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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1 도미토리 : 싱가포르 최대 코로나바이러스 집단감염은 어떻게 벌어졌나

싱가포르에서는 30만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전용 주택단지'에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다.

  • 허완
  • 입력 2020.04.22 14:52
  • 수정 2020.04.22 14:54
S11 도미토리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음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싱가포르. 2020년 4월6일.
S11 도미토리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음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싱가포르. 2020년 4월6일. ⓒREUTERS/Edgar Su

싱가포르 (로이터) - 비좁은 싱가포르의 도미토리에서 11명의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살고 있는 하비부르 라만(25)씨에게 사방의 벽 너머로 희미하게나마 바깥의 삶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사람들에게 거리 유지를 당부하는 보안요원들과 공동 화장실을 싹싹 청소하는 청소원들 뿐이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라만씨는 가족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고자 싱가포르에 온 수많은 노동자들 중 하나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남아시아 출신이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정부의 격리 지침에 따라 ‘S11 @ 퐁골(S11 @ Punggol)’이라고 불리는 도미토리 건물들에서 무료함과 불만, 불안과 싸우고 있다. 이곳에서는 싱가포르 전체 코로나19 누적확진자 8014명 중 1977명이 발생했다.

″한 사람이 감염되면 (이곳에 머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쉽게 퍼질 것이다.” 라만씨가 말했다. ”현재 우리는 방 안에 갇혀있다. 모두가 겁에 질려있다. 우리는 그저 알라에게 기도하고 있을 뿐이다...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한다.” 

싱가포르 푸골에 위치한 S11 도미토리.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이곳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벌어짐에 따라 전체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 싱가포르. 2020년 4월6일.
싱가포르 푸골에 위치한 S11 도미토리.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이곳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벌어짐에 따라 전체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 싱가포르. 2020년 4월6일. ⓒREUTERS/Edgar Su

 

S11은 현대적인 도시국가인 싱가포르 변두리에 위치한 수많은 실용적인 주택단지들 중 하나다. 12명에서 20명씩 한 방에서 지내면서 하루에 적으면 20싱가포르달러(약 1만7200원)를 버는 30만명 넘는 방글라데시, 인도, 중국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이런 곳에서 살고 있다.

관광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 지역에 위치한 이런 도미토리 단지들에는 싱가포르 전체 코로나19 확진자의 75% 넘는 확진자들이 몰려있다. 싱가포르는 20일 하루 최대 신규 확진건수를 기록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현재까지 19곳의 도미토리가 격리돼 수 천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이 도미토리들이 싱가포르의 방역의 약한 고리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이같은 대규모 집단감염이 나오기 전까지 싱가포르는 성공적인 방역으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와 같은 대규모 격리가 집단감염의 위험을 높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싱가포르 당국은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1월부터 이민자 숙소에 대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해왔다면서도 바이러스가 일단 한 번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는 격리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 도미토리를 운영하는 업체인 S11과 노동부, 보건부는 답변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21일, 세계보건기구(WHO)의 고위 관계자는 확진 건수 폭증으로 ”매우 어려운 도전”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싱가포르가 코로나19 발병사태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곳을 비롯해 싱가포르 변두리에 위치한 도미토리에는 방글라데시, 인도, 중국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을 비롯해 싱가포르 변두리에 위치한 도미토리에는 방글라데시, 인도, 중국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REUTERS/Edgar Su

 

로이터는 높은 철제 장벽으로 둘러싸인 형형색색의 저층 건물들로 이뤄진 S11 주택단지에 거주하는 12명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가족들이 걱정하게 되거나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 때문에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이 노동자들은 화장실에 갈 때만 방을 나갈 수 있고, 식사는 배달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거나 빨래를 넣어놓은 발코니로 나와 밖을 내다보거나 걱정하고 있는 고국의 가족들과 통화를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몇몇 S11 거주민들은 위생 상태나 예방 대책 부족, 그리고 단조로운 생활을 불평했다. 다른 이들은 싱가포르 정부의 대응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걱정하는 건 모두 똑같았다.

 

″대가를 치르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건설노동자 나옘 아흐메드(26)씨에게 그 공포는 현실로 다가왔다.

