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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틴더에서 만난 남자에게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했다. 대체 왜 그랬는지 내 이야기 들어볼래?

정자은행은 합리적인 선택이긴 했지만 매우 비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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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FilippoBacci via Getty Images

나는 틴더에서 만난 ‘피카버드(PikaBird)’라는 닉네임의 남성에게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했다.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결국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를 낳는 게 너무 급하고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오히려 확고한 결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9살 때부터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인생은 끊임없이 그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들었다. 마침 한 남성과 지저분한 연애 관계를 끝마친 참이었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돈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20대에는 항상 이사를 다녀야 했고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도 여러 지역에 나눠서 살고 있었다. 앞날은 막막하기만 했다. 

다만 이상하게도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했다. 다른 사람이 20대 때 다른 사람의 아기를 보며 ‘귀엽네, 나도 언젠가 부모가 되겠지‘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맞아, 무조건 가능한 빨리 엄마가 될 거야’라고 확고한 결심을 한 상태였다. 

언젠가 꿈에서 작은 코끼리가 작은 우물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마치 내 아기를 상징하는 듯했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어서  내 아파트를 코끼리 장식품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심지어 왼쪽 팔에는 코끼리 문신까지 새겼다.

당연히 모든 여성이 나처럼 아기를 간절히 원하는 건 아니다. 나는 진부한 사회의 틀에 갇히기는 싫었다. 하지만 정말 아기를 낳길 바랐는데 현실은 점점 더 힘들어지기만 했다. 점점 더 나이를 먹었고 30, 31, 32세가 될 때까지도 여전히 아이를 낳을 기회가 없었다. 난 싱글이었고 계획이 필요했다.

갑자기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나 혼자라도 착상 절차를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35세까지는 꼭 임신하길 원했다. 왜냐면 그 나이가 여성의 출산율이 일반적으로 낮아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임신을 어렵게 할 혹시라도 모를 위험은 피하고 싶었다.

정자를 기증받기 전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33살이던 2015년 5월 1일 엄마가 되기 위한 절차를 밟기로 했다. 그리고 자발적 싱글맘이 될 결심을 했다.

 

싱글맘이 되기 위한 준비

2015년 5월 1일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나는 여전히 싱글이었고 직장도 상황이 조금은 나아져 있었다.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킬 준비가 돼 있었다.

또 부모님도 나를 응원해줬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자발적 싱글맘이 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검색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에는 나처럼 싱글맘이길 선택한 사람을 위한 커뮤니기가 넘쳤고 페이스북 지역 모임도 열리고 있었다. 이 커뮤니티에 소속한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엄마가 된 걸 확인했다. 어떤 사람은 입양하기도 했고, 임시 보호 중이기도 했고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기도 했다.

 

ⓒPikovit44 via Getty Images

나는 임신과 아이의 유아기를 경험하고 싶었고, 아직 내 난자에도 문제가 없다고 믿었다. 어떻게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싱글맘은 정자은행을 이용했다. 정자은행은 합리적인 선택이긴 했지만 매우 비쌌다. 병원에서 시술받는 게 아니라 집에서 시도하더라도 실제로 임신하기 전 수천 달러를 지불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이를 낳았을 때를 대비해 돈을 아끼고 싶었다.

결국 다른 선택지를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바로 ‘신분을 밝힌 기증자’로부터 정자를 온라인에서 얻는 방법이다. 이 신분을 밝힌 기증자들은 실제로 온라인 포럼을 통해 아기를 만들기 위해 그들의 정자를 필요로 하는 부부들과 비혼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등록한 낯선 사람들이다. 정자은행과 달리 이런 기증자들은 바로 컵에 정자를 담아 무료로 제공하거나 전통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인 섹스를 통해 정자를 기증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성공적으로 아이를 낳아 기른 경우를 보지 못했다. 낯선 사람과 만나 판단하는 일도 정말 버겁게 느껴졌다. 그들은 제도적으로 신분을 조사받지도 않았고 미리 알던 사람도 아니었다. 어쩌면 쉬운 방법일 수도 있었지만 결국 이 옵션을 머리에서 지웠다.

대신 이미 잘 알고 있는 남자 친구들, 즉 정자 기부자를 찾는다는 말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어려웠지만 일단 이야기를 꺼내자 한 친구가 정자를 기꺼이 기증하겠다고 했다. 그가 살던 캘리포니아주로 날아가 그의 정자를 수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난임 보조제까지 복용하고 마사지를 받으며 안정을 취했는데도 임신에 실패했다.

정말 실망스러웠다. 지금도 그때 성공했다면 어떤 아이가 태어났을까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그때 실패로 다음에는 좀 더 집과 가까이 사는 기증자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여행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호르몬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지 의심도 했다. 다시 주위에 혹시 정자를 기증할 사람이 없을지 찾기 시작했다.

 

ⓒHiranmay Baidya via Getty Images

 

임신 시도가 연애 포기는 아니다

임신하려고 한다고 해서 연애를 포기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30대 초반에는 정말 괜찮은 남자를 만나려고 애썼다면 33살에는 훨씬 더 편하게 여러 사람을 만났다. 2015년 여름과 가을 당시 소개팅 앱 틴더가 유행이었고 가볍게 틴더로 사람을 만나곤 했다.

