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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12일 16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9월 12일 16시 58분 KST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새로운 ‘미의 전당’이 마주한 독특한 지분율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아모레퍼시픽(AP) 신사옥 전경.
huffpost

건축은 현대의 도시 풍경을 만든다. 서울에서 일사분란하게 지역을 장악한 아파트 단지나 상업시설과 주거시설이 결합해 독특한 마천루를 형성한 초고층 주상복합 타워의 존재감은 결코 잊힐 수 없다. 세계적인 거장이 만든 공공 시설의 맥은 살아 생전 스타 건축가에게 허용된 온갖 욕을 독식하다가 갑작스러운 타계로 추종자와 안티 모두에게 안타까움의 대상이 된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도시 건축의 최전선에는 상업 시설이 있다. 콕 찝어 얘기하자면 기업의 사옥. 이건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자본주의 체제의 테제다.

산업화 이후 시민이 사는 도시의 전형이 된 서구형 도시에서 사옥 디자인은 무소불위의 존재감을 뿜어 왔다. 예컨대 뉴욕의 명물로 여기는 크라이슬러 빌딩(1930년 완공)을 비롯하여, 1958년 위스키업체 시그램Seagram의 창사 100주년을 맞아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이라는 두 걸물이 설계한 시그램 빌딩은 외피 전체를 유리창으로 덮는 ‘커튼 월curtain wall’ 양식을 완벽하게 구현하며 반 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시그램 스타일이 도시 풍광을 마비시키는 시발점이 되었다. OMA의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구축한 역작이자 베이징, 나아가 G2 중국의 아이콘이 된 CCTV 빌딩의 존재감은 또 어떻고. 이제 국가 단위의 경제 체제를 갖춘 글로벌 기업은 사옥을 통해 독자적인 세계에 다가서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구글을 비롯해, 스티브 잡스의 빨간 펜이 마지막으로 활동한 애플의 신사옥에 이르는 일련의 ‘캠퍼스campus’는 일종의 ‘소국가’를 꿈꾸는 그들의 욕망을 투사한 ‘신도시’와 다름 없다.

Image courtesy of ArchDaily
The Seagram Building.

지난 6월 14일, 국내 최대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Amore Pacific의 신사옥이 공식적으로 제 존재를 알렸다. 신용산역과 바로 연결된 아모레퍼시픽의 새로운 ‘미의 전당’은 근 10년 간 잊힐 만 하면 건축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진행형 랜드 마크’였다. 2009년 3월 사업 건립 계획을 수립하고 2010년 7월 최종 공모 당선안이 나왔는데, 5000여억 원이 들어가는 이 엄청난 사옥 만들기의 책무는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에게 돌아갔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자타가 인정하는 유럽의 건축 거장으로, 국적은 영국이지만 200명이 넘는 스태프가 일하는 메인 사무소가 베를린에 있는 터라 주요 포트폴리오가 영국과 독일을 넘나든다. 그의 아이디어는 당시 불과 몇 년 전, ‘비정형의 여제’인 자하 하디드의 DDP가 풍기던 압도적인 ‘요망함’과는 온전히 결이 다른 충격을 한국 사회에 선사했다.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AP 신사옥 모형.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AP 신사옥 예상 완공도.

