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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패닉바잉하는 건 30대가 아니라 그들의 부모다" 수도권 부동산 폭등을 말하다

다큐 '버블 패밀리' 감독 마민지 인터뷰

  • 박수진
  • 입력 2020.10.03 12:31
  • 수정 2020.10.12 00:27
멀리 건설 초기 제2롯데월드가 보인다.
멀리 건설 초기 제2롯데월드가 보인다. ⓒ마민지 제공

1970년대 아버지가 울산의 화학공장 노동자로 일할 때, 어머니는 아파트 투자를 했다. 100만원에 산 아파트는 2년 만에 300만원이 되었다. 아파트로 두 배, 세 배 시세차익을 남기는 일이 반복되며 자산이 형성됐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개발호재가 집중된 잠실은 ‘버블’의 메카였고, 상경한 부모님도 빌라 건축 사업으로 ‘중산층’에 입성했다. 1989년 입주한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에서 태어난 늦둥이 외동딸 민지는 ‘공주처럼’ 자랐다.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IMF) 때였다. 소수의 대기업만 선택적으로 살아남은 그때 부모님은 사업을 접었다. 부동산 버블로 계층 이동 사다리를 올랐던 ‘버블 패밀리’는 급전직하했다. 하지만 그후로도 오랫동안 호텔 분양 등 개발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을 지속했고, 어머니는 부동산업체에 텔레마케터로 일하며 아무도 모르게 딸 앞으로 땅을 샀다. 낡은 빌라에서 올림픽아파트 단지 내 학교를 다니며 “내가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를 오가는 것 같았”던 89년생 민지는 20대가 되어 자기 삶과 떼려야 뗄 수없는 버블, 아파트, 외환위기(IMF)를 다큐멘터리로 기록했다. 그 작품 <버블 패밀리>는 2017년 교육방송(EBS)가 주관하는 ‘이비에스국제다큐영화제’(EIDF)에서 대상을 받았다.

전주국제영화제 <버블패밀리></div> 포스터
전주국제영화제 <버블패밀리> 포스터 ⓒ마민지 제공

“패닉바잉이요? 저는 증여인 것 같아요. 386세대가 모아둔 돈을 증여하는 타이밍이 왔어요. 80년대생, 90년대생이 이제 30대가 되잖아요. 많은 수의 2030은 월세에서 전세로 넘어가는 것도 버거운데, 패닉바잉 누가 하나 했거든요. 강남 친구들 만나니 거기서 하고 있더라고요.”

29일 만난 마 감독은 자신의 다큐 <버블 패밀리> 이후에도 2020년까지 지속되고 있는 부동산 버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패닉바잉을 하는 주체가 언론이 보도하듯 ‘30대 실수요자’가 아니라 그들의 부모인 ‘386세대’라고 했다. 올림픽아파트와 빌라의 경계를 오가며 10대를 보냈던 마 감독은 이 숫자들이 가리키는 현실을 잘 아는 것 같았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 만나면 소득은 저랑 그 쪽 친구들이랑 큰 차이가 안 나요. 돈을 모으는 게 차이가 나죠. 월급을 한푼도 안 쓰고 모으려면 부모님이 생활비 다 해줘야 하잖아요. 집도 서울에 있어야 돼요. 월세가 나가면 안 되니까. 30대 평균 연봉이 3000만원~4000만원이라는데 한 푼 안 쓰고 5년 모아야 2억 밖에 안 되고, 결국 아파트 사려면 부모님이 몇 억 증여를 해줘야 돼요. 제가 보기에 스스로 하는 건 1~2%밖에 안 되고요, 거의 100% 부모님 증여로 사는 거예요. 강남 사는 2030은 증여세 절세 방법을 고민하더라고요.”

마 감독을 만난 날 한 언론에는 지난 3월 이후 자금조달계획서 7만여건을 분석한 결과 가족 돈을 빌린 거래가 3월 4.2%에서 9월 10.6%로 2배 이상 늘었고 신용대출 역시 3월 10.4%에서 8월 20.6%로 2배 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마민지 감독
마민지 감독 ⓒ마민지 제공

마 감독은 최근 <월간참여사회> 부동산 특집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월세 탈출!’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은 기대하지 않는 흙.수.저”, “부동산 시장의 꼬리칸과 3등석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프리랜서 7년차, 30대 비혼 여성, 12년 동안 9개의 월세 방을 옮겨다닌 이사의 달인” 마 감독이 보증금 1억2천만원 대출이 가능해 이자만 내면서 살 수 있는 ‘LH청년전세임대’ 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은 글이었다.