그 중 한 명이 피카버드였다. 

처음에는 이 사람에게 정자 기증자가 되어 달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틴더에서 만난 데이트 상대에게 그런 말을 꺼내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데이트할 때도 ‘내 목표는 엄마가 되는 것‘이란 말을 꺼내는 게 이상했다. 본격적으로 임신을 시도하기 전 한 데이트 상대에게 내 계획을 말했는데, 그는 ‘그 어떤 남자도’ 혼자서 임신을 하려는 여자와 관계하는 데 관심이 없을 거라고 말했다. 피카버드에게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굳이 만남 초기에 이런 말을 꺼낼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피카버드와 몇 번 만난 후 난 가볍게 데이트를 이어가며 동시에 임신을 시도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 피카버드와 만나면서도 다른 정자 기증자를 찾고 있었다. 결국 피카버드에게 이런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정확히 누가 먼저 ‘그렇게 하자’고 말을 꺼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피카버드는 내가 임신하는 걸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이후 우리가 계속 만난다면 아주 좋은 상황이겠지만 만약 우리가 헤어질 상황에 대비해 계약서를 작성했다. 아이에 대한 양육권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도록 계약서는 작성됐다. 이 상황이 좀 의심스럽게 들리는가? 솔직히 당시에는 나도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뭔가에 홀린 듯 그런 의심을 버리고 계약을 진행했다.

나는 최대한 위험을 피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 중 한 가지는 섹스를 자주 하면서 항상 피임약을 복용했다는 점이다. 틴더로 만난 피카버드라는 이 남자와 섹스를 하고 혼자 아이를 가져 자발적 싱글맘이 된다고? 정말 미친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혹시 그가 자신도 모르는 병에 걸렸다면? 나는 그에게 관심이 없는데 갑자기 피카버드가 나를 사랑하게 된다면? 정말 최악일 거다. 어쩌면 그는 내 아이의 양육권을 뺏으려 들 수도 있다. 사실 그는 범죄자일 수도 있다. 정말 위험한 가능성은 무한했다.

솔직히 엄마가 되기 위한 모든 노력이 위험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엄청난 돈이 필요하고 앞으로 연애를 할 기회도 줄어든다는 걸 뜻했다. 내 경력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어쩌면 다시 부모님 집에 들어가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만약 내가 이 모든 걸 다 후회하게 되면 어떡하지?

일을 진행하기 위해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걸 멈춰야 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미 피카버드와 데이트를 했고 그와 섹스를 하는 게 당장 내가 임신할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갖는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생각을 이겼다. 다만 피카버드가 진짜 괜찮은 사람일까 하는 의구심은 계속 들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당장 확신하기 어려웠다. 

 

소피 스트로스버그
소피 스트로스버그 ⓒwww.sophiestrosberg.com

  

오직 태어날 아기만을 생각하다

그래서 10월의 어느 추운 보름달 밤, 피카버드를 불렀다. 그날 따라 종일 바빴고, 피곤했다. 그냥 집에 가서 드라마나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난 배란기라는 걸 알았고 지금이 시행에 옮길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2015년 10월 19일 밤 정자를 기증받았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기까지 13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핼러윈 파티에 참석하여 물을 홀짝홀짝 마시며 춤추기도 했다. 마침내 11월 1일 임신 테스터기를 사용했고 선명한 핑크색 줄을 확인했다. 난 기쁨에 취해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이 뉴스를 전했다. 

 

내 인생 최고의 선택

피카버드와 나는 그 직후인 12월 중순에 헤어졌다. 우리는 서로 계약서를 다시 상기했다. 나는 태어날 아이의 유일한 부모가 되었고 모든 권리와 책임을 지게 됐다. 

임신 사실은 너무나 행복했지만 출산 과정은 정말 끔찍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어 줬지만 정말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마침내 딸을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왔다. 이후 4년이 흘렀다.

피카버드와 나는 일 년에 한번 문자로 연락을 나눈다. 다행히 그는 나에게 질병을 옮기지 않았고, 내가 그에게 양육비를 달라고 고소하지도 않았다. 또 피카버드도 아이의 양육권에 간섭하지 않았다. 어쩌다 길에서 그를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다른 여자와 데이트 중이었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짧은 인사를 나누고 서로 갈 길을 갔다. 이후 나는 이사를 했다.

현재 훌쩍 자란 내 딸과 함께 아침마다 장난을 치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밤마다 그와 놀아준다. 앞서 언급했지만 좋은 직장을 잃었다. 내가 싱글맘이 된 게 이유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또 정말 좋은 남자를 만났다. 우리는 현재 약혼했다. 

누구도 결코 이 기묘한 인생의 우연을 예측하지 못했을 거다.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지만 확실한 건 나는 내 의지로 임신했다. 그건 정말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소피 스트로스버그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사는 프리랜서 작가 겸 에디터다. 주로 육아와 과학에 관한 글을 쓰며, 수필부터 학술 원고까지 다양한 글을 편집한다. www.sophiestrosberg.com와 트위터 계정 @sophstros에서 그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허프포스트 미국판에 실린 소피 스트로스버그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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