신용산이란 알토란 땅에 짓는 기업의 사옥이 단 22층 규모라는 사실(주변 주상복합 빌딩은 40층이 넘는다)도 놀랍지만, 정육면체 형태를 취해 강한 덩어리감이 인상적인 건물의 정가운데 부분(전체 사무 공간의 1/9)을 세로형 중정의 이름 아래 비우고, 건축 내부에 자연을 끌어오는 3개의 거대한 공중 정원은 안 그래도 빡빡한 가용 면적을 뭉텅뭉텅 삭제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용적률을 최대한 뽑아내는 고층 타워 만들기에 사활을 건 한국 재계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비경제적인 안’으로 치부했고, 건축계조차 ‘앞으로 한국에서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빌딩’이라 화답했을 정도였다. 이를 선택한 서경배 회장의 안목과 당선안이 현실적으로 획득할 유토피아(혹은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모두의 호기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지사다. 선정된 공모안이 시공을 거치며 끝없는 변경과 괴랄한 비틀림을 당하는 일은 사실 빈번하니까. 그러다 잠시 잊힌 채로 끊임 없이 공사를 진행하던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2017년 겨울, 그 도시 전설을 완성했다. 놀랍게도 초기 설계안이 그대로 구현된 일명 ‘도플갱어 빌딩’이 서울 한복판에 출현한 것이다.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AP 신사옥 전경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하늘에서 내려다 본 AP 신사옥. 과감한 중정이 인상적이다.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AP 신사옥 전경.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주변 주상복합보다 건물 높이가 낮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의 건축 철학은 ‘연결성connectivity의 극대화’다. 용산 미군 기지가 이전한 후 거대한 용산가족공원이 탄생하면 신사옥은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도보 허브’가 된다. 사옥이란 모름지기 회사를 위해 탄생한 건물이기에 연결성이 왠말인가 싶겠지만 신사옥은 이를 건축적으로 현실화했다. 지하 1층의 맛집 거리를 통해, 혹은 주 입구가 어딘지 모르는 똑같은 형태의 동서남북 입구를 통해 시민들은 사옥에 접근할 수 있다. 어디 접근 뿐이랴. 단순히 통로 대신 건물을 관통할 수 있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내부에 머물 수도 있다. 사원증 없는 사람이 사옥 1층을 활보하는 장면이 익숙한 곳. 요새 힙하다는 건축물을 구경하고, 미술관을 답사하며, 맛집을 습격하고, 더운 날 에이컨을 무료로 이용한다. 심지어 중앙에 마련한 3개층 높이의 빛우물로 쏟아지는 자연광은 비타민 합성까지 촉진한다. 그렇게 신사옥의 로비는 다양한 군상이 어울리는 유럽의 광장을 닮았다. 내부의 임직원 전용 공간도 마찬가지다. 위 아래 층을 내부 계단을 통해 바로 연결했고, 거대한 건물에서 자연과 있는 그대로 접촉할 수 있도록 수목과 땅내음, 공기로 가득 찬 공중 정원을 만들었다. 또한 연결성은 실제 사옥을 사용하는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조선 백자, 특히 달항아리의 순수한 미학을 집약한 이 큐브 건물은 밤낮으로 고요하게 빛나면서 저 멀리 있는 관찰자와 시각적으로 연결된다. 한강과 산, 공원과 고층 건물이 품은 신사옥의 사방 풍경을 본다는 것은 다소 익숙지는 않지만, 분명 시도 가능한 ‘2018 서울 프롬나드Seoul Promenade’의 일부이다.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거대한 개방감이 인상적인 AP 신사옥 내부 전경. 천장 중앙에는 빛우물이 있다.
Image courtesy of Amore Pacific
AP 신사옥 5층에 위치한 공중 정원.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AP 신사옥 5층에 위치한 공중 정원.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5층 공중 정원은 임직원 식당과 바로 이어진다.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은은하게 빛나는 AP 신사옥 야경.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골목에서 바라본 모습.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주변 시가지와 조화롭게 어울린다..

자, 이런 상황에서 나는 기묘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새로운 ‘미의 전당’으로 아모레퍼시픽의 둥지가 된 신사옥의 주인은 대체 누구인가? 주식회사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건축물의 진정한 주인은 회사의 주주인가,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고 실질적으로 통솔하며 사옥 디자인을 결정내린 오너인가, 건축물을 무에서 유의 세계로 끌어올린 건축가인가, 물리적으로 건축물을 가장 오래 점거하는 임직원인가, 현대 도시에서 건축물이 제대로 기능하게 만드는 지역 커뮤니티인가, 도시 풍경의 프레임에서 이 건물을 바라보는 모든 시각 경험자인가, 그도 아니라면 서울이라는 도시에 세워졌다는 태생적인 사실이 촉발시키는 마법의 단어, ‘서울 시민’이 출현해야 하는 것인가. 생각할 수록 호기심을 자극하는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에서 이것 하나만은 확실해 보인다. 일정한 외형을 띤 건축물에 대할 때 내보이는 독점적인 소유권이 아니라, 여러 의미로 연결된 주체가 차지하는 지분율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만으로도 그 존재감은 가히 독보적이다. 지금껏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건축물이 서울에 과연 존재했던가. 다들 불가능하다 여기던 기념비적 건축 서사의 주인공이 우리 앞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서울 풍경의 일부가 된 AP 신사옥.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서울 풍경의 일부가 된 AP 신사옥.

* 이 글은 <ARENA HOMME+>와 PUBLY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