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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21일 10시 39분 KST

신라 장인들이 경주 안압지에 지그재그 화강암 수로를 만든 뜻밖의 이유

용도 둘러싼 미스터리에 새로운 해석이 나왔다.

한겨레
신북면 월지 복원 건물지 앞으로 지나가는 옛 석조수로의 일부 모습.

“수로의 매끈한 벽면과 바닥을 보세요. 이건 삼국통일을 완수하고 통일신라 문화 기반을 만든 7세기 문무왕 시대가 아니면 절대 만들 수 없습니다. ”

신라 사학자인 박홍국 경주 위덕대 박물관장이 잔디밭 속에 푹 파묻힌 1300여년전의 화강암 수로를 가리켰다. 옆면 바닥면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수로와 수조 부재들이 보였다. 얼핏 돌로 만든 물길 아닌가 싶다.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바닥 벽면이 모두 같은 통돌이었다. 그러니까 2m가 넘는 육중한 화강암 통돌을 일일이 깎아 ‘凹’모양의 부재 수십여개를 만들고 이를 이어붙인 것이었다. 신라 장인들의 숨은 힘과 내공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19일 낮 경주 인왕동에 있는 동궁과 월지 국가사적 공원을 박 교수와 함께 찾았다. 그가 최근 신라사학회의 학술지 <신라사학보>43호에 발표한 ‘신라 동궁지 석조수로의 기능에 대한 고찰’이란 논문의 실체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박 교수는 논문에서 석조수로는 월지 서편의 회랑 내 중심건물과 호수 옆 건물의 화재를 대비한 방화 시설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소화전이란 견해를 처음 내놓았다.

한겨레
석조 수로 사이에 있는 수조 모양의 시설물. 수로보다 폭이 넓고 깊어 소화용수를 퍼올리는데 걸림돌이 되는 자갈돌이나 흙 등을 침전시켜 수로 흐름을 원활하게 하려는 용도였을 것으로 박홍국 관장은 논문에서 분석했다.

동궁과 월지는 문무왕 19년(679)에 세자의 동궁전을 포함한 궁궐 정원으로 완성됐으며 세간에는 ‘안압지’로 유명한 경주의 대표 유산이다. 1975~76년 발굴조사에서 3만점 이상의 유물이 나왔고, 1980년 복원된 이래 현지에서 인기가 많은 관광명소로 꼽힌다.

석조수로는 월지 서쪽 기슭 첫 복원건물 서쪽에서 시작해 지그재그 모양으로 이어진다. 회랑 터와 복원 건물터를 타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9번이나 꺾여 이어지는 이 돌 수로는 너비 29~30cm, 전체 길이는 107m에 달한다. 시작 부분과 중간 부분에 폭이 다소 넓은 큰 수조형 용기 2개가 나타나는데, 물길이 다소 넓어지면서 연결되는 수로는 개당 길이가 1.2~2.4m에 이르는 통돌 수십개로 벽면과 바닥을 정교하게 다듬어 놓은 점이 특징이다. 월지 발굴 전부터 유적의 존재가 알려져왔지만, 어떤 용도였는지는 오리무중이었다. 건물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에 땅이 패지 않도록 하는 장치라는 추정만 나올 뿐 연구는 전무했다.

“석조수로의 벽면을 관찰하다 물 채우는 물막이판을 꽂았던 홈을 발견하면서 힌트를 얻었어요. 낙숫물을 받거나 단순 배수로라면 이처럼 필요 없는 장치가 왜 있을까요?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복원 전인 1940년대 찍은 경주 월지 동궁터의 석조수로 모습. 경주예술학교 학생들의 야외 실기 현장 담은 모습으로 당시 화가 최용대씨의 소장품이다.

박 관장은 수로가 낙수받이가 되려면, 수로가 건물의 동서남북 방향 처마 끝선 아래 모두 설치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런 배치가 아니며, 수로 바닥 면에도 빗방울로 패인 자국이 없다는 점에서 낙수받이 용도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수로들은 회랑 내부를 지나거나 건물 기단 앞에도 있어, 되려 경관을 해치고 통행에도 불편을 준다. “존엄한 궁궐 구역 안에서 좌우대칭 관행을 깨뜨린 이질적 시설물”이라는 단언이었다.

“굳이 이런 시설물을 설치한 이유를 추론해보면, 화재 때 바로 옆에서 물을 퍼올려 신속하게 불을 끌 수 있는 방화용 수로, 즉 당대의 첨단 소화전이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어요.”

큰 연못인 월지가 옆에 있지만, 높이 4~5m 축벽 아래 있어 불이 날 경우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려면 시간이 걸린다. 이때문에 유사시 진화 시설을 고민하다 낸 신라인들의 아이디어가 건물과 회랑을 따라 배선처럼 이어지는 정교한 물길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수로는 남문과 회랑 내부 중요 건물이 있는 반경 40m 범위 내 구역 대부분에 걸쳐 있다. 배수로 한 줄만 지나가도 동궁 건물을 화재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회랑과 평행하게 만들거나 건물 기단부 외곽을 9번이나 90도로 꺾이면서 지나가게 배치한 것도, 통행과 경관에 끼치는 불편함을 최대한 덜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박 교수는 “수조를 수로 사이에 배치한 것도 소화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떠내려오는 자갈돌과 토사를 침전시키는 용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방룡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은 “정교한 석조수로를 과학적 구조의 소화전 시설로 해석한 것은 신선한 견해다. 국내 유적에서 ‘소방 고고학’ 논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