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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과 슈퍼단의 셔틀콕 전쟁 - 리총웨이 vs 린단

[신들의 전쟁, 세상을 뒤흔든 스포츠 라이벌④]

  • 김동훈
  • 입력 2018.03.27 14:27
  • 수정 2018.03.27 14:29
ⓒhuffpost

2016년 8월 1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센트루 4관. 리우올림픽에서 각 종목별로 여러 라이벌전이 펼쳐졌지만, 그중에서도 최고의 라이벌 대결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치열하게 라이벌 대결을 펼친 뒤 이제 은퇴를 앞둔 두 선수였다. 바로 배드민턴 남자 단식의 리총웨이(말레이시아)와 린단(중국). 둘 다 서른 중반을 넘어선 선수로 사실상 리우올림픽이 마지막 올림픽 무대였던 것이다. 그들은 ‘살아 있는 전설들’답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를 펼쳤다.

조 추첨 결과 올림픽 3회 연속 결승전 대결은 무산됐지만, 준결승에서 만난 두 선수는 한 세트씩 주고받으며 세트스코어 1 대 1이 됐다. 그리고 마지막 3세트도 치열한 접전으로 16 대 16까지 동점을 이어가는 아슬아슬한 승부를 펼쳤다. 그런데 리총웨이가 19 대 16으로 점수 차를 벌렸고, 마침내 20 대 17로 매치포인트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린단이 끝내 20 대 20으로 쫓아와 2점을 먼저 따야 이길 수 있는 듀스 상황을 만들었다.

경기장의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중국 응원단의 환호성이 터진 이후 경기장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순간 린단이 내리꽂은 스매시가 라인을 벗어나 리총웨이가 먼저 1점을 선취했다. 21 대 20. 이어 리총웨이는 린단이 자리를 잡은 코트의 반대방향으로 셔틀콕을 찔러넣어 22 대 20, 극적인 승리를 확정지었다. 리총웨이는 코트에 엎드려 감격하다가 껑충 뛰어올라 기쁨을 만끽했다. 이어 두 선수는 서로 포옹하고, 유니폼 상의를 맞바꾸며 명승부를 펼친 상대에게 경의를 표했다. 리우올림픽은 리총웨이와 린단 모두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이었기에 이 승부는 더욱 뜻깊었다. 특히 역사상 금메달이 하나도 없는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이미 금메달을 딴 것처럼 환호했다.

<strong></div>‘중국의 슈퍼단’ 린단</strong>
‘중국의 슈퍼단’ 린단 ⓒAI Project / Reuters

‘말레이시아의 영웅’ 리총웨이 vs ‘중국의 슈퍼단’ 린단

두 선수는 말레이시아와 중국에서 배드민턴 슈퍼스타를 넘어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특히 리총웨이는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우리나라 국민훈장에 해당하는 다툭 작위까지 받았다.

두 선수는 한 살 차이다. 리총웨이는 1982년 10월 21일 관광지로 유명한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태어났다. 말레이시아 중국계 집안에서 사 형제 중 막내였다. 린단은 1983년 10월 14일 타이완과 인접한 중국 푸젠 성 룽옌에서 소수민족인 하카 족으로 태어났다. 하카 족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리총웨이와 린단의 혈통은 비슷하다. 한편 리총웨이는 오른손잡이, 린단은 왼손잡이로 대조를 이뤘다.

리총웨이는 말레이시아에서 단순한 스포츠 스타 이상의 빅스타다. 처음 시작한 스포츠는 농구였다. 하지만 리총웨이는 햇빛 아래에서 뛰는 걸 싫어하는 부모의 반대에 부딪히자 배드민턴으로 전향했고, 이 선택은 세계적인 스타 탄생으로 이어졌다.

셔틀콕과 만난 리총웨이는 쑥쑥 성장했다. 열일곱 살에 처음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뒤 만 스물네 살 때인 2006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정상에 올랐다. 배드민턴은 한국,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 선수들이 상위 랭커에 대거 포진해 있기 때문에 아시아 정상은 곧 세계 정상을 뜻한다. 리총웨이는 2006년 6월 처음으로 단식 세계랭킹에서 린단을 끌어내리고 1위에 올랐다. 170센티미터, 60킬로그램의 아담한 체구지만, 어떤 어려운 공격도 끝까지 걷어 올리며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또 정확도와 세기를 겸비한 스트로크(라켓으로 날아오는 셔틀을 타구하는 것)도 그의 주 무기다.

