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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만 해서 좋은 정책은 아니다

  • 이준구
  • 입력 2018.05.30 14:33
  • 수정 2018.05.30 14:34
ⓒGarsya via Getty Images
ⓒhuffpost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분배상태가 더욱 악화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사실 1년 남짓 시행된 정책이 이렇다 할 분배상의 개선효과를 가져오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분배상태란 것이 정책 한 두 개를 통해 쉽사리 개선될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선은 고사하고 오히려 소득격차가 더 심화되었다는 뉴스는 자못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소득격차 심화의 주요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에도 불구하고 소득격차가 심화되었는지 아니면 소득주도성장 정책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조차 판명되지 못한 상황인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우리 경제에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기다려 봐야 구체적 윤곽을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은 조금이라도 나쁜 뉴스가 나올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현 정부가 경제를 망쳐버렸다고 떠들어 댑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식으로 평가할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역주행을 일삼았던 이명박근혜 정부와는 아주 다르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방향이 옳다고 해서 그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정책은 방향 못지않게 속도도 중요한데, 문재인 정부는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재벌을 개혁하는 등의 일 모두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하루아침에 실현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고 쉬운 과업은 아닙니다.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왜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었을까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그 어려운 일들을 단숨에 모두 이루어 내야만 한다는 식의 성급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힘이 있는 임기초에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조급한 심정을 억누르고 순리대로 정책을 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문제 하나만 하더라도 단숨에 목표치를 달성한다는 조급함은 위험합니다. 사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저소득층의 고용과 소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경제학자들도 사전에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올려가는 과정에서 경제에 어떤 영향이 오는지를 신중하게 모니터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을 근거 없는 우려라고 일축해 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 우려에 분명 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정부가 도와주고 싶은 미숙련,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정책의 영향을 조심스럽게 모니터하면서 추진해 나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주 52시간 노동 문제 역시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 임기 중에 이런 어려운 문제가 모두 풀린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그걸 바라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 경제를 그쪽으로 끌고가 제 궤도에 오르게 하는 일을 끝내는 것만으로도 큰 기여를 한 셈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재벌개혁이란 우리 경제의 숙원사업도 마찬가지구요. 그 동안 재벌개혁이란 말을 수없이 외쳐왔으면서도 근본적인 변화는 이루어진 게 거의 없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한꺼번에 모든 걸 바꾸려 하지 말고 핵심적인 부분을 개혁하는 작업부터 하나씩 시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시장근본주의가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시장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경제인만큼 무리하게 시장을 억누르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되 가능하면 시장 스스로 교정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장이 적응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자칫하면 이런 개혁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서두르다 알묘조장(揠苗助長·곡식의 싹을 뽑아 올려 성장을 돕는다는 뜻으로, 성공을 서두르다 도리어 해를 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다 해서 시장의 협조 없이 혼자 힘으로 그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을 협력적 동반자로 인정하는 자세만이 정책의 성공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너무 성급한 자세는 정부 혼자 독주하겠다는 자세로 읽혀지기 때문에 불안감을 줍니다. 방향만 옳다고 좋은 정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에 가장 필요한 것이 조급함을 억누르고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 필자의 홈페이지에 게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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