“‘영끌’ 매매는커녕 ‘빚투’ 전세로의 탈출도 꿈같은 소리인데, 2030세대가 아파트 막차에 오르고 있다는 뉴스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차마 나에게 알리지 못하고 집을 산 친구들이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결혼한 친구 중에서도 자가를 보유한 경우가 없었다. 신혼부부 가운데서도 양가의 도움을 받고 ‘쌍끌이 대출’을 감행할 수 있는 ‘금수저’만이 아파트 막차에 오를 수 있다며, 격분한 회사원 친구들의 대화가 오갔다.”(‘영혼까지 끌어모아, 월세 탈출!’ 인용)

자료사진. 부산.
자료사진. 부산. ⓒJ. Park via Getty Images

마 감독은 최근 1기 신도시로 조성된 일산의 한 아파트 단지에 갔다가 ‘현타’(현실 자각 타임,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를 맞이했다고 했다. “아파트 호가가 5억5천만원인가 하더라고요. 아 그러면 옛날 올림픽아파트는 얼마지, 찾아봤는데 17억~18억원이었어요. 1998년에 우리가 4억5천만원에 팔고 나왔거든요. 그게 노무현 정부 거치면서 12억원으로 올랐고, 지금 18억원까지 오른거죠.”

마 감독은 부동산 불패 신화가 세습되고 있는 것 같아 무섭다고 말했다. “정책이 여러번 나오는 게 사람들이 요리조리 피하고, 또 새롭게 적응하니까 그런 거잖아요. 집에 대한 관념이나 생각들이 애초부터 글러먹은 것 같아요. 너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유구하게 전승되는 게 아닌가. 무서운 건 지금 청년세대들은 약간 달라진 거 같은데, 제 친구들이나 다른 지인들을 보면 여전히 그런 관념을 계속 가지고 가니까, 아 이게 안 끝나는구나, 패닉바잉이니 뭐니, 계속 가격이 올라간다는 걸 언론이 보여주고, 그걸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고.”

마 감독이 <버블 패밀리>를 촬영한 2014년~2016년은 잠실에 제2롯데월드가 지어진 때였다. <버블 패밀리>에서는 마 감독 가족의 생활고가 깊어질수록 제2롯데월드의 높이가 점점 높아지는 대비가 뚜렷하다. “아이엠에프 이후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하면서 격차가 커지는 것이 제2롯데월드 타워의 이미지랑 겹쳐보였어요. 부모님도 집 장사로 부자가 되긴 했지만 다세대주택 수준이었어요. 아이엠에프 때 중소건설사들 부도가 굉장히 많이 났거든요. 부모님 사업이 유지되지 못한 건 거시적인 흐름 안에 있었다고 봐요. 그 이후에 브랜드 아파트가 나오면서 대기업 건설사가 주택 건설을 독식했고, 제2롯데월드가 갖고 있는 1%라는 상징성을 통해 1:99 사회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죠.”

롯데월드타워
롯데월드타워 ⓒsangwon shim via Getty Images

<버블 패밀리>는 1970년대 서울 강남 개발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한 잠실 개발, 그리고 아이엠에프에 이르기까지 한국 부동산 버블의 초기 역사를 꼼꼼히 기록했다. <버블 패밀리>가 다룬 이 시기는 ‘당신의 이름이 됩니다, 래미안’ 광고로 끝난다. ‘래미안’과 ‘자이’는 노무현 정부 시절 부동산 가격 폭등을 주도한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로 위세를 떨쳤다.

그렇다면 마 감독은 부동산 불패 신화의 세습을 거절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했다. <버블 패밀리>는 마 감독이 자기 이름으로 된 땅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어머니는 경강선 전철역이 생기는 ‘미래 역세권’ 인근 전답을 아무도 모르게 사뒀다. 다큐에서 마 감독은 “학자금 대출 안 받게 등록금이나 대 주지”라고 어머니를 타박하지만 결국 이 땅 때문에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부동산 불패 신화에 대한 ‘교훈적인’ 마무리를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막상 갔는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건강보험료가 거의 오르지 않을 정도로 지가가 미미한 땅인데도 나도 뭔가가 있다, 이 나라에서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가진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처음 느낀 것 같아요. 비판하는 건 쉬운데 막상 내가 가지고 있을 때, 자기반성을 할 수 있을까,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구나 공감이 됐죠. 부모님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비판하면서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서울.
서울. ⓒyongsuk son via Getty Images

<버블 패밀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방송영상과 전문사(대학원 과정) 다큐멘터리 전공 과정을 밟은 마 감독의 졸업작품이자 첫번째 장편이다. 지난해 돌풍을 일으킨 독립영화 <벌새>가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10대에 겪은 3040의 기록이었다면, <버블 패밀리>는 1997년 외환위기 때 10대를 보낸 2030의 기록이다.

“우리 집만 이렇게 힘들었던 거 아닌데, 아파트 키드, 아이엠에프 키즈의 생애를 또래들과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졸업작품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제 대상까지 거머쥔 그는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의 치유를 담은 세번째 다큐 <착지연습>을 찍고 있다. 지금은 부동산 불패 신화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에 대한 고민보다 뛰고 있는 전셋값이 걱정이라고 했다. “전셋집 구하러 나가면 길바닥에 나앉을 처지인데, 집주인으로 살고 싶다? 그런 건 없고요, 더이상 이사 다니지 않고, 전셋값이 더 오르지 않는 공간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집주인 아니어도 한 군데서 10년 살 수 있다고 하면 집 잘 고치고 예쁘게 해서 잘 살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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