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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성폭행 피해자의 '괜찮다'는 말은 성관계 동의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피해자 다움'을 요구하는 판결은 깨지는 추세다.

대법원
대법원 ⓒ뉴스1

대법원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괜찮다”고 말했더라도 이를 ‘동의’로 여겨 다음 성관계를 한 것은 강간이라고 봤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6일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이 같이 밝혔다. 원심에서는 무죄가 나왔으나, 이번 대법원 판결로 사건은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내졌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육군 하사인 A씨는 2014년 당시 여고생이었던 B씨 등과 함께 술을 마셨다. A씨는 술에 취해 알몸으로 화장실에 앉아 있던 B씨에게 ”괜찮냐”고 물은 뒤 성폭행했다. B씨는 이미 한 차례 성폭행을 당한 상태였다.

B씨는 사건 이후 A씨로부터 SNS 친구 신청이 들어오자 성폭행 사실이 떠올라 우울증을 겪었고, 관련 상담을 받은 후 A씨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A씨는 이를 거절했고, B씨는 A씨를 고소했다.

A씨 측은 ‘성관계’ 후 B씨가 ”괜찮다”고 여러 번 말했으며, B씨를 집에 데려다 줬을 때 집 앞에서 키스를 했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자발적 성관계”였음을 주장했다.

고등군사법원은 B씨가 대부분의 상황을 잘 기억하면서도 성관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건 모순이 있다며 A씨 측의 이야기를 거의 받아들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B씨가 성관계 후 ‘괜찮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단정할 순 없다”며 원심 판결을 뒤집었다.

검찰 조사에서 B씨가 한 “성폭행 피해자가 되는 게 무서웠고, 피해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는 진술로 미뤄 봤을 때 사건 당일 ‘괜찮다’는 언급은 형식적 발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대법원은 “알몸으로 있는 피해자에게 구조를 위한 조치 없이 호감이 있다며 성행위 동의를 구했다는 건 그 자체로 모순되고 경험칙상 이례적”이라고 하면서 하급심이 B씨의 ‘괜찮다’는 말을 성관계 동의로 본 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이날 중앙일보에 “최근 대법원 판결을 보면 성범죄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한 판결은 모두 깨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라효진 에디터 hyojin.ra@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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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대법원 #성관계