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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05일 18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3월 05일 18시 37분 KST

‘키스 먼저 할까요?’는 90년대 트렌디 드라마의 후일담이다

보는 동안 과거의 기억들이 소환된다.

SBS

TV 드라마 덕분에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40대라면, ‘우리들의 천국’(1994)이나 ‘내일은 사랑’(1994)에서 대학 시절의 낭만을 꿈꾸었을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그때는 정말 캠퍼스 드라마가 대학을 가면 좋은 이유를 알려주었다. 또 ’질투’(1992)나 ‘연인’(1993), ‘도시남녀’(1996), 그외 수많은 트렌디 드라마에서 20대 중, 후반의 화려한 싱글을 꿈꾸었을 것이다. 나름 번듯한 직업, 또 나름 번듯한 혼자만의 공간과 자동차. 그리고 로맨틱한 연애. 그런 드라마 덕분에 어른이 되면 꽤 폼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직업과 월급을 쟁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10대들은 어떨까. ‘청춘시대’ 같은 드라마에서 취업난에 허덕일 미래를 보게 될까? 아니면 ‘리턴’ 같은 드라마에서 1%들만이 점유한 권력의 실태를 보게 될까. 1990년대의 TV 드라마와 비교할 때, 지금의 드라마들은 미래를 꿈꾸게 만들기가 어렵다. 그때에 비해 지금은 낭만을 찾기가 쉬운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애’에 대한 판타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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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그처럼 TV 드라마에 꿈이 없는 시대에 등장한 로맨스다. 이 드라마는 ‘리얼 어른 멜로’라는 타이틀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전에 봤던 멜로 드라마는 어른이 아닌 주인공들의 멜로였을까? 어른이 아니었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 이 드라마의 주인공보다 어렸던 건 사실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의 남녀는 각각 40대 중반 여성과 “내일 모레면 50”인 40대 후반의 남성이다. 하지만 단지 이들의 나이 때문에 어른들의 로맨스인 건 아니다. 이 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어른’들이 느낄 감정과 기억 때문이다. 특히 과거의 트렌디 드라마를 봤던 기억들이 ‘키스 먼저 할까요?’에 대한 감상에 끼어들 가능성이 크다.

남자 주인공인 손무한(감우성)은 광고 기획자다. 안순진(김선아)은 스튜어디스다. 그들에게는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천재였대. 광고천재. 카리스마 팍!, 아우라 팍! 간지 좔좔. 귀티 작렬! 그 사람 입김 한 번이면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더라, 한때는…” 극중에서 손무한의 이력을 설명하는 이 대사에서 방점은 ‘한때는’에 찍힌다. 한때는 그랬지만, 현재는 아내에게 이혼당한 후 개와 혼자 사는 독거남이자, 회사에서는 후배들에게 미움받는 꼬장꼬장한 상사다. “45세에 승진도 못한 평승무원”으로 남아 회사로부터 권고사직 통보를 받는 안순진에게도 화려한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분명 20년 전 그녀에게 스튜어디스 유니폼은 긍지와 자존심이지 않았을까? 그런대 드라마에서 그녀의 유니폼은 1회부터 만신창이가 된다. 지금 안순진은 사채업자에게 쫓기고, 이혼한 전남편과 아내를 직장에서 마주해야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들의 직업과 과거에서 20년 전 트렌디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시절 트렌디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상당수가 가졌던 직업이 광고 기획자이고 스튜어디스였으며 그외 외환딜러, 디자이너, 방송작가 등과 같은 전문직이었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키스 먼저 할까요?”의 안순진은 ‘짝’(1994~ 1998)의 김혜수나, ‘요조숙녀’(2003)의 김희선이 연기한 그녀들의 20년 후다.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들은 20년 후 어떻게 살고 있을까. ‘키스 먼저 할까요?’는 이 질문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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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후, 그들은 쉽게 잠들지 못하는 40대 중년이 되었다. 결혼에 실패했고, 경제적으로 실패했으며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는 이야기인 ‘키스 먼저 할까요?’는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남녀를 연상시킨다. 그 영화의 남녀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이혼 등에 상처받은 후 ‘미친X’과 ‘미친X’이 된 사람들이었다. 영화 속의 티파니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남자를 헌신적으로 보듬는 여성이거나, 그에게 목표가 되어주는 이상형의 여자로 변신하지 않는다. 그녀는 미쳐버린 남자에게 “너는 나보다 덜 미쳤다”며 뒤통수를 치는 여자다. “난 미망인인 데다가 미친 걸레라고! 우하하하하.” 극중에서 손무한과 안순진이 술을 마시며 누가 더 불행한가를 놓고 게임하는 장면을 보라. 결국 이 게임은 지난 10년 간, 한 번도 남자랑 섹스한 적이 없다는 안순진의 승리로 끝난다. 8회까지 전개된 이야기에서 그들은 일단 한 침대에 누워있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다. 과거 트렌디 드라마에서 꿈을 가졌던 30대 중후반부터 40대 초반의 시청자라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나만 실패한 건 아니었다는 안도감, 그래도 또 누군가의 위로를 받을지 모른다는 기대. 드라마가 내세우는 ‘리얼 어른 멜로’란 타이틀을 수긍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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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에서 손무한을 연기하는 배우 감우성은 26년 전, 당시의 트렌디 드라마인 ‘매혹’(1992)에 출연했었다. 그리고 12년 전에는 ‘연애시대’(2006)의 그 남자였다. 감우성이 ‘연애시대’에서 연기한 이동진은 어린 시절 좋아했던 여자와 재회한 순간, ’연애’가 현실을 견뎌내는 꿈이라고 말했다.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1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내는 게 아니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내일은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

그런가하면 안순진을 연기하는 김선아는 13년 전, ‘내 이름은 김삼순’(2005)의 그 여자였다. 김삼순은 꿈에 나타난 아버지에게 “그렇게 겪고 또 누군가를 좋아하는 내가 끔찍해 죽겠어. 심장이 딱딱해 졌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이 드라마들이 나왔을 때만해도 사람들은 그 연애를 향한 꿈이 10년 후, 40대의 꿈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10년 전에도 딱딱해지지 않았던 심장이 10년 후인 40대에도 그대로라니....) 하지만 40대의 로맨스가 90년대 드라마의 후일담을 그리겠다는 발상에서만 나온 결과는 아닌 것 같다.

지금 시대에 트렌디 드라마를 만들려고 했을때, 40대를 주인공으로 한 건 필연적인 선택이다. 각자의 공간을 점유하고 살면서, 술집에서 만나 밤새 술을 마시고, 모텔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택시를 타거나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데에 거리낌이 없는 주인공을 지금의 2,30대에게 찾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10대 시청자들은 그 드라마를 보며 꿈을 꿀지 모르겠지만, 동년배의 시청자들은 분명 괴리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2,30대 시청자들은 ‘키스 먼저 할까요?’를 통해 꿈을 꿀 수 있을까? 경제불황과 함께 찾아온 고령화는 로맨스의 나이대를 연장시키고, 미래에 대한 기대까지 더 유예시킨 걸까? 1990년대의 드라마를 기억할 때, ‘키스 먼저 할까요?’는 반갑고 설레이는 동시에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