았다. 여기서 심각한 부상이란 미국의 최대상해등급(MAIS) 3단계(심각) 이상의 부상을 뜻한다. 2단계(보통) 이상으로 범위를 넓히면 여성의 부상 확률이 남성보다 71%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갖고 있는 1998∼2008년 충돌 사고 데이터(NASS-CDS)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다. 도로교통안전국은 매년 교통사고 약 5000건의 가중표본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편타 손상(교통사고에서 사람의 목이 심하게 흔들리는 충격을 받았을 때 입는 상해)만 놓고 보면 그 차이가 더 심하다. 1960년대 이후 최근까지 이에 대해 이뤄진 여러 연구를 종합해보니 여성이 편타 손상을 입을 확률은 남성의 1.5∼3.0배 수준이었다.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 티나 카스텐슨 교수 연구팀이 2011년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이런 편타 손상으로 통증이 장기화할 확률도 여성이 2배 이상 높았다.

‘175㎝, 77㎏’ 표준 모형의 함정

Getty Images

‘성평등하지 못한 자동차’의 주요 원인으로는 차량 충돌 시험에 쓰이는 인체 모형이 꼽힌다. 자동차 제조사와 규제 당국은 차량을 만들거나 이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인체 모형을 태운 차량을 충돌시키고 모형의 손상 양상을 보는 식으로 안전성을 평가한다. 모형 하나의 가격이 최소 수천만원에서 최대 수억원에 이르는 만큼 시험 한 번에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만만찮다. 시험 1회에 드는 평균 비용은 약 1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 제조사는 새로운 차종을 개발할 때 충돌 시험을 100회 이상 반복한다.

때문에 1990년대까지만 해도 ‘표준 사이즈’로 제작된 인체 모형 하나만 쓰는 일이 빈번했다. 문제는 이 표준이 남성 신체의 표준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1978년 충돌 실험을 시작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키 175㎝, 몸무게 77㎏의 인체 모형 ‘하이브리드 3’만 사용했다. 하이브리드 3은 후속 버전인 ‘쏘어’(Thor)와 함께 지금도 주요하게 쓰이는 인체 모형 중 하나다. 이에 대해 도로교통안전국 연구원은 미국 자동차 전문 사이트 <에드먼즈>에 “당시에는 모든 사이즈의 모형으로 시험하지 않고 50분위 남성 모형만 써도 안전벨트의 성능을 평가하는 데 충분하다고 여겼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다른 자동차 시장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은 변화가 더욱 더뎠던 곳 중 하나다. 1996년 도입된 유럽의 신차 안전도 평가 프로그램 ‘유로 엔캡’(Euro NCAP)은 20여년간 모든 충돌 시험에서 남성 모형만 사용했다.

Getty Images

이 때문에 여성 인체 모형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성별에 따라 인체의 질량 분포뿐 아니라 몸통의 모양, 근육과 인대의 세기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에어백 등 신체 구조에 따라 효과가 확연히 다른 안전장치가 도입되면서 이런 지적은 힘을 얻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후방 추돌 사고 때 여성의 머리가 더 빨리 앞으로 튕기고 척추뼈가 더 많이 움직이는 등 성별에 따른 차이가 크다는 연구 결과들이 앞다퉈 나오기 시작했다. 2010년 스웨덴 보험회사 포크샘의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편타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된 차량 시트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효과적이었다. 해당 시트로 인해 남성의 경우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될 확률이 60%가량 줄었지만, 여성은 45% 감소하는 데 그쳤다.

여성 모형, 어디까지 왔을까

국제연합 유럽경제위원회(UNECE)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체 모형
UNECE 제공
국제연합 유럽경제위원회(UNECE)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체 모형

주요 자동차 제조사와 규제 당국이 여성 모형을 도입한 시기는 천차만별이다. 볼보는 누리집을 통해 “1995년 충돌 시험에 당시 유일한 여성 모형인 소형 전면충격용 모형을 썼다”고 알리고 있다. 당시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자동차 시장의 규제 당국이 모두 남성 모형만 사용하고 있던 점을 고려하면 이른 편에 속하는 셈이다. 볼보는 2000년대에 임신부 가상 모형을 개발했다.

현대자동차는 1998년 여성 인체 모형을 측면 충돌 시험에 도입했다고 밝히고 있다. 2000년에는 정면 충돌 시험에도 여성 모형을 쓰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하이브리드 3’ 등 총 27종의 인체 모형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이 중 여성 모형의 비중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밖에 베엠베(BMW)나 벤츠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도 모두 여성 인체 모형을 구비하고 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2003년부터 여성 인체 모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 모형의 경우 평균보다 훨씬 작은 모형을 쓴다. 도로교통안전국 누리집을 보면, 50분위 성인 남성 모형 2가지와 5분위 성인 여성 모형 2가지를 사용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도로교통안전국은 이에 대해 “단순히 중위값에 집중하기보다는 더 넓은 스펙트럼을 대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생아부터 만 10살 아이까지 미성년자 모형도 6가지가 있다.

유로 엔캡은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다. 2015년에야 여성의 신체 크기를 고려한 별도의 모형을 쓰기 시작했다. 작은 여성 모형을 운전석과 뒷좌석에 태운 채로 정면 충돌 시험을 한 게 첫 사례다.

Getty Images

그러나 아직도 곳곳에 차별적 요소가 남아 있다. 국제연합 유럽경제위원회(UNECE) 규정을 보면, 안전벨트와 정면충돌 시험 모두 약 75㎏ 무게의 50분위 남성 기준 모형을 쓰도록 하고 있다. 여전히 남성 표준이 운전자 전체를 대표하고 있는 셈이다. 안전벨트 등 각종 안전장치의 보호 효과가 다른 성인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임신부를 위한 충돌 시험 규정은 아직 미국과 유럽 중 어느 곳에도 도입되지 않았다.

어떤 여성 모형을 어디에 쓰는지도 문제다. 여성 신체를 본떠 모형을 만드는 대신 단순히 남성 모형의 크기를 줄인다거나, 여성 모형을 조수석에만 앉히는 등의 관행이 일부 계속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지난해 미국 소비자 전문 매체 <컨슈머 리포트>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전면 충돌 시험에서 여성 모형을 조수석에만 태우거나 아예 태우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도 “유로 엔캡의 경우 가끔은 여성 모형 대신 단순히 크기를 줄인 남성 모형을 쓴다고 인정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