그와 같은 방에 살던 한 명이 감염된 바 있으므로 4월8일 아침에 일어나 발열 기운을 느끼자 그는 곧바로 도미토리의 의료진에게 알렸다.

그는 검사를 받았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도미토리 바깥 격리 시설로 옮겨졌다고 그는 말했다. 이틀 뒤, 확진 판정이 나왔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어땠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더 이상은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흐메드씨가 말했다.

그는 파라세타몰(해열제)을 받았고 병원에서 혈액 검사와 흉부 X레이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며칠 뒤 그는 경증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엑스포’ 컨퍼런스센터에 임시로 마련된 곳으로 옮겨졌다.

″새 삶을 얻은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아흐메드씨의 말이다.

S11 푸골 도미토리의 모습. 이곳을 운영하는 S11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저렴한 도미토리'라고 홍보하고 있다.
S11 푸골 도미토리의 모습. 이곳을 운영하는 S11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저렴한 도미토리"라고 홍보하고 있다. ⓒREUTERS/Edgar Su

 

그는 치료를 해주고 음식을 제공해주고 격리된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 싱가포르 정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도미토리에서의 집단감염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더 많은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미토리들은 북적거리고 더럽다. 코로나19의 온상이 된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흐메드씨가 말했다. ”이제 우리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다.”

4월5일에 격리 조치가 발표된 직후 다른 이주노동자들은 도미토리의 위생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노동부는 격리 조치 초기에 도미토리들의 위생과 음식 제공 등에서 ”문제들”이 있었다면서도 상황 개선을 위해 운영사 측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흡한 예방조치

푸골의 도미토리와 공항 인근의 또 다른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S11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저렴한 도미토리”라고 홍보해왔다. 지역 언론들에 따르면, 푸골의 이 도미토리는 대략 축구장 여덟개 규모의 부지에 들어선 5층짜리 건물들로, 최대 1만4000명의 노동자를 수용할 수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싱가포르에는 이와 같은 목적으로 지어진 도미토리들이 43개 있어서 20만명의 이주노동자들을 수용하고 있다. 공장 기숙사를 개조한 1200개의 시설에는 9만5000여명이 거주하고 있고, 그밖에도 다른 소규모 임시 시설들이 있다.

코로나19 발병사태 초기부터 싱가포르 정부는 거주 노동자들의 발열 여부를 확인하고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는 한편 감염 위험을 막기 위해 공용 공간에서 어울리는 것을 제한할 것을 도미토리 운영사들에게 권고해왔다고 말했다.

S11 도미토리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2020년 4월6일.
S11 도미토리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2020년 4월6일. ⓒREUTERS/Edgar Su

 

그러나 니자물(27)씨를 비롯해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한 다른 노동자들은 S11에서 발열체크는 거의 없었으며, 정부의 격리 조치가 시행되기 며칠 전까지도 출입에 지문인식기가 사용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호흡기 질병인 코로나19가 기침과 재채기에서 코나 입을 통해 나오는 비말을 통해 전염되며, 오염된 표면을 손으로 접촉한 후 코나 입, 눈을 만지는 행위를 통해서도 감염된다고 말한다.

니자물씨는 격리조치가 시행되기 전에 감기와 고열로 병가를 냈다가 건강이 악화된 지 며칠 만에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던 인도 출신 남성과 방을 같이 썼다고 말했다.

나자물씨는 공용 숙박 시설로 옮겨져 독방을 배정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

미아 팔라시(27)씨는 로이터가 만난 S11 거주민 중 자신이 살고 있는 동에서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공용 화장실을 갈 때만 방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팔라시씨는 시간을 때울 방법을 찾는 것, 그리고 고국에 있는 가족들의 걱정을 달래주는 게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그저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아들은 나 하나 밖에 없다. 그들은 나를 걱정하고 있지만... 매일 전화를 한다.” 팔라시씨의 말이다.

S11 푸골 도미토리에서 소독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싱가포르. 2020년 4월6일.
S11 푸골 도미토리에서 소독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싱가포르. 2020년 4월6일. ⓒREUTERS/Edgar 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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