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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 중 몰래 콘돔 빼는 '스텔싱'이 성폭행에 해당한다는 법안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통과됐다

“외국은 강간과 성폭력 범죄를 검토할 때 성관계 동의 여부가 매우 중요한 법적 구성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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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Ian Logan via Getty Images

성관계 중 피임도구를 임의로 제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통과됐다.

지난 8일(현지시각) <시엔엔(CNN)> 등 외신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가 미국 50개주 가운데 처음으로 ‘스텔싱’(stealthing)이 성폭행에 해당한다는 내용을 민법에 추가했다. 스텔싱은 성관계 도중에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콘돔 등 피임도구를 제거 또는 훼손하는 행위를 뜻한다.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반대 없이 법안을 통과시켰고, 기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지난 7일 법안에 서명했다.

법안이 발효되면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스텔싱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 형법은 피해자의 적극적 동의가 없는 성관계를 강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스텔싱 피해자는 ‘동의가 부족했음 또는 없었음’을 이유로 강간죄로 소를 제기할 수 있었다. 이번 법 개정은 스텔싱 범죄 근절을 위한 보다 더 적극적인 조치로 볼 수 있다.

법안을 발의한 크리스티나 가르시아 하원의원은 <시엔엔>에 “스텔싱은 임신이나 성병 노출 등에 대한 우려로 피해자에게 신체적, 정서적 피해를 야기한다”면서 “스텔싱은 부도덕할 뿐 아니라 불법이란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미국의 다른 주들도 캘리포니아주를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독일, 스위스, 캐나다 등에선 이미 스텔싱을 새로운 유형의 성폭력으로 보고 처벌을 강화해왔다. 2014년 캐나다 대법원은 고의로 콘돔에 구멍을 내 여성을 임신시킨 남성에게 특수성폭력을 인정해 징역 18개월을 선고했다. 스위스 연방대법원도 2017년 성관계 중 몰래 콘돔을 뺀 남성에게 유죄판결을 내려 형사책임을 물었다. 2018년 독일 베를린 지방법원 역시 스텔싱 행위를 한 남성에게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독일 경우, 2016년 형법 개정으로 성폭력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성관계에 대한 동의의 여부가 유무죄를 판단하는 주요 법적 구성요건이 되었기에 스텔싱 가해자를 기소할 수 있었다.

김희정 계명대 인권센터 교수는 2019년 법학논문집에 게재한 ‘스텔싱의 형사처벌 가능성에 대한 소고’ 논문에서 “외국은 강간과 기타 성폭력 범죄를 검토하는 데 있어 성관계에서 동의 여부가 매우 중요한 법적 구성 요건이다. 한국의 경우 현행법으로 비동의 간음죄가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스텔싱을 강간죄로 검토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기타 다른 성폭력 범죄로도 검토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스텔싱’ 행위, 국내는 처벌규정 없어 형사처분 어렵다

다만 국내에서도 스텔싱 행위에 대한 민사상 책임이 올해 처음으로 인정되는 판결이 나오긴 했다. 지난 2월 서울동부지법 민사17단독 임범석 부장판사는 ㄱ씨가 자신에게 스텔싱 행위를 한 남성 ㄴ씨에 대해 제기한 2천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ㄴ씨가 ㄱ씨에게 1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ㄱ씨의 법률대리인은 당시 <한겨레>에 “스텔싱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법행위지만 다른 성범죄와 달리 처벌규정이 없어 형사처분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스텔싱 행위를 성범죄로 다루기 위한 형사처벌 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지난달 ‘스텔싱 처벌법’ 발의

이런 흐름에 따라 국내에서도 ‘스텔싱 처벌법’이 지난달 처음 발의된 상태다.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피임도구를 사용하는 것처럼 상대방을 속이거나 이를 동의 없이 제거·훼손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피임도구에 대한 사용동의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구성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소 의원은 ‘비동의 간음’을 골자로 하는 형법 개정안도 함께 발의했다. 비동의 간음죄의 핵심은 폭행이나 협박이 아니더라도 상대의 명시적 동의가 없는 성관계는 강간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 의원 개정안은 강간죄의 성립요건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행위’로 규정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지난해 8월 강간의 구성요건을 폭행·협박 등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강화한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외에서는 주로 ‘스텔싱 처벌법’ 없이 비동의 간음죄를 근거 삼아 스텔싱을 강간죄로 따져 묻는다. 김희정 교수는 “비동의 간음죄가 통과된다면 외국과 같이 비동의에 의한 성관계 즉, 강간죄 또는 강간 치상죄와 같은 성폭력 범죄로 스텔싱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한겨레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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