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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더워지기 전에 떠나자!" 거창한 용품도, 텐트도 필요 없는 '스텔스 차박'의 매력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

기사와 무관한 자료 사진.
기사와 무관한 자료 사진. ⓒGETTY

화려한 호텔에서의 하룻밤도 좋지만, 호텔의 안락함을 포기하면 여행은 한층 특별해진다. 파도 소리, 풀벌레 소리, 새소리, 나지막이 스미는 달빛을 바로 곁에서 느낄 수 있는 캠핑은 낭만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만만찮은 법. 트렁크 한가득 준비해야 할 짐들, 번번이 텐트를 쳤다 접었다 하는 것도 여간 수고로운 일이 아니다. 낭만은 좋지만 번거로운 건 사양이다. 가볍게 떠나 나만의 콘셉트로 힐링하며 추억을 쌓고 싶다. 차 한 대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이른바 ‘차박’이 대세가 된 이유다.

스텔스 차박의 좋은 동반자, 반려견!
스텔스 차박의 좋은 동반자, 반려견! ⓒ홍유진 제공

차만 있으면 된다

 

차박은 언제 어디든 훌쩍 떠나 마음에 드는 곳에 차를 세우기만 하면 끝이다. 자연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길 위의 내 집이 완성되는 것이다. 밤새 차 안에서 듣는 빗소리, 눈부시게 아름다운 코발트빛 바다를 조우하며 낮잠을 즐기거나 밤이 새도록 우윳빛 은하수를 바라보다 그대로 스르륵 잠이 들어도 좋겠다. 내 취향으로 꾸민 나만의 공간에 누워 오롯이 자연을 누리는 것은 차박에서만 얻을 수 있는 묘미다. 일반 텐트 캠핑과는 달리 동물, 벌레, 안전 문제 등 여러 위험 요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어 안정감을 주고, 바리바리 짐을 싸야 한다거나 눈비 등 악천후와 각종 소음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숙박비 0원의 경제성까지!

하지만 요즘 일컫는 차박의 기준으론 이런 장점을 100% 즐기기 어렵다. 트렁크를 열고 차량 후미에 ‘차박용 텐트’를 결합하는 순간부터 오토캠핑과 다를 바 없어지기 때문이다. 가볍게 떠나기는커녕 오히려 캠핑 짐은 트렁크도 모자라 뒷좌석까지 꽉 채울 만큼 늘어나고, 캠핑장을 찾아 예약하느라 떠나기 몇주 전부터 마음이 분주하다. 더욱이 요즘같이 날씨가 좋을 때는 괜찮은 캠핑장 찾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 시간과 장소의 제약에서 자유롭다는 말은 순전히 엉터리다.

스텔스 차박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스텔스 차박이란, 차 안에서 조용히 잠만 자고 이동하여 차 안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미로 몰래 한다는 뜻의 ‘스텔스’(stealth)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겉에서 보기엔 그저 주차된 차량 같다. 하지만 차량 밖으로 무언가 꺼내어 늘어놓는 순간 캠핑이 시작된다. 다만 주차장에서의 캠핑은 불법, 캠핑장 이외의 곳에서 화기를 사용해 요리하는 것 또한 불가하니 참고하자.

첫 차박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4년 전 강릉으로 별을 보러 갔는데 그곳이 하필 산 정상이어서 마땅히 머물 숙소가 없었다. 결국 숙소를 포기하고 차에서 하룻밤을 자야 했는데, 처음으로 차에서 아늑함을 느낀 날이었다. 당시엔 알지 못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나는 스텔스 모드로 차박에 입문한 셈이다. 매트와 무릎담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포근하고 만족스러운 밤을 보낸 덕분에 나는 급속도로 차박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뼛속까지 여행자인 내게 스텔스 차박은 나의 여행에 날개를 달아줬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여행의 한계를 넘어서게 해주었다.

차안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만큼 불을 쓰지 않고 간단히 마련할 수 있는 메뉴가 좋다.
차안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만큼 불을 쓰지 않고 간단히 마련할 수 있는 메뉴가 좋다. ⓒ홍유진 제공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

 

스텔스 차박은 적은 인원에 알맞다. 나는 소형 차량인 미니쿠퍼로 차박을 하는데, 주로 반려견 동반(중형견 보더콜리와 사모예드) 솔캠이지만 이따금씩 가족이나 친구와 둘이서 즐기기도 한다. 차량은 작아도 공간을 잘 활용하면 큰 무리 없다.