린단은 주니어 대표 시절부터 ’셔틀콕의 신동’으로 불렸다. 린단 역시 178센티미터, 72킬로그램의 체격으로 그리 크지 않지만 타고난 유연성과 빠른 발을 바탕으로 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다. 2002년 성인 무대에 데뷔한 린단은 2004년 처음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뒤 리총웨이와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놓고 10년 넘게 각축을 벌였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성인 무대 초반엔 별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세계랭킹 10위 정도에 머물면서도 큰 대회에 강한 ‘강심장’ 히다얏 타우픽(인도네시아)에 막혔기 때문이다. 히다얏은 2002년 부산 아시아게임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 그리고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까지 내리 금메달을 따냈다. 린단과 리총웨이는 처음 출전한 아테네올림픽에서 일찌감치 탈락했고,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린단이 은메달, 리총웨이가 동메달에 머물렀다.

두 선수의 맞대결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리총웨이가 스물두 살, 린단이 스물한 살이던 2004년 처음으로 시니어 무대에서 맞대결을 펼쳤고, 이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숙명의 대결’을 벌였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잇따라 만났고, 결과는 2번 모두 린단의 승리였다.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린단이 1세트 21 대 12, 2세트 21 대 8로 리총웨이를 가볍게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런던올림픽 결승전은 대접전이었다. 세트스코어 1 대 1로 맞선 3세트에서 결국 린단이 리총웨이에게 21 대 19로 이기면서 ‘2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결승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도 린단이 리총웨이를 꺾고, 아시안게임 2회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말레이시아의 영웅’ 리총웨이
‘말레이시아의 영웅’ 리총웨이 ⓒMarcelo del Pozo / Reuters

199주 연속 세계랭킹 1위 vs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

리총웨이는 2008년 8월부터 2012년 6월까지 무려 199주 연속으로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한 ‘셔틀콕의 제왕’이었지만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큰 대회에서 유독 린단의 벽을 넘지 못하는 비운의 스타였다. 런던올림픽 결승전 패배로 린단에게 랭킹 1위 자리를 잠시 내주었지만, 한 달 만에 다시 되찾기도 했다.

두 선수의 상대 전적도 2016년 리우올림픽을 포함해 37전 26승 11패로 린단이 크게 앞섰다. 리총웨이는 3번 이상 맞붙은 상대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린단에게만 열세였다. 반면 린단은 2번 이상 맞대결한 선수들에게 상대 전적에서 모두 앞섰다.

그런데 두 선수 모두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앞두고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우선 린단은 평정심을 잃는 불같은 성격이 매번 발목을 잡았는데, 자국에서 열린 2008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그해 1월 서울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결승에서 못 볼 꼴을 보였다. 한국의 이현일과 맞붙은 린단은 접전이 이어지던 마지막 3세트에서 선심의 판정에 불만을 품고 한국 대표팀 코치였던 중국인 리마오 코치와 설전을 벌이다 라켓을 집어던지고 주먹질을 하려는 추태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중국 대표팀 코치를 폭행하는 사고를 쳤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였기에 쉬쉬하고 넘어갔다.

리총웨이는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 무대인 2016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약물복용 의혹으로 곤혹을 치렀다. 2014년 8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도핑 양성반응이 나오면서 지위가 흔들렸다. ‘부주의에 의한 도핑’으로 결론 났지만, 8개월 출장정지 처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세계랭킹 1위 자리도 2년 3개월 만인 2014년 12월 중국의 신예 천룽(Chen Long)에게 내줘야 했다.

리총웨이는 2015년 5월 다시 코트에 복귀했는데, 8개월 징계 기간 동안 40위 밖으로 추락했던 랭킹은 급격한 상승세를 타면서 리우올림픽을 앞둔 2016년 6월 9일 다시 1위 자리를 되찾았다. 올림픽 2회 연속 은메달 리스트인 리총웨이는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각오가 남달랐다. 더욱이 조국 말레이시아는 1956년 멜버른대회에 처음 참가한 이후 금메달이 단 하나도 없었다.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국민 영웅’ 리총웨이가 말레이시아의 금메달 갈증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말레이시아 광산 재벌인 라룸푸르 라켓 클럽(KLRC) 앤드류 캄 회장은 “배드민턴 선수 중 올림픽 우승을 차지하면 63만 달러(약 7억 2,000만 원)에 달하는 ‘골드바(금괴)’를 주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리총웨이를 염두에 둔 약속이었다.

