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티비시>(JTBC) 순회특파원으로 지난해 11월 한국을 떠난 뒤에도 손석희 전 앵커(이하 손석희)는 20대 대선 선거보도 과정에서 여러번 이름이 불려나왔다. 어떤 이들은 대선 주자들에 대한 언론의 날카로운 검증과 질문이 좀체 보이지 않는다며 손석희의 ‘압박면접’식 인터뷰를 떠올렸다. 그의 ‘편향성’을 이유로 대며 황상무 국민의힘 당시 언론전략기획단장이 기자협회와 제이티비시가 주최하는 대선 토론회를 거부한 일도 있었다. 정치권의 연락이 끊이지 않는다는 말도 들려온다. 어느 쪽이든 언론인 손석희는 여전히 소환되는 중이다. 정작 손석희는 대선 당시 논란에 대해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그냥 팔자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동네북이다. 각자 편할 대로 해석해서 유리하게 쓰니까”라고 담담히 답했다.
<풀종다리의 노래>(1993) 이후 28년 만에 지난해 11월 <장면들>(창비)을 낸 데 이어 최근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1, 2권(역사비평사)을 내놓은 그를 서면과 에스엔에스로 만났다. 민감한 언론계 이슈나 전 직장과 관련한 질문들에 대해선 웃음 이모티콘으로 ‘패스’하고 전화통화를 사양하는 모습에서 스스로 정제한 ‘글’이 아닌 ‘말’이 다르게 해석되는 데 대한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언론인들의 정치권 진출에 대한 생각이나 언론인으로서 삶을 계속 지켜나가겠다는 뜻은 비교적 분명히 밝혔다.
‘앵커브리핑’은 그날의 이슈를 주제로 잡고 문학과 철학, 역사를 넘나들며 시청자들과 공감했던, 한국 뉴스에서 처음 시도된 방송 에디토리얼이었다. 이번 책은 2014년 9월부터 2019년 12월31일까지 <뉴스룸>을 진행하면서 김현정 작가와 작업했던 950편 가운데 284편을 골라 주제별로 묶은 것이다. 주제별로 들어가는 글을 새로 쓰고, 지금의 시점에서 생각해볼 문제나 뒷이야기를 전하는 ‘추고’를 원고별로 붙였다. 950편을 몇번씩 읽느라 “없던 거북목까지 생겼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에 있다는 말도 돌았는데 일본에 머물고 있다.
“나중엔 미국에도 갈 계획인데 처음부터 일본과 미국을 염두에 뒀다. 두 나라는 여전히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나라들이고 가능하면 기존 특파원들이 없는 지역을 택하다 보니 지난해 11월 오사카 쪽에 오게 됐다. 사실 장기 프로젝트를 만들어 가야 하므로 지역이 중요한 건 아니다. 코로나 때문에 여기저기 막혀 기획을 하는 데 제한이 많았는데 앞으론 좀 풀릴 거라 기대한다. 한국엔 순회특파원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말쯤 들어간다.”
―앵커브리핑을 보며 늘 작가와 어떤 식으로 작업하나 궁금했다.
“소재는 그날그날 논의했다. 원고는 내가 쓰기도 하고 김현정 작가가 초안을 보내오기도 하고, 초안 그대로 내기도 하고 다 뒤집기도 하고 그랬다. 책 서문에 ‘매일매일이 전투였다’고 좀 격하게 쓰긴 했지만, 실제로 머릿속은 늘 그랬다. 텍스트뿐 아니라 관련 그림도 찾고 그래픽도 넣고 스튜디오 연출도 했어야 하니 방송 몇시간 전엔 원고가 완성돼야 했다. 뉴스 전체를 봐야 하고 취재나 편집에 대한 판단도 하고 마지막엔 그날의 엔딩곡도 고르고(손석희는 <뉴스룸>의 엔딩곡을 모두 스스로 골랐다). 보통 3분, 길면 4분을 넘기기도 했는데 ‘생방’으로 해서 아주 가끔은 예상보다 길어지기도 했다.”(답변을 읽다가 2019년 4월 어느 날 앵커브리핑이 떠올랐다. 고 노회찬 의원이 떠난 지 몇개월이 지나 한 정치인이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야…”라고 말한 데 대해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의 결론이었다”고 앵커브리핑을 하던 손석희는 평소 좀체 냉정을 잃지 않던 모습과 달리 “저의 동갑내기…”까지 말하곤 20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