식사는 현지 맛집을 애용한다.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데다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니까. 때때로 깊은 자연 속에 머물게 되거나 반려견 동반이 어려운 등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한다. 거창하게 차려 먹는 음식보다 스텔스 차박의 취지에 맞게 조리가 간단하고, 맛있고 힘을 얻을 수 있는 한 끼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차 안에서 조리하는 만큼 물 사용이 자유롭지 않으므로 식자재는 미리 손질해 가져간다. 조리 시간 단축뿐 아니라 필요한 양만큼만 가져오기 때문에 손질 과정에서 생기는 식자재 폐기물과 비닐 포장재 등 불필요한 쓰레기가 줄어드니 환경보호 차원에서도 좋다. 차 안에서의 화기 사용은 위험하므로 전기포트나 미니 인덕션을 사용하거나 비화식 메뉴를 택한다.

나는 주로 덮밥류를 해 먹는다. 스팸 덮밥, 낫토 덮밥, 아보카도 덮밥, 카레라이스 정도. 부라타 치즈를 넣은 연어샐러드, 토마토 닭가슴살 냉채는 지금부터 여름까지 시원하게 먹기 좋은 메뉴다. 치즈와 토마토, 바질을 활용한 카프레세나 브리 치즈에 베리류 잼 등을 얹어 낸 간식도 꽤나 근사하다. 아침 식사로는 전날 만들어둔 오버나이트 오트밀이나 그릭 요거트에 그래놀라, 과일을 토핑해 먹으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든든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잠이 살짝 덜 깬 아침, 좋아하는 원두를 핸드밀로 갈고 끓인 물을 천천히 부어 막 추출한 커피는 언제나 차박의 하이라이트랄까. 핸드드립 세트와 원두를 꼭 챙겨 다니는 이유다.

 

차박이 더 즐거워지는 여행지

 

짐 정리하느라 진 빠질 일 없는 스텔스 차박이니만큼 캠핑을 마친 뒤 가뿐한 맘으로 주변 여행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경기도 시흥 갯골생태공원은 봄나들이 떠나기 좋은 곳이다. 145만평 대규모 생태공원인 이곳은 1934년 조성된 소래염전 지역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염전의 소금창고가 빈티지한 느낌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드라마 <남자친구> 촬영지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찾는 커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은 봄마다 수선화가 아름답게 피어 언덕을 수놓는다. 유채꽃의 향연과 파란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인기가 많다. 오륙도 해맞이공원 언덕에서 이기대 해안산책로가 연결되어 있어 시간이 된다면 가벼운 트레킹을 즐기기에도 좋다. 서정적인 호수의 낭만을 만나고 싶다면 경상남도 밀양으로 가보자. 위양지는 밀양 8경 중 하나로 손꼽히며 이팝나무꽃 흐드러져 호수에 비친 반영의 미를 자랑한다. 위양지는 신라시대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저수지 중 하나로 조성되었으나 지금은 전국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될 만큼 매력적인 정취를 뽐낸다. 호수 가운데 자리한 완재정은 1900년에 만들어진 안동 권씨의 재실로 고색창연한 모습이 근사하다.

 

△알아두면 좋아요

 

1. 잠자리의 안락함을 원한다면 폭신폭신한 자충매트를 준비하자.

 

2. 취사가 허가된 곳이라면 피크닉 테이블과 접이식 의자, 스토브, 코펠, 랜턴 챙길 것.

 

3. 모기, 해충으로부터 당신을 지켜줄 모기퇴치제나 해충방지제는 필수.

 

4. 여름에는 습하고 더운 바다보다 시원하고 쾌적한 산이나 계곡이 좋다.

 

5. 재활용 쓰레기 봉투를 준비해 자신이 배출한 쓰레기는 반드시 집으로 되가져온다.

 

6. 국립공원, 국유림 임도, 사유지, 해안 방파제에서의 차박은 불법이다.

 

7. 고기를 굽거나 불멍을 즐기고 싶다면 야영과 취사가 허가된 ‘캠핑장’을 이용할 것.

 

홍유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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