린단(왼쪽)과 리총웨이는 3번의 올림픽에서 ‘셔틀콕 전쟁’을 펼쳤다.
린단(왼쪽)과 리총웨이는 3번의 올림픽에서 ‘셔틀콕 전쟁’을 펼쳤다. ⓒ폭스코너

올림픽 세 번째 맞대결… 복수혈전이냐, 3회 연속 우승이냐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리총웨이는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상대 전적에서 열세였던 린단을 2015년 11월 중국 오픈과 2016년 4월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잇따라 세트스코어 2 대 1로 꺾었기에 자신감이 충만했다. 리총웨이는 도핑 파문 이후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지고 더 강해졌다”고 밝혔다. 마지막 기회인 리우올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반면 린단은 올림픽 3회 연속 금메달의 대기록에 도전하는 무대였지만, 팀 후배 천룽에게 세계랭킹 2위 자리를 내주고 3위로 내려앉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리우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단식 조 편성 결과, 두 선수가 준결승에서 맞붙게 됐다. 2회 연속 올림픽 결승전에서 맞붙었던 린단과 리총웨이가 리우올림픽에서는 조별 예선 추첨에서 결승전 맞대결이 성사되지 못한 것이다. 리총웨이는 A조에, 린단은 E조에 배치됐고, 나란히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한 뒤 16강은 부전승으로, 그리고 8강에서 나란히 승리하면서 준결승에서 만난 것이다.

2016년 8월 1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센트루 4관에서 열린 두 선수의 준결승전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올림픽 3회 연속 결승전 대결은 무산됐지만, 배드민턴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다운 경기였다. 세트스코어 1 대 1, 마지막 3세트도 20 대 20 듀스가 이어졌고, 결국 리총웨이가 22 대 20으로 이겼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리총웨이는 “이 나이에 올림픽 준결승에서 싸운 나와 린단이 자랑스럽다. 오늘 우리의 경기는 정말 훌륭했다. 관중과 전 세계가 이 경기를 지켜봤다”고 말했다. 그는 막판에 매치포인트를 잡고도 린단에게 연속 3점을 허용해 듀스 상황에 들어간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려고만 했다. 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저 경기를 즐기려고 노력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며 긴박했던 심경을 설명했다.

린단 역시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모두 비슷한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진심으로 이 경기에서 이기고 싶어했다. 하지만 우리는 열렬한 응원 속에서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이제 경기가 끝났다는 데 안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배드민턴 남자 단식 세계랭킹 1위인 리총웨이는 끝까지 올림픽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리총웨이는 다음 날 열린 결승전에서 세계랭킹 2위 중국의 천룽에게 1세트와 2세트 모두를 21 대 18로 내주며 게임 스코어 2 대 0으로 지고 말았다.

이로써 리총웨이는 3번의 올림픽 결승전에서 처음 2번은 린단에게, 그리고 마지막 리우올림픽에서는 린단의 팀 후배 천룽에게 지면서 올림픽 3회 연속 은메달이라는 비운의 스타가 되고 말았다. 아울러 말레이시아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도 실패로 끝이 났다.

한편 3-4위전으로 밀려난 린단은 덴마크의 빅토르 알렉센에게 세트 스코어 1 대 2로 지면서 동메달마저 놓쳤다.

ⓒ폭스코너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마지막 무대될까

둘은 동료 배드민턴 선수와 런던올림픽이 끝난 직후 결혼한 공통점도 갖고 있다. 린단은 한때 여자 단식 세계랭킹 1위이자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 단식 은메달리스트인 시에싱팡과 2012년 9월 결혼했고, 리총웨이 역시 2012년 11월 말레이시아 배드민턴 여자 단식 선수 출신인 왕메이츄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2018년 현재 만 서른여섯 살(리총웨이)과 만 서른다섯 살(린단)이 된 두 선수는 사실상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은퇴 무대로 계획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배드민턴의 나라로, 인기가 대단하다.

2017년 11월 현재 세계랭킹은 린단이 4위, 리총웨이가 8위로 떨어져 있다. 리우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덴마크의 빅토르 알렉센이 랭킹 1위, 한국의 손완호가 랭킹 2위다. 리총웨이와 린단의 통산 성적은 경이적이다. 리총웨이는 통산 805경기에서 677승 128패로 승률 84.1퍼센트, 린단은 통산 704경기에서 615승 89패로 87.4퍼센트의 높은 승률을 기록 중이다. 현역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800경기 이상을 소화한 리총웨이는 통산 승수에서 린단에게 62승 앞서 있다. 반면 통산 승률에서는 린단이 87.4퍼센트, 리총웨이가 84.1퍼센트로 린단이 근